고방서예[1586]소동파(蘇東坡)-강성자(江城子)
강성자(江城子)
乙卯正月十二日夜記夢 (을묘정월십이일야기몽)
을묘년 정월 이십일 밤, 꾸었던 꿈을 기록하다
十年生死兩茫茫(십년생사양망망)
십 년이란 세월 동안 이승과 저승으로 까마득히 갈라져서
不思量 (불사량)
떠올리지 않으려 했으나
自難忘 (자난망)
내 마음속에서 잊을 수가 없구려
千里孤墳 無處話悽凉 (천리고분 무처화처량)
머나먼 홀로이 외로운 무덤가 이 처량한 마음 호소할 곳 없구나
縱使相逢應不識 (종사상봉응불식)
설령 다시 서로 만나도 알아볼 수 있을까
塵滿面 (진만면)
이 내 얼굴은 세상 풍진으로 뒤덮였고
鬂如霜 (빈여상)
살쩍은 벌써 허옇게 세어져 버렸다오
夜來幽夢 忽還鄕 (야래유몽 홀환향)
이 밤에 찾아온 그득한 꿈속에서 문득 고향에 돌아와 보니
小軒窓 (소헌창)
조그만 창 너머로
正梳粧 (정소장)
빗으로 곱게 단장하던 당신 모습 보이는데
相顧無言 (상고무언)
우린 서로 돌아볼 뿐 말도 못하고
惟有淚千行 (유유누천행)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는구려
料得年年腸斷處 (요득년년장단처)
해마다 이리도 애간장을 태우는 곳은
明月夜 (명월야)
밝은 달빛 아래
短松岡 (단송강)
키 작은 소나무 그 언덕이라오
한사람은 살고 한사람은 죽어 십년이나 헤어져 있었네
생각지 않으려하나 잊을수가 없구나
천리 멀리 떨어진 그대 무덤을 찾아가지 못하나
어디서든 그대와 속삭이며 내 그리움을 읊조리네
그대와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내얼굴은 시름 가득 차있고
살쩍은 희끗희끗하여 알아보지 못하리
지난밤 꿈에 난 홀연 고향에 돌아와 있었네
그대는 창가 그 화장대에 앉아 있었고
서로 바라볼뿐 말이 없었네
불빛아래 그대의 두눈엔 눈물 흐르고 있었지
해마다 나를 애끓게 하던 데가 어딘지 비로소 알겠네
달 밝은 밤의 다복솔이 서있는 작은 산등성이었네
이 시는 당송 팔대가의 한 명인 소동파 (蘇東坡, 이름은 軾).가
1075년, 40세에 이른 소동파가 10년 전, 11년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하다
먼저 세상을 뜬 첫 부인 왕불
(王弗)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입니다.
중국의 그 수많은 시인들의 고전시가 중에서 아내를 주제로 한 시는
제가 알기론 두세편? 정도인 듯합니다..
두보의 <월야 月夜>외에 소동파가 두편.(두번째 아내에 대한 시)....
그래서 여성인 저에게는 이 시가 더욱 심금을 울리게 하는군요..
게다가 소동파는 꿈에서 본 죽은 아내와 추억의 언덕을 재현하기 위해
일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지요...
소동파의 '江城子·記夢'이 워낙 유명하여 강성자가 그 제목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江城子란 사패(詞牌) 중 한 종류의 명칭입니다.
曲곡의 종류를 사패(詞牌)라고 합니다..
소동파는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다 능하였으나 특히 사((詞)에 뛰어났습니다.
'강성자 기몽-江城子·記夢'도 사실 시가 아니고 사(詞)입니다.
사(詞)란 원래 노래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먼저 곡조가 있고,
그 후에 곡조에 따라 사구(詞句)를 채워넣는 형식의 글이니,
요즘으로 말하자면 악보가 있고 거기에 맞춰 지은 가사라고 하겠습니다.
이 악보를 사패라고 합니다..
18세 때 소동파는 한 살 아래의 옆 마을 아가씨 왕불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왕불은 미모뿐 아니라 총명함도 남달라서 젊은 시절 소동파가 공부하다가 막히면
옆에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남편이 공부를 끝내고 잠들기 전까지 같이 책상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소동파가 관직을 얻은 후에도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남편이 실수하지 않고 지
혜롭게 처신할 수 있도록 옆에서 끊임없이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친구와의 담소자리 때 여성이라 끼지는 못하고 병풍 뒤에서 대화를 듣게하고
다 돌아간 뒤 부인의 의견을 물었다고도 합니다...
아내를 소동파는 깊이 사랑하고 따랐으며, 애닮픈 사별 후에
꿈 속에서 만난 그 아내를 그리워하며 이 시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얻은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도 모두 사별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보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왕 씨이며 (두 번째 부인은 첫 부인의 사촌 동생입니다)
세 명의 부인 모두 현모양처로서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지극히 사랑했다고 합니다.
세 명의 부인을 모두 먼저 떠나보낸 것은 안타깝지만,
한 명의 천생연분도 제대로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사랑이 쉽지 않던 그 시절에,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는 세 명의 부인들과 모두 깊이
우러나는 사랑을 할 수 있었음이 부럽기도합니다.
우리나라 문인들은 그의 시를 무지무지 사랑했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송나라 관리였던 소동파는 고려를 싫어하고 경계했다고합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부친은 큰아들을 부식..작은 아들을 부철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소식. 소철 형제는 부친 소순과 함께 당.송팔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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