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陶淵明(도연명)의 自祭文(자제문)
<치헌 >
陶淵明(도연명)의 自祭文(자제문)
序
歳惟丁卯(세유정묘)에, 정묘년(427)년,
律中無射(율중무역)이려니. 율려(律呂)의 무역(無射)에 해당하는 음력 구월 달.
天寒夜長(천한야장)하고, 날씨는 차고 밤은 긴데,
風氣蕭索(풍기소색)이라. 쓸쓸하고 스산한 바람 불어온다!
鴻鴈于征(홍안우정)하고, 기러기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草木黃落(초목황락)이라. 나뭇잎은 누렇게 말라 떨어진다.
陶子將辭逆旅之館(도자장사역려지관)하여, 나! 도연명은 이제 여관처럼 머물던 세상하직하고,
永歸於本宅(영귀어본댁)이라! 영원한 나의 본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故人悽其相悲(고인처기상비)하며, 친구들은 애절하게 슬퍼하며
同祖行於今夕(동조행어금석)이라. 오늘밤 떠나는 날 위해 노제를 지내는 구나
羞以嘉蔬(수이가소)하고, 제상에는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薦以淸酌(천이청작)이라. 맑은 술을 따라 올린다.
候顔已冥(후안이명)하고 얼굴을 들여다봐도 나는 이미 죽은 몸
聆音愈漠(영음유막)하니. 소리를 들어보려 해도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嗚呼哀哉(오호애재)로다! 오호라! 슬프도다!
茫茫大塊(망망대괴) 끝없이 넓고 넓은 땅덩어리와
悠悠高旻(유유고민) 아득히 높고 높은 하늘이 있어,
是生萬物(시생만물) 이것들이 천하 만물을 낳았거늘
余得爲人(여득위인)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래로
自余爲人(자여위인)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오는 동안에
逢運之貧(봉운지빈) 가난한 운명으로 맞아 쳤구나!
簞瓢屢罄(단표루경) 대나무 밥그릇과 표주박은 자주 비웠었고,
絺綌冬陳(치격동진) 갈 옷을 걸치고 겨울 추위를 견디었다.
含歡谷汲(함환곡급) 계곡 흐르는 물 마시면서도 즐거워하였고
行歌負薪(행가부신) 나뭇짐을 지고 가면서도 노래 불렀다.
翳翳柴門(예예시문) 늘 사립문을 닫아 놓고 살았으며
事我宵晨(사아소신) 새벽부터 밤까지 날 위해 일했네.
春秋代謝(춘추대사) 봄가을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有務中園(유무중원) 부지런히 들에 나가 노력했었고
載耘載耔(재운재자) 철 따라 김매고 북 돋우며
廼育廼繁(내육내번) 이윽고 키우고 이윽고 늘려나갔다.
欣以素牘(흔이소독)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글을 읽었고
和以七絃(화이칠현) 칠현금 타며 즐거워도 하였다.
冬曝其日(동폭기일) 겨울에는 따스한 햇볕도 쬐어보고
夏濯其泉(하탁기천) 여름에는 샘물로 몸을 씻기도 하였다.
勤靡餘勞(근미여로) 부지런히 수고롭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心有常閒(심유상한) 마음은 언제나 한가롭기 짝이 없었다.
樂天委分(락천위분) 즐거운 마음으로 분수에 알맞게
以至百年(이지백년) 이렇게 평생을 살아 왔도다!
惟此百年(유차백년) 오로지 백 년도 못 되는 이 세월에
夫人愛之(부인애지) 대체로 사람들은 사랑도 하고
懼彼無成(구피무성) 이룬 것 없음을 두려워도 하며
愒日惜時(게일석시) 하루 한 시각도 아쉬워하는구나.
存爲世珍(존위세진) 사람들 살아서는 세상에서 대접 받길 바라고
沒亦見思(몰역견사) 죽어서는 오래 기억되길 바라지만
嗟我獨邁(차아독매) 하지만 나는 홀로 어리석어
曾是異玆(증시이자) 오래 전부터 그들과는 다르게 살았다.
寵非已榮(총비이영) 총애받기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았고
涅豈吾緇(열기오치) 속세의 진흙탕에도 물들지 않았다.
捽兀窮廬(졸올궁려) 허름한 초가에 살면서도 나를 우뚝 하게하였고
酣飲賦詩(감음부시) 술을 즐기며 시도 지었다.
識運知命(식운지명) 내 운명을 스스로 알고 천명을 깨쳤으니
疇能罔眷(주능망권) 능히 분수를 알았고 얽매일 것도 없구나.
余今斯化(여금사화) 이제 내 운명을 따라 나는 지금 죽어가지만
可以無恨(가이무한) 더 이상의 여한이란 있을 수 없다.
壽涉百齡(수섭백령) 백 살 가까이 살만큼 살았고,
身慕肥遯(신모비둔) 몸은 두텁게 은둔하기를 좋아하여
從老得終(종로득종) 살만큼 살았고 늙어서는 죽게 되니
奚所復戀(해소복련) 무엇을 다시 바랄 것이 있겠는가?
