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김태형의 시시각각,경산 발해마을 (21.3.23)

한문역사 2024. 2. 11. 10:02

(42)대조영 후에가 사는 경산 발해마을 

발해는 韓 서린 우리 땅

말 탄 장수들이 거침없이 만주벌을 달립니다.

땅을 울리는 말 발굽 소리 ,하늘을 찌르는 함성이

골목  곳곳에서 생생한 벽화로 되살아났습니다.

:고구려 옛 땅을 호령하던 우리 조상들이지:

벽화 앞에 선 후손들이의 입담이 그칠 줄 모릅니다.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대조영 후손 집성촌입니다.

30호 중 27호가 백주 태(太)씨 영순공파 일족입니다.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운(運)을 다 해마지막 15대 

애(哀)왕의 아들 광현세자가  고려로 망명한 ,

그 황족(皇族)의 후손들입니다.

태(太)는 고려 때 대조영의 대(大) 와 같은 의미로 

통용돼 고려사(史) 2권에서부터 후손들은 태(太)씨로

기록됐습니다.

 

수년 전,조용하던 이 마을이 술렁거렷습니다.

:고구려,발해는 옛 중국의 지방 정권...:

중국은 동북공정을 일사천리로 해치웠습니다.

역사학자를 동원해 2002년 부터 시작 ,단 5년 만에 

우리 고구려,발해사(史)를중국사(史)로 둔갑시켰습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로 이어 온 

수천년 한민족 역사 한 축을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조상의 뿌리를 가져가다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후손들은 십시일반 돈을 풀고 의기투합 햇습니다.

먼저 태씨 남자 142명 얼굴사진 710장을 분석해 

대조영  정부표준영정 (제86호)을 만들었습니다. 

 

대조영 흉상을 세우고 발해기(旗)도 만들어 걸었습니다.

발해 왕궁 터를 찾아 정기 어린 흙도 한 줌 가져왔습니다.

집집마다 :발해 43세손 태 00 문패를 달고 

매년 춘분날엔 영정 앞에서 황제복으로 향(香)을 사릅니다.

 

몇 해 전부터는 경산시가 발 벗고 나섰습니다.

;발해 문화 현창 사업으로 박물관,역사관,고왕전(殿)을 짓고, 

발해 3대 문왕의 딸 정효공주 묘(墓)도재현할 예정입니다.

후손들은 역사관에 동북공정을 반박하는 자료로 채워 

대한민국 발해 교육장으로 가꿀 예정입니다.

 

698년 건국 926년 멸망 .

고구려의 대를 이어 동모산에 첫 도읍을 정하고 

독자 연호(年號)를 썼던 황제의 나라 해동성국 발해.

중국과 결이 다른 ,분명 한민족의 시간 이었습니다.

신라가 못다 한 남북국시대 역사의 한 축 이었습니다. 

 

동북공정 20년 ,중국 학생들은 이제 교과서에서

우리의 고구려,발해 를 그들의 역사로 배웁니다.

훗날 통일이 될 그날,잘못되면 고구려의 북한도 

그들의 역사,중국땅으로 뺏으려 들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발해다: 

핏줄로 ,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리려는 발해마을. 

봄바람에 마을 어귀 발해 깃발이 힘차게 펄럭입니다.

(2024.2.11 설 이틋날  신문에서 베껴 쓰다 본훈 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