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종택 모습
안채와 안마당
안채는 오른쪽에 대청이 3칸이며 안방은 왼쪽 2칸이다. 그리고 그 끝에 부엌이 달려 전형적인 경상북도 양반가옥의 구조인 'ㅁ'자형이다
안동 학봉고택 안채 대청
사당에서 바라본 안태와 사랑태
사당채-왼쪽 안채와 사랑채 난간이 보이고 오른쪽은 운장각이다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모신 사당
학봉고택의 운장각
안동 학봉고택 운장각
학봉종택 안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운장각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 운장(雲章)은 “저 넓디넓은 은하수(倬彼雲漢), 하늘에서 빛나고 있네(爲章于天)”라는 중국 최고(最古) 시집 「시경詩經」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운장각에는 왕에게 학술을 강의하고 토론한 내용을 기록한 「경연일기(經筵日記)」, 기행문인 「해사록(海.錄)」 등 김성일의 친필 원고와 안경, 벼루를 비롯한 그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또한 역사서인 「사기(史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같은 조선 초기 간행한 고서(古書) 56종 261점과 왕이 내리는 명령서인 교서(敎書), 군사 지휘권에 관한 명령서인 유서류(諭書類) 등의 고문서 17종 242점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서 중에는 국가지정보물도 있다 제초고 및 선조 전래의 전적문서(보물 제906호)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0여점의 유적이 소장되어 있다.
학봉 기념관인 운장각에는 총 1만5000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고 이 가운데 503점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비록 국가문화재는 아니지만, 종가에서 귀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위 사진의 병풍은 15대 종부인 이점숙씨가, 1566년 퇴계가 학봉에게 전해준 ‘병명’을 3년 동안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제작한 12폭 병명병풍이다. 병명이란 학맥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퇴계는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공자·주자에 이르는 심학의 요체를 손수 정리하고 써서 29살의 학봉에게 전했다.
정면에 별채 풍뢰헌(風雷軒) 왼쪽에 사랑채와 운장각이 보인다
풍뢰헌(風雷軒)은 3대 종손 김시추 옹이 지었다. ‘선한 것을 보면 바람이 몰아치듯 즉시 실행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되 우뢰처럼 신속히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학봉이 세운 가풍이기도 하다.
별채 풍뢰헌
풍뢰헌도 누각 형태로 앞면 4칸에 가운데 2칸은마루를 깔고 좌우 한칸씨 온돌방을 넣었다. 그리고 툇마루를 길레 달아내었고 난간을 둘렀다 특이한 것은 처마 끝의 김 서까래 위에 짧고 네모진 며느리 서까래를 다시 있대어 달낸 겹처마로 되어 있다. 이는 왕이 머무는 곳을 뜻하며 궁궐이나 별궁 이외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별채 풍뢰헌(風雷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