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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장항리 寺址

한문역사 2026. 7. 10. 16:37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유산] 경주 장항리 사지

문정화 기자 님의 스토리
  1일  
6분 읽음
경주 장항리 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절터다. 정확한 절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마을 이름인 장항리를 따서 불려지고 있다. 절터에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금당터, 불상을 받치던 석조 불대좌가 남아 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은 “어디에도 머물러 집착하지 말라. 그러한 상태에서 마음을 일으켜라”라는 뜻으로, 불교적 사유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는 세상 만물이 고정된 실체 없이 끊임없이 변하므로, 그 어떤 대상이나 관념에도 집착하지 말고, 바로 그 비어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향한 맑고 주체적인 마음을 일으키라는 가르침이다. 절터에 서면 이 말이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대로 비어 있고, 남은 것은 남은 대로 침묵한다. 그러나 그 비어 있음은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사라진 것들이 우리 안에서 다시 말을 걸어오는 열린 공간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두 종류의 침묵이 남는다. 하나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말하는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품은 침묵이다. 경주 토함산 동쪽 능선 아래 깊숙이 자리한 장항리 사지는 후자에 가깝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먼저 귀를 채우고, 가파른 계단 끝 숲 사이로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오래된 절터는 천년이라는 시간을 품고도 놀라울 만큼 담담하다. 화려한 전각도, 높다란 담장도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절터는 건물이 사라진 공간이 아니다. 시간의 껍질이 벗겨진 자리다. 우리는 남아 있는 돌 하나, 기단 하나, 탑 하나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복원한다. 마치 몇 줄의 악보만으로 거대한 교향곡을 떠올리듯, 흩어진 유적은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절터를 걷는다는 것은 돌을 보는 일이 아니라 돌 너머의 시간을 읽는 일이다. 그래서 장항리 사지는 말 없이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다.

경주는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지만, 장항리 사지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황룡사지처럼 압도적인 규모도 아니고, 불국사처럼 화려한 장엄도 없다. 대신 숲과 계곡, 적막한 산기슭이 절터를 감싸안고 있어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이 만든 것이 오랜 세월 하나로 스며든 풍경을 보여준다. 사람의 손길은 사라졌지만, 자연은 그 자리를 천천히 이어받아 또 하나의 사찰을 완성하고 있다.

인간의 삶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오래 남는 것은 시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정신이다. 장항리 사지를 걷다 보면 우리는 무너진 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도 사라지지 않은 마음의 힘을 만나게 된다.

장항리 사지의 동탑과 서탑 우측 건물터는 석조여래입상을 모셨던 금당 자리로 보이며, 석조 불대좌는 이 건물터의 중앙에 조성되어 있다. 건물의 받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로, 남아 있는 주춧돌을 볼 때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의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장항리 사지, 숲속에 남겨진 통일신라의 시간

장항리 사지는 토함산 동쪽 대종천 상류 계곡에 자리한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다. 절의 창건 연대와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현재는 마을 이름을 따라 ‘장항리 사지’라 부른다. 절터에는 동탑과 서탑, 금당터, 불상을 받치던 석조대좌가 남아 있다. 계곡 사이의 협소한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개의 탑을 전면에 나란히 세우고 그 뒤 중앙에 금당을 배치한 쌍탑 일금당식 가람은 공간을 조화롭게 경영한 통일신라 사찰의 창의적인 전형을 보여 준다.

금당터에 남아 있는 석조 불대좌는 정교하게 조각된 하대석과 연꽃무늬가 선명한 상대석이 이중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구조다. 이 위에 서 있었던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1923년 도굴범들의 폭약 사용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나 수습되어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복원·보존되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정원에 복원된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둥글고 자비로운 얼굴과 몸에 밀착된 옷 주름에서 여전히 통일신라 불상의 온화한 정신을 전한다. 절터에는 불상 대신 대좌가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서 있던 주인은 떠났지만, 그 빈자리 덕분에 오히려 존재의 무게는 더욱 깊게 다가온다.

장항리 사지는 호국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토함산을 넘어 감은사와 문무대왕릉, 동해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신라 사람들은 동해에서 밀려오는 외적을 막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곳에서 불법과 국가를 함께 지키려 했을 것이다.

장항리 사지 서오층석탑과 동오층석탑.

◆ 동탑과 서탑, 무너짐과 보존이 나란히 선 자리

장항리 사지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놓인 풍경이다. 서탑은 정비되어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동탑은 1층 탑신과 지붕돌 일부만 남아 있다. 하나는 다시 세워졌고, 다른 하나는 무너진 흔적을 간직한 채 절터에 남아 있다. 이 두 탑의 대비는 장항리 사지가 지닌 가장 깊은 상징처럼 보인다.

