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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 짓고 읊으며

한문역사 2026. 7. 13. 18:44

시조 짓고 읊으며 문학적 상상…AI 시대 소중한 인재”

최혜리, 정은혜2026. 7. 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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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 모인 시조백일장 참석자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I(인공지능) 앞에서도 문학적 상상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이, 새 시대의 소중한 인재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 제12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의 본심과 제9회 중앙학생시조암송경연대회 예·본심을 앞두고 이승현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이 전국에서 온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교육부가 후원하며 한국시조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청소년이 직접 시조를 짓고 외우며 문학 장르를 체험할 수 있어 ‘청소년의 시조 축제’로도 불린다.

 

올해 420명이 시조백일장 예심에 응모했고, 이날 본심 현장 참여자는 195명이었다. 지난해 12명이 참여했던 시조암송경연대회에는 6명이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암송 대상 시조 50편의 대부분이 단시조였는데, 올해는 연시조 위주로 길게 바뀌어 응모자가 줄어들었다. 제주와 진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참여자도 있었다.

오전 11시 김영주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이 시제를 발표했다. 초등부는 ‘시험’과 ‘하늘’, 중등부는 ‘가로등’과 ‘일기예보’, 고등부는 ‘길’과 ‘바닥’이었다. 백일장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작은 손으로 머리를 짚거나, 펜을 쥔 손을 굴리며 시조 짓기에 열중했다.

오후 2시부터 시조암송경연대회가 시작됐다. 대회는 한국시조시인협회가 5월 공개한 시조 50편 중 현장에서 학생이 뽑은 번호의 시조를 외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노창수 시조암송경연대회 심사위원장은 “시조 암송의 정확도, 시조의 이해도와 의미전달력, 운율 및 감정 표현력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겠다”고 설명했다.

예선에 오른 참가자들은 자신이 뽑은 2개의 시조를 각각 암송했다. 본심은 예심을 통과한 4명의 학생이 두 명씩 짝을 지어 1대1 토너먼트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결승에선 차분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시조를 읊은 진주주약초 4학년 김선유양과 세움기독초 5학년 이주환군이 맞붙었다. 여섯 번의 치열한 승부 끝에 암송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한 자도 틀리지 않은 김선유 학생이 시조암송경연대회 대상을 받았다.

이어 전체 부문 시상에 앞서 염창권 시조백일장 심사위원장이 심사 총평을 발표했다. 염 심사위원장은 “특히 고등부의 경우 현역 시조시인만큼 우수한 작품들을 써낸 학생도 있었다”고 칭찬했다.

교육부장관상인 대상은 김영진 교육부 학교정책국장이 시상했다. 시상 전 김 국장은 “오늘 대회가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과거의 박제된 문화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문화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교과서 안에 글자로만 만났던 시조를 우리 학생들이 직접 마음을 담아 쓰고, 고운 목소리로 읊조리는 경험은 참으로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사장상을 시상한 예영준 중앙일보 논설실장은 “짧고 빠른 숏폼 콘텐트가 주류인 시대에 시조를 쓰고 암송하려 모인 여러분의 발걸음에는 단순한 창작 이상의 가치가 있다”며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조 짓기는 혐오와 배척이 넘치는 시대에 여러분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초등부 대상 이주환(세움기독초5)


하늘

거대한 물난리가 땅을 삼키기 직전
하늘도 엄마한테 쓴소리 듣고 있나 봐
혼나서 서러웠는지 장마를 쏟아낸다

 

바람까지 협동해서 비바람 몰아치고
맨홀뚜껑 밀쳐내고 물줄기 치솟는다
내마음 깊은곳에도 말썽을 일으킨다

 

뭐든지 쓸고다니는 이기적인 흙탕물들이
서로서로 맞장구치며 점점더 불어나면
사람들 아무것도 못해 눈물뚝뚝 발만동동


“사물에 감정 넣는게 시조의 매력…마음으로 수상 기쁨 느끼고 있어”

세움기독학교 5학년 이주환(11)군은 올해 시조백일장 초등부 대상을, 시조암송경연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시조백일장 초등부 장려상을 받았다. 이군은 “우리 시조를 가르쳐 주신 김계정 선생님(시조시인 겸 세움기독학교 강사)께 감사하다. 상을 받을 때 잘 웃지 못했는데 마음으로는 아주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시제는 ‘내 동생’이었다. 외동인 이군의 체감 상 올해 시제가 더 쉽게 다가왔다. 하늘을 떠올리며 첫 수를 쓰고, 장마를 떠올리며 두 수를 지었다. 암송도 함께 준비했다. 하루에 두 개씩 시조를 외우다가, 50편을 다 외운 후에는 매일 50편씩 들여다봤다. 이군은 “단순한 사물에도 감정을 넣고 행동을 입혀 볼 수 있는 게 시조의 매력”이라고 했다.


