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과 이영도 시조시인의 못다한 사랑의 성지, 경북청도유천마을
- 우정옥 기자
경북 청도군에 위치한 유천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박제해 놓은 듯한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한국 문학사상 가장 애틋하고 지독했던 사랑의 서사가 흐르는 곳이다. 바로 한국 시조 문학의 거두인 이호우, 이영도 남매 시인의 생가가 자리한 유천마을 근대문화거리다.

이곳이 최근 일반인들과 사진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리움'의 정서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는 시조 시인 이영도를 향한 청마 유치환의 절절한 연심이 벽화와 시구로 새겨져 있다. 통영의 한 학교에서 국어 선생과 가사 선생으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그러나 유치환은 이미 가정을 가진 유부남이었고, 이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을 품고 있었다.

유치환은 죽는 날까지 20여 년의 세월 동안 이영도에게 무려 5,0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시가 되고 연서가 된 그 기록들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닿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해 평생을 바쳐 글을 써 내려갔던 한 남자의 순애보가 이영도의 고향인 유천마을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셈이다.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래된 극장 간판과 정겨운 상점들이 줄지어 선 근대거리는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지만 매력적인 '뉴트로' 감성을 선사한다. 특히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는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볼거리도 풍성하다.


최근 지자체의 노력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유천마을은 이제 단순한 낙후 지역이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근대 테마 거리로 변모했다. 주말이면 카메라를 든 출사객들이 골목마다 가득 차고, 연인들은 유치환의 편지 구절 앞에서 서로의 손을 꼭 맞잡는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빠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청도 유천마을은 잠시 멈춰 서서 '느린 사랑'과 '깊은 그리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번 주말, 소중한 사람과 함께 60년 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엔 여전히 부치지 못한 편지 한 장이 바람을 타고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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