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일로 여기다간 큰일납니다.
18년 지난 2월 18일, 올해도 무심히 지나칠까요
2003년 2월 18일
그곳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도로는 다급한 소방, 구급차로,
하늘은 시커멓게 치솟는 연기로 뒤덮혔습니다.
:지하 3층에 사람이 갇혔다! :
구조대 무전기의 떨리는 목소리에
대구역 지하 선로를 더듬어 들어간 화재 현장.,
매연은 뜨겁고 터널은 화덕처럼 달아올랐습니다.
들어가다 되돌아 나오길 수차례,
:평생 후회: 두려움이 등을 떠밀었습니다.
암흑 속 전동차가 구슬프게 이글거렸습니다.
달궈진 열기에 발바닥마져 따가왔습니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작정 달려 온 소방구조대, 지하철 역무원들은
산 자를 업고, 살기 위해 터널을 뛰쳐나가더니
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눈물로 되돌아왔습니다.
사망 192명, 부상 148명.
1995년 아제르바이잔 (사망289명, 부상 270명)
지하철 화재에 이어 세계 지하철 사고 사상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낸, 슬픈 날이었습니다.
벌써 18년이 흘렀습니다.
세월만큼 지하철도 많이 진화했습니다.
전동차, 소방, 전기, 통신시설이 개선되고
지하철 승강장엔 안전 펜스가 들어섰습니다.
더 이상 :압축 성장:은 안 된다며 참사를 계기로
만든 재난안전법도 많이 다듬어 졌습니다.
어이없는 재난에 희생자 유가족은
평생의 한(恨)을 대신 떠안아 살고 있습니다.
부상자들의 삶은 더 안쓰럽습니다.
정신질환, 뇌병변, 폐질환, 호흡기질환...
화재 당시 들어마신 뜨거운 유독가스에
후두암 환자가 무려 70명이나 나왔습니다.
80%가 직장을 잃어 가족의 삶도 망가졌습니다.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수십 명을 구조한 뒤
부상자와 산소호흡기를 나눠 쓰다 끝내 쓰러진
한 소방관은 그 흔한 표창 하나 못 받고
병원을 전전하며 지금도 화재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동우 부상자가족대책위원장은
:2019년 10월 부상자 지원 조례가 제정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 이라며
:아직도 힘들고 부족한 게 많은 실정:이라 했습니다.
일상의 행복을 앗아간 거리두기
자고 나면 또 생명이 쓰러지는 화재,사고,산업재해...
삶이 전쟁이고 안전이 평화입니다.
그때 그 자리 중앙로역,
오늘도 시민들은 전동차에 부산히 몸을 싣습니다.
그날을 되새기며 또 묻습니다.
대구는, 대한민국은 지금 안전한가요? -끝-
(대구매일신문 김태형 선임기자의 時視角覺 편에서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放火로 인한 대참사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