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카테고리

조용헌 살롱)1546. 네 갈래로 갈라진 政局

한문역사 2026. 7. 6. 14:36

조용헌 살롱] [1546] 네 갈래로 갈라진 정국

입력 2026.07.05. 23:33
해방 후 미군정 체제하에서 특별한 중위 계급의 미군이 하나 있었다.
오하이오 출신의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 중위였다. 하버드 법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홀리 크로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45년 12월에 조선에 왔다.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미군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버치는 계급이 중위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군정청 내에서 학벌이 가장 좋았다.

정치적 판세를 예리하게 분석할 뿐만 아니라 문필력도 갖추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 그는 하지 중장의 비서로서 해방 정국의 정치 상황을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정치 고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 중장은 정치 감각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야전에서 총을 쏘고 전투하는 일에만 전념했던 전형적인 무골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숨겨진 속셈을 간파하는 정치적 촉수가 부족하였다.

 

버치는 해방 정국의 주도적 인물을 4명으로 압축하였다.

이승만,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이었다.

버치는 김규식과 여운형 두 사람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김규식은 중도우파, 여운형을 중도좌파로 분류하였다.

이 둘이 손을 잡는 ‘좌우 합작’ 노선이 버치가 생각한 해결책이었다.

이승만과 박헌영은 서로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좌우 합작은 실패로 끝났고 버치는 쓴맛을 보며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1948년 미국으로 돌아가며 ‘좌우 합작이 안 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후로 한국정치사에서 중도파는 결국 ‘실패하고 깡통찬다’는 교훈이 정립되었다.

‘명청대전’으로 좌파정권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이재명이 중도좌파이고 ‘문조털래유’가 강성 좌파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계엄 이후로 우파도 분열되었다. 계엄을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인정하는 쪽과,

‘그래도 계엄은 잘못되었다’고 보는 쪽으로 갈라졌다.

계엄찬성파를 강성 우파로 보고 계엄반대파를 온건 우파로 볼 수 있다.

우파도 갈라지고 좌파도 갈라져서 정국이 사분(四分)되어 있는 형국이다.

버치가 생각했던 구도와 닮았다.

이 복잡한 정치 구도를 태극기에 비유하면 정권쟁취라는 태극(太極)을 두고

건(乾)·곤(坤)·감(坎)·리(離) 4괘가 포진한 형국이다. 감과 리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에 해당한다.

‘참동계(參同契)’에서는 이 감괘와 리괘가 서로 합일을 이루어 신선이 되는 씨를 잉태한다

(坎離交媾)고 설명한다. 교구(交媾·성적 결합)가 아니면 월드컵 토너먼트 방식이다.

8강, 4강을 거쳐 결승에서 상대방을 압살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