寒暑逾邁(한서유매) 추위와 더위 연이어 지나고
亡既異存(망기이존) 죽음은 이미 삶과 다르게 되었다.
外姻晨來(외인신래) 먼 친척들은 새벽부터 오고
良友宵奔(양우소분) 친한 친구들은 밤에도 달려와서
葬之中野(장지중야) 들판 가운데 나를 묻어
以安其魂(이안기혼) 내 영혼을 편안하게 해주는구나.
窅窅我行(요요아행) 깊고도 먼 나의 저승길
蕭蕭墓門(소소묘문) 무덤 속은 너무나도 적막하고 쓸쓸하다
奢侈宋臣(사치송신) 송신 환퇴 같이 호화롭게도 하지 말고
儉笑王孫(검소왕손) 검소함은 한나라 왕양손을 비웃을 정도로 하시오.
廓兮已滅(곽혜이멸) 관이야 썩어서는 사라질 것이니
慨焉已遐(개언이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탄하리라
不封不樹(부봉부수) 내 무덤엔 봉분도 만들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고
日月遂過(일월수과) 햇볕과 달빛만 지나가게 하리오.
匪貴前譽(비귀전예) 살아서도 명리를 귀히 여기지 않았거늘
孰重後歌(숙중후가) 죽은 후에야 그 누가 칭송하며 중하게 여기랴?
人生實難(인생실난) 살아생전에도 어렵게 살았는데
死如之何(사여지하) 사후 세계 또한 그러하면 어찌하나?
嗚呼哀哉(오호애재) 오호라 ! 서글프고 애통하도다!
도연명(365~427): 자는 연명, 또는 원량(元亮). 이름은 잠(潛).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 심어두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다.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시상(柴桑)출생. 그의 증조부가 서진(西晉)의 명장 도간(陶侃)이며, 외조부가 당시 동진(東晋)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하는데, 그의 부친은 이름 없는 선비에 불과하여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알 길 없을 정도로 그의 어린시절은 그리 풍족치 못한 한미한 가정에서 자랐다. 29세 때 처음 관직으로 미관말직인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곧 사임하고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시달리며 한직에 머물다 41세시 누이의 죽음을 빌미로 팽택현(彭澤縣) 현령을 끝으로 평소에 늘 그리던 전원생활로 돌아갔다. 바로 팽택현 현령 사임사(辭任辭)가 바로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 후 향리에서 전원생활로 일생을 스스로 괭이 들고 농사지으며 가난과 병으로 괴로운 나날 중에도 시작(詩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시로 역대 중국을 대표하는 자연주의 전원시의 일 대가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주요작품으로 (귀원전거)(오류선생전)(도화원기)등이 있다.
주1)율중무역: 음악의 12율 중 하나. 그것을 일년에 비하면 9월에 해당한다.
2)조: 먼 길을 떠 날 때 지내는 노제(路祭).
3)후: 들여다보는 것. 바라보는 것.
4)령: 소리를 듣는 것. 귀를 기울이는 것.
5)단표: 대나무로 만든 밥그릇 과 물 떠먹는 표주박.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 논어 옹야편 제9장 의 것을 인용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곳에 있는 것을 남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안회여!”)
(子曰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6)치격: 고운 갈포 치와 거친 갈포 격. 다시 말해 베옷을 말한다.
7)예예: 날씨가 어둑어둑한 모양.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한적하여 날씨가 어두운 모양으로 은유하였다.
8)소신: 밤과 아침. 아침과 저녁.
9)요요: 아득히 먼 모양
10)송신:공자께서 천하를 주유할 때 송나라를 지날 때 환퇴라는 송나라 대부가 공자를 죽이려 한 일이 있다. 그 송의 대부 환퇴가 죽은 뒤 시체를 넣을 곽을 만들게 하였는데 너무 공을 들여 3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고사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전해지는데, 그런 사치스런 곽을 만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말 함이다.
11)왕손: 한(漢)나라 때의 양왕손(楊王孫)의 고사로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에게 자기가 죽은 뒤 검소한 장사를 지내도록 여러 가지 까다로운 유언을 하였다 한다.
이 시는 대 시인인 도연명이 자신이 죽음을 예감한 듯 그가 죽은 해인 원가4년(元嘉4년:427년) 9월에 지은 시로 그의 절필(絶筆)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시이다. 대 시인 도연명은 이 시 자제문 이전에도 그의 죽음을 노래한 만가시(挽歌詩) 3수도 남겼는데, 모두 삶에 대한 그의 초연함을 잘 나타내고 있는 명문으로 꼽고 있다. 이 시 마지막에서도 “嗚呼哀哉(오호애재) 오호라 ! 서글프고 애통하도다!”라고 탄식하듯 읊고 있지만 시 전체의 분위기로 보아 그는 이미 삶과 죽음에는 달관한 도통한 도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공자께서도 말씀한 “아침에 도 서면 저녁에 죽어도 가 하리라.”(朝聞道 夕死 可矣)라는 경지에 들어섰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