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중앙 시조 백일장 - 5월 수상작] 선거 셀프 주유 중 外
입력 2026.05.26 00:02
장원
선거 셀프 주유 중
이연순
자주 하는 공회전 민심이 시끄럽다
바퀴 달린 목소리 어디든 굴러가서
약점에 민감한 날들 표심을 주유한다
고객 유치 현수막 커다랗게 걸어두고
이력의 가격경쟁 한쪽으로 쏠릴 때
로고송 빅 카드 할인 일회용을 남발한다
넘치는 헛말들이 휘발되어 사라져도
주유구에 연결하면 가득 차는 공약들
악수는 시동이 걸려 거침없이 달려간다
◆이연순
2025년 1월 중앙시조백일장 차하, 2024년 2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차상
그랬다가는
이경아
정밀타격한 초점이 화르륵 불타고
덜컥, 겁이 난 총을 든 아랍인들
도시는 부수적 피해로 곡소리 떠돈다
앙상한 뼈 드러난 부서진 회색 건물들
무성한 올리브나무 몸서리치는 붉은 밤
백향목 아름드리 뗏목 바닷길에 처박힌다
폐기된 율법은 핵폭탄의 가장행렬
하늘엔 기계새가 막무가내로 자폭하고
역병에 새로운 종족이 기세좋게 발현한다
차하
오월 밥상
박행자
거리의 이팝나무 솥뚜껑이 열리자
뜸 들여 보슬보슬 단내 나는 고봉쌀밥
허기진 오월의 가슴 눈시리게 피었다
아스팔트 삼키지 못한 뜨거운 비명
총성 속 흩어진 건 붉은 꽃잎뿐이랴
어머니 손끝에 맺힌 소금꽃 봉분 하나
생때같은 목숨을 앞세워 보내려니
올올이 눈물로 짠 무명베 옷 한 벌을
햇살이 차려낸 밥상 울컥울컥 목이 멘다
이달의 심사평
시조의 음보는 자수율 맞춤을 넘어 대상을 내면화하는 ‘의미화의 과정’이다. 음보의 과함이나 부족함은 정형시의 정체성을 되묻게 한다. 형식의 틀에서 감정의 밀도를 유기적으로 다스릴 때 현대시조의 미학이 완성된다.
장원 ‘선거 셀프 주유 중’은 선거철 풍경을 일상의 공간으로 끌고 와 능란하게 변주했다. 음보의 호흡을 잃지 않으며 압축적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했다. 거친 헛말과 공약의 과부하를 정형의 틀 속에서 유기적으로 다스려 내용과 형식의 단단한 결속을 확인케 한다.
차상 ‘그랬다가는’은 전장과 문명사적 파국을 묵시록적 언어로 강렬하게 밀어붙인다. 긴 호흡 속에서도 이미지의 연쇄 충돌을 통해 비극의 참상을 정밀하게 시각화하는 힘이 상당하다.
차하 ‘오월 밥상’은 이팝나무꽃에서 고봉밥과 소금꽃 봉분을 읽어내는 서사의 낙차가 깊다. 역사적 상흔을 어머니의 눈물과 밥상이라는 서정의 극한으로 받아내며 정형의 영토를 아프고도 단단하게 넓혔다. 시조가 도달할 수 있는 의미화의 가능성을 다채롭게 증명해 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강정숙·이송희(대표집필)
초대시조
꽃다지 성당
권규미
세상에 이리 작은 성당이 있을 수 있나
이리 작은 기도처를 누가? 여기 세웠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 聖所인데
이 세상 각양각색 꽃이 핀다는 것은
슬픔도 꼭 그만큼 우리 생에 스민 까닭
가만히 두 손 모으고 그 앞에 무릎을 꿇다
◆권규미
경북 경주 출생. 2013년 『유심』 등단. 2023년 중앙신춘시조상 수상. 시집 『참, 우연한』, 『각시푸른저녁나방』 시조집 『누가 나를 놓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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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양지쪽 언덕바지에 작아서 더 귀한 꽃들이 복음처럼 피어납니다.
꽃다지며 봄맞이꽃 솜방망이 제비꽃 등, 누군가 시인을 일러 세상의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라고 했습니다. 들녘의 작은 꽃들 역시 삶에 지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순정하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꽃다지 성당’은 제목부터 옷깃을 여미게 하는 조용한 힘이 있습니다. 이른 봄에 혹한을 건너와 더듬더듬 피어나는 작은 꽃에 깃든 슬픔과 위안 혹은 강인함을 시인은 여섯 행의 절제된 형식 안에 온전히 담아냈습니다.
첫 연에서 “이리 작은 성당이 있을 수 있나” 라는 표현은 단순히 꽃의 외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여린 존재 안에서 신성함을 발견하는 따뜻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인간만이 아닌, 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건한 물음이 담겨있습니다.
“이 세상 각양각색 꽃이 핀다는 것은/슬픔도 꼭 그만큼 우리 생에 스민 까닭”이라는 표현은 우리들 세상살이, 저마다의 상처와 사연 또한 각양각색 피어나는 꽃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꽃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가 됩니다.
이 시조는 화려한 수사보다는 절제된 언어의 묘를 살려내어 작품에 담긴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오는 줄도 모르게 조용히 다녀가는 작은 꽃들 앞에 “가만히 두 손 모으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했듯이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생을 바람 부는 들녘의 작은 꽃들처럼 겸손하게 그러나 강인하게 살아내야겠습니다.
시조시인 정혜숙
◆응모안내
매달 18일까지 중앙 시조 e메일(j.sijo@joongang.co.kr)으로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도 받습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 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1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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