중등부 대상 강호민(고양지도중2)


가로등

고장나 끊임없이 깜박이는 너의 모습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모스부호
소통을 할 순 없지만 계속해서 말하네

 

희미한 빛아래서 생각에 빠져들고
오래전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아무도 보이지않는 깊고 깊은 밤이다

 

건강이 약화되어 말하기 쉽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초라한 너의 모습
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만큼 힘드네

 

어둠을 밝혀주는 하늘에 저 별처럼
찬란히 반짝이던 아름다운 너의 불빛
네 빛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기를


“중학생 되며 시 쓰는 재미 알게돼…이과 진로 원하지만 꾸준히 쓸 것”

고양 지도중학교 2학년 강호민(13)군은 중학교 도서부원이 되며 시 쓰는 재미를 느꼈다. “상을 받을 줄 몰랐는데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먼저 일기예보로 쓰다가, 잘 안풀려서 가로등으로 시제를 바꿨다”는 강군은 어느 날 저녁 길에서 본 고장난 가로등에 영감을 받았다. “깜빡이는 모습이 마치 메시지를 품은 듯한 모스부호 같았다”고 했다.

지난해 강군은 시조암송경연대회에 도전해 우수상을 받았다. 시조암송이 시조짓기에 영감을 줬다. 그는 “암송이 글쓰기에 도움이 됐다. 우선 시조의 형식이 몸에 익었다”고 했다. 반도체 공학 등 이과 진로를 희망하지만 시는 꾸준히 쓰려한다. 강군은 “시 쓰는 게 재밌고, 도서부원들과 함께 백일장을 다니며 도전하는 경험이 좋다”고 말했다.


고등부 대상 김예은(대성여고3)


반달이 가장 먼저 닿는 언덕 꼭대기엔
꼽추가 되어버린 등허리의 사내가
둥글게 휘어져버린 곡선 따라 오르내리고

 

신속배달 안전식품 스티커 붙이고서
온 동네 누비면 어느덧 철가방 속은
한 입만 베어 문 초승달로 가득 차 있어요

 

가난의 내력은 어디서부터 내려온 걸까
비탈길 따라서 내려오는 남자는
오늘도 손바닥 가득 저녁을 묻혀와요

 

짜장면 배달이요 고여있던 목소리가
언덕을 올라갈 때 사내의 솟은 등은
저 달이 가장 먼저 닿는 언덕이 되어요


“굽은 등으로 표현한 인생 굴곡…긴 삶 걸어온 심정 이해하고파”

길을 시제로 택한 김예은(18)양의 시조에 심사위원은 “현직 시조시인을 능가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자신의 길을 은유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란 평가도 있었다.

김양은 “상을 탈 줄은 몰랐는데 막상 받으니 안 믿긴다.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시제를 고른 이유는 “한 사람의 생을 길로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양은 이어 “인생의 굴곡을 빗대 ‘굽은 등’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긴 삶을 걸어온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어려서부터 작가를 꿈꿨다는 김양은 시조의 매력으로 운율을 꼽았다. “끊어 읽을 수 있는 운율이, 시와 다른 시조의 매력”이라고 했다.


암송경연 대상 김선유(진주주약초4)


벌써 네번째 암송대회 참가…“시조 외우는건 즐겁고 재밌어”

진주 주약초등학교 4학년인 김선유(10)양은 올해 네 번째로 시조암송경연대회에 참여한다. 지난 3년 간은 개명 전 이름인 김지명으로 참여해 차례로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양은 “시조를 외우는 건 즐거운 일”이라며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계속 읽다보면 잘 외워진다. 시조에 쓰인 단어들이 신기해서 외울 때 재밌다”고 했다. 시조는 외할아버지인 최영효 시조시인 덕에 접했다. 소설을 쓰며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다.

우수지도자상 김세진


도서부원 16명 모두 본선 진출…“숏폼 시대, 시조가 도움될 것”

올해 중등부 대상을 배출한 고양 지도중학교 사서교사 김세진(52)씨가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르자 학생들의 환호가 터졌다. 김씨가 가르치는 도서부원들의 목소리다. 예선에 응모한 도서부원 16명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 김씨는 지도 이유에 대해 “청소년기 작은 경험과 추억이, 어른이 된 후 든든한 심리적 바탕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숏폼의 시대지만, 읽고 암송하는 교육이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대회 시상·수상자들. (왼쪽부터) 예영준 중앙일보 논설실장, 김영진 교육부 학교정책관, 시조백일장 대상 이주환군(초등부)·강호민군(중등부), 우수교사상 김세진씨, 대상 김예은양(고등부), 시조암송대회 대상 김선유양, 정용국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심사평] 아무나 못 쓰는 문장들…시적 역량·호흡 돋보여


◆초등부=초등학생임에도 시제가 요구하는 점을 명징하게 유추했다. 각 세대가 자신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상징성 줄임말으로 연결된 요즘, 우리 고유의 시조를 창작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참가한 모두에게 상을 드리고 싶다.

초등부 심사위원 이남순·김종빈

◆중등부=전 연령 통틀어 중등부에 가장 많은 작품이 응모됐다. 이 중 일부만 선별해야 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상을 차지한 강호민은 시적 역량과 호흡이 돋보였다. 최우수상에 오른 신수아는 시제로 ‘일기예보’를 택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예리한 눈빛을 보여줬다. 우수상을 거머쥔 정혜민과 신재훈은 가로등을 의인화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중등부 심사위원 조영자·김강호

◆고등부=고등부에서는 시제를 잘 이해하고 풀어낸 수작이 많았다. 대상으로 선정된 김예은은 한 남자가 걸어온 길을 ‘반달’이라는 이미지에 은유했다. 그의 힘든 삶을 “저 달이 가장 먼저 닿는 언덕”에 빗대어 표현했다. 아무나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상상력을 보여줘 높게 평가했다.

고등부 심사위원 임성구·이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