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배우의 거침없이 70년
[아무튼, 주말]
[아무튼, 레터]

대학 시절 그는 연기를 하고 싶어 연극반에 들어갔지만 배역이 주어지질 않았다.
3학년 때는 총무를 맡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총무는 어지간한 일에 다 얽혀 있고
모든 자리에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다. 그가 배역 대신 총무를 맡게 된 이유는
연습 때 써보곤 “넌 안 되겠다”며 빠꾸(퇴짜)를 계속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청년은 바깥으로 나가서 1956년
‘지평선 너머’라는 연극으로 데뷔했다. 첫 배역은 예순 살 먹은 노역(老役).
그때는 몰랐다. 장차 프로 무대에서 누구보다 오랫동안 연기를 하게 될 줄은.
70년 가까이 흘러 이제는 최고령 현역 배우가 됐다.
연기란 자기 몸뚱이를 가지고 능력껏 표현하는 일이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평가받는 직종. 눈치 보지 말고 두 발 다 담가야 한다.
그러나 히트작을 내고 인기를 얻을 땐 조심하라고 그는 말한다.
이미지는 감옥이라 갇히면 끝장이다. 그는 성공한 캐릭터인 ‘대발이 아버지’를
5~6년 더 우려먹을 수 있었지만 끝나자마자 버렸다.

배용준의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한류를 일으켰다면 중국에 최초로 수출된 드라마는
‘사랑이 뭐길래’였다. 하지만 그는 대발이 아버지를 재연해본 적이 없다.
“배우는 텅 빈 상태에서 스탠바이하고 있는 존재예요. 배역을 맡으면 늘
백지(白紙)에서 시작합니다. 그 백지 위에 새롭게 개성을 그려나가고 끝나면 싹 지워요.
”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인물에 사랑과 연민을 담았다. 보면서 웃다가 콧날이 시큰했다.
이 노배우는 1934년생 이순재다. 근년에는 기억력 쇠퇴를 방어하는 중이다.
“암기력은 배우의 필수조건이고 그걸 못 하면 내려와야 한다”며 그가 비방을 들려줬다.
“암기훈련을 자주 합니다. 기억력 감퇴를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어요.
틈날 때마다 미국 대통령 이름을 1대 조지 워싱턴부터 46대 조 바이든까지 죽 암송하곤 합니다.”
“연기는 할수록 더 어렵고 내 양심이 더 잘 안다”는 이 배우 말마따나 삶은 탄탄대로가 아니다.
난관이야말로 인생의 거름이라고 했다. 왜 아직도 연기를 하는지 묻자 돌아온 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솔직히 이것밖에 할 게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니까 합니다.
”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거침없이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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