완전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부서진 것이 더 많은 말을 건넨다. 온전한 서탑이 통일신라 석탑의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 준다면, 무너진 동탑은 시간의 상처와 역사의 폭력을 증언한다. 절터 한가운데서 두 탑은 마치 인간 삶의 두 얼굴처럼 서 있다. 우리는 무너진 것을 통해 상실을 배우고, 다시 세워진 것을 통해 회복을 생각한다.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 초층탑신 문비 및 인왕상.

◆ 서 오층석탑, 천년을 견딘 수호자의 얼굴

장항리 사지의 중심에는 국보인 서 오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비례를 유지하면서도 드물게 오층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린 형식은 안정감과 상승감을 동시에 준다. 기단부는 넓고 단정하며, 각 면과 모서리에는 기둥을 본떠 새겨 탑 전체의 균형을 부여한다.

탑신부는 여러 개의 석재를 조화롭게 결합하여 단단하게 쌓아 올렸다. 지붕돌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으로 뻗다가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치켜 올라간다. 이 작은 반전 때문에 탑은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맑은 긴장감을 얻는다. 돌로 만들었지만, 돌처럼 둔중하지 않다. 단단하면서도 경쾌하고, 엄숙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초층 탑신 네 면에 새겨진 금강역사상은 이 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문비 양쪽에서 불법을 지키는 이 수호신들은 근육을 긴장시킨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사방을 지킨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자세는 당당하고 표정은 위엄 있다. 몸의 비틀림과 팽팽한 긴장감, 옷 주름의 섬세한 표현까지 뛰어나 작은 부조임에도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 조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 안에 모신 성스러운 세계를 보호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석탑에 이처럼 정교한 금강역사상을 새긴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 예술성과 상징성 덕분에 불교 조각사와 도상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통일신라 8세기 조각 예술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신라인들은 탑을 하늘로 향한 기도이자, 땅 위의 나라를 지키는 정신적 성채로 세웠다.

석조여래입상을 떠받쳤던 장항리사지 석조 불대좌.

◆ 폭파와 복원, 탐욕을 넘어선 기억의 힘

1923년, 도굴범들은 탑 안의 사리를 훔치기 위해 폭약으로 동탑을 무너뜨렸다. 금당의 불상도 이 과정에서 함께 넘어져 크게 파손되었다. 인간의 탐욕은 천년을 버틴 돌조차 무너뜨렸다. 그러나 파편화된 돌들을 수습하고 붕괴 위험에 처했던 서탑을 건져 올려 1932년 다시 복원했다. 돌은 상처를 입었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항리 사지의 탑은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선다. 그것은 폭력 이후에도 남는 것, 훼손 이후에도 다시 세워지는 것, 인간의 욕망보다 오래 지속되는 정신의 힘을 보여 준다. 역사는 언제나 순결하게만 남아 있지 않다. 그 안에는 파괴와 약탈, 망각과 복원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장항리 서 오층석탑은 바로 그 복잡한 시간을 온몸에 새긴 채 서 있다.

신라인들은 돌을 단순히 쌓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 향하는 마음을 한층 한층 올려놓았다. 그래서 이 탑은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기도이고, 조형물이면서 정신의 상징이다. 탑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돌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서둘러 지나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장항리사지 석조여래입상. 불상은 1932년 서탑을 복원할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하고 있다. 불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됐던 것을 복원했으며 광배 일부와 무릎 이하는 사라지고 없다.

◆ 절터와 탑이 우리에게 남긴 것

절은 사라졌고, 불상도 제자리를 떠났다. 탑은 여전히 절터를 지키고 있다. 건물이 사라져도 정신은 남는다. 폐허는 결핍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이다. 남아 있는 것보다 사라진 것이 더 많기에 우리는 그 빈자리를 자신의 사유로 채워 넣는다.

장항리 사지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서 오층석탑을 오래 바라본다.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계곡물은 천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문득 탑은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서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시간을 이길 수 없지만, 어떤 마음은 시간 속에서 더 깊어진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상처 없는 생은 없고, 폐허를 지나지 않은 정신도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은 무너진 자리에서 허무를 보고,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다시 세울 가능성을 본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짐이 끝은 아니다. 사라진 것들은 때로 더 깊은 형식으로 우리 안에 남는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작은 아치교로 가는 길, 숲은 더욱 깊어지고 저녁 햇살이 탑의 모서리를 천천히 붉게 물들이고 있다. 천년의 침묵은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새로운 순례자를 기다리며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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