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에서(2024.2.6)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바로 아버지가 계시는 산소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아버지를 그곳에 모셨다.
아버지는 어릴적 나에게 첫 번째 친구이자 유일하게
나를 믿어준 분이시다.
난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떠나 30대가 되어서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그때 벌써 아버지는 치매 초기 셨다.
어릴 적부터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존경
스러웠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새벽에 일어나시면 항상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밥 한 술 뜨시고 가게문을 열고 ,
마치면 운동을 가시고 그렇게 월,화,수,목,금,토, 그리고 주일이면
교회에서 하루 종일 계시다 돌아오시는 것을 1년 365일 반복하셨다.
그리고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셨다.오직 집,가게,교회뿐이셨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 태어나신 것 처럼 보였다.
나에게는 형이 있다.형은 어릴적부터 공부도 운동도 잘 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유난히 어머니는 형에게 헌신적일
정도로 적극적이셨다 .형이 중학교 학생회장을 하면 어머니는
어머니회장을 맡으셨다. 그런 반면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그런 형에게
비교당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공부를 못했다.
그러니 고등학교를 갈 때도 인문계는 커녕 실업계도 제대로 된 곳을
갈 수 없을 정도였다.학교에서 진학상담을 하러 엄마를 모시고오라고
하는데, 엄마대신 아버지가 오셨다.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고 아버지가
나오시더니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시며
말씀하셨다.:선생님께서 너가 학교에서 노래를 잘하니 예술고등학교에
가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해? 대신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고등학교 입시 때까지 학원도 가서 공부도 해야 될 것 같아:
그 외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성적이 좋지않아 실업계나 2차,3차,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상황을 ...
하지만 아버지는 일절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운좋게 예술고에 합격하고대학까지 졸업할 수 잇었다.
졸업 후 무대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일본의:사계:라는 극단에 뮤지컬
배우로 오디션에 합격을 했다 .당연히 그곳에서 배우로서의 삶이
이어지나 싶었지만 얼마 후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아버지는 당신이 하시던 일을 누군가
맡아줬으면 한다고 하셨다. 당시 형은 영국에서 학업을 하고 있었고
나도 내 나름대로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형은 그곳에서 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내가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맡게 되었다.
난 오랫동안 노래하고 연기하고 무대 일 밖에 해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몰랐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직원이 있어도 뭘 해야 되는지 알 수 었었다.그때 편찮으신 몸으로
아버지가 나에게 하신 부탁은 3가지였다 .
.: 첫번째 , 항상 웃어라.
두 번째 ,인사를 잘 해라.
마지막으로, 아는 척하지 마라:
이것 뿐이었다. 어떻게 판매를 하고 경영을 해야 하는지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버지께서 이 3가지를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난 지금 비지니스를 20년째 하고있다. 함게하고 있는 파트너와
우리 아이들에게 항상 아버지께서 내게 해 주신 이 3가지를 말해 준다
얼마전에는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다.
그때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아버지 감사해요.그리고 사랑합니다.:
(문기명님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