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宣陵(조선 9대 성종의 능)에서 만난 왕사남
중앙일보
입력 2026.05.19 00:08
곽정식 수필가
세상이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가?
끝을 모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쇼킹한 베네수엘라 뉴스에
이어 늘어지는 이란전쟁으로 심란할 때 선정릉(宣靖陵)을 찾았다.
선정릉은 영원한 정(靜)의 상태로 들어간 조선 왕들이 누워있는 도심공원으로,
심신이 고단한 도시인들에게 피정(避靜)처 역할을 해왔다.
나 역시 생존과 자존의 문제로 갈팡질팡할 때면
이곳 숲길을 걸으며 냉(冷)과 정(靜)을 회복하곤 했다.
왕릉 자주 찾는 완도 출신 창환
고향 내력이라며 항상 웃는 표정
과거의 내 표정 왜 그리 굳었던가
선정릉 입구에서 세 개의 능까지 걷다 보면 다양한 활엽수와 봄꽃을 만난다.
입구에선 황매화가 개나리는 떠나도 봄은 여전히 노란색이라고 알려준다
. 라일락 향기 속에 하얀 쌀밥을 매단 이팝나무도 만난다.
마사토 산책로 양옆엔 군데군데 철쭉이, 그 아래 풀밭에는 민들레가
삼삼오오 피어있다. 왕릉 가까이에 다다르면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들과
한자 남짓한 바닥 디딤돌들이 능으로 가는 길을 인도한다.
그날은 왕릉에 쉽게 가려고 지름길을 택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잰걸음으로 숲을 가로지르는가 싶더니 꿩 한 마리가 ‘꿔겅’ 단발 울음소리를
내며 일직선으로 날았다.
꿩을 의미하는 ‘치(雉)’자에 화살 시(矢) 변이 들어간 것이 순간 이해되었다.
그때 뒤에서 “야~ 꿩 오랜만에 보네” 하는 탄성이 들렸다. 그에게 물었다.
“전에도 꿩을 자주 보셨어요?” “고향에서요. 봄 꿩은 울지 않는데,
오늘은 고양이 때문에 꿩이 놀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산란기라 꿩들이 예민하거든요.
” 미소를 머금고 말하는 그는 베토벤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제 고향은 완도의 부속 섬 고마도입니다. 완도 일대에는 꿩이 많지요.
” 자신을 ‘창환’이라고 소개한 그는 ‘왕사남’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다.
“왕사남이라면 왕과 사는 남자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 근처에서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는데 자주 이곳에 옵니다. 주말엔 가끔 헌인릉에도 가고요.
왕릉에 오면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듭니다. 그 맛에 자주 오곤 하지요.”
유머 섞인 몇 마디 대화로 가까워진 그와 산책을 마무리하며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이라고 하자 “제 고향 선배인 장보고의 스타일입니다”라고 답했다.
며칠 후 선정릉에서 창환을 다시 만났다. 웃음기 가득한 그에게
“뭐가 그리 좋아 늘 웃나요?”라고 묻자 그는 말했다.
“완도가 고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완도(莞島)의 완(莞) 자는 ‘빙그레 완’ 자입니다.
완도는 진도에 비해 바다에 생계를 맡기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았지요.
그래선지 ‘울면 더 서러워지고 웃으면 더 기뻐진다’는 말이 전해 내려옵니다.
고단한 삶의 한(恨)을 웃음으로 바꿔보라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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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환에게 완도가 섬이라 꿩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완도에는 꿩과 관련된 해학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꿩이 많습니다.
하루는 밭일을 하던 어르신이 농작물을 보호하려고 밭 주위에 그물을 쳤는데
꿩이 걸렸답니다. 어르신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서둘러 꿩 털을 뽑은 후
막대기에 묶어 놓았는데, 죽은 척하던 꿩이 도망쳤대요.
꿩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어르신은 ‘그래 봤자 꿩 저만 춥지’라며
혼잣말로 마음을 달랬다고 합니다.”
창환에게 완도와 장보고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했다.
“장보고와 완도 사람들은 사치품이었던 도자기를 팔며 바다를 누볐습니다.
그들은 고객인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도 잘 지내야 했죠.
해외고객들에게 먼저 미소 지으며 마음을 샀을 겁니다.”
왕사남, 창환을 만난 후 나는 ‘지난날의 나’도 만났다.
과거의 나는 늘 샹그릴라를 꿈꾸며 이상향은 저 멀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가보지도 않은 피안의 땅 샹그릴라를 그리며 불만 속에 살았다.
그 무렵 사진을 보면 얼굴은 굳어있고 표정은 심각했다.
‘바로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지 않고 피안의 땅만 찾아 헤맸던 탓이다.
내가 먼저 웃으면 이웃도 함께 웃었을 텐데. 인간관계를 동락(同樂)의 모드로 바꾸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 그것이 곧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은 낮은 자세로 나를 팔고 남을 사는 과정이 아니던가.
하늘도 복을 줄 때는 주변 사람을 통해 준다고 했다.
나 역시 이젠 누군가에게 복의 전달자가 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곽정식 수필가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9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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