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과 편집자 이광수는 3.1 운동의 실패를 보면서 좌절하여 조선 독립의 희망을 버리고식민체제에 협력했다.최남선 본인은 1940년 중국 동북 지역(만주)을 방문해서 조선인 독립군들한테 "조선 독립은 불가능하니, 일제에 항복하라."는 글을 직접 썼고, 이광수는 일제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열렬히 찬성하면서 조선인 청년들한테 '일본군에 자원입대하라'는 글을 연이어 썼다. 최남선 본인이 기미독립선언서에서 말한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라는 내용을 그 스스로 부정한 것이었다. 심지어 최남선은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된 이후에도 자신의 친일행각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깨진 벼루의 명 같은 시를 써서 오히려 자신이 옳았다고 변명하는 구차함을 보였다.
문장력은 깔끔하고 수려한데 현대에 비해 한자어 및 한문투 표현이 상당히 많이 사용됐다. 예를 들어 "이로써"는 "此로써", "얼마이뇨"는 "幾何ㅣ뇨"라고 하는 등 실질형태소는 거의 다 한자어로 표현했고, 恒久如一(항구여일)[5], 壓縮銷殘(압축소잔)[6], 土昧人遇(토매인우)[7]등 사자성어나 오늘날에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무더기로 나온다. 한문에 익숙했을 당대 지식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체가 아니었겠지만,문맹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당시에는 다수 민중에게는 이해하기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8]오늘날에도 그다지 읽기 쉬운 문장은 아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에게는 온건함과 더불어 민중에게 어필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띄어쓰기 및 한글화 적용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布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發露)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是)이 천(天)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何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야 유사 이래 누(累) 천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겸제(箝制)의 통고(痛苦)를 상(嘗)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 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이 무릇 기하(幾何)이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이며 민족적 존영의 훼손됨이 무릇 기하이며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裨)할 기연(奇緣)을 유실(遺失)함이 무릇 기하이뇨. 희(噫)라! 구래(舊來)의 억울을 선창하려 하면, 시하(時下)의 고통을 파탈(擺脫)하려 하면, 장래의 협위(脅威)를 삼제(芟除)하려 하면,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염의(廉義)의 압축소잔(壓縮銷殘)을 흥분 신장하려 하면,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遂)하려 하면, 가련한 자제에게 고치적 재산을 유여(遺與)치 아니하려 하면, 자자손손의 영구 완전한 경복(慶福)을 도영(導迎)하려 하면, 최대 급무가 민족적 독립을 확실케 함이니 이천만 각개가 인(人)마다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인류 통성과 시대 양심이 정의의 군(軍)과 인도의 간과(干戈)로써 호원(護援)하는 금일 오인(吾人)은 진(進)하야 취(取)하매 하강(何强)을 좌(挫)치 못하랴, 퇴(退)하야 작(作)하매 하지(何志)를 전(展)치 못하랴. 병자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이래 시시종종(時時種種)의 금석맹약(金石盟約)을 식(食)하얏다 하야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罪)하려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我) 조종세업(祖宗世業)을 식민지시하고, 아(我) 문화 민족을 토매인우(土昧人遇)하야, 한낱 정복자의 쾌(快)를 탐할 뿐이오, 아(我)의 구원(久遠)한 사회 기초와 탁락(卓犖)한 민족 심리를 무시한다 하야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하노라.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타(他)의 원우(怨尤)를 가(暇)치 못하노라. 현재를 주무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숙석(宿昔)의 징변을 가(暇)치 못하노라. 금일 오인(吾人)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有)할 뿐이오 결코 타(他)의 파괴에 재(在)치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오 결코 구원(舊怨)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他)를 질축배척(嫉逐排斥)함이 아니로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覉縻)된 일본 위정가의 공명적 희생이 된 부자연 우(又) 불합리한 착오 상태를 개선광정(改善匡正)하야, 자연 우 합리한 정경대원(政經大原)으로 귀환케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서 출(出)치 아니한 양국 병합의 결과가 필경 고식적(姑息的) 위압과 차별적 불평(不平)과 통계 숫자상 허식의 하에서 이해 상반한 양 민족간에 영원히 화동할 수 없는 원구(怨溝)를 거익심조(去益深造)하는 금래 실적을 관(觀)하라. 용명과감(勇明果敢)으로써 구오를 확정(廓正)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遠禍召福)하는 첩경임을 명지(明知)할 것 아닌가. 또, 이천만 함분축원(含憤蓄怨)의 민(民)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所以)가 아닐 뿐 아니라, 차로 인하야 동양 안위의 주축인 사억만 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危懼)와 시의(猜疑)를 갈수록 농후케 하야 그 결과로 동양 전국이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明)하니, 금일 오인(吾人)의 조선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영을 수(遂)케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사로(邪路)로서 출(出)하야 동양 지지자(支持者)인 중책을 전(全)케 하는 것이며, 지나로 하여금 몽매(夢寐)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 공포로서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이리오.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장양(鍊磨長養)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始)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來)하야 만물의 회소(回蘇)를 최촉(催促)하는도다. 동빙한설(凍氷寒雪)에 호흡을 폐칩(閉蟄)한 것이 피일시(彼一時)의 세(勢)이라 하면 화풍난양(和風暖陽)에 기맥(氣脈)을 진서(振舒함은 차일시(此一時)의 세(勢)이니, 천지의 부운에 제(際)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乘)한 오인(吾人)은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아무 기탄(忌憚)할 것 없도다. 아(我)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護全)하야 생왕(生旺)의 낙(樂)을 포향(飽享)할 것이며, 아(我)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한 대계(大界)에 민족적 정화(精華)를 결뉴(結紐)할 지로다. 오등(吾等)이 자(玆)에 분기(奮起)하도다. 양심이 아(我)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古巢)로서 활발히 기래(起來)하야 만휘군상(萬彙羣象)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어도다. 천백세 조령(祖靈)이 오등(吾等)을 음우(陰佑)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의 광명으로 맥진(驀進)할 따름인뎌.
공약 삼장 하나、금일 오인(吾人) 의 차거(此擧)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하나、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하나、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야 오인(吾人)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던지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하라.
조선 건국4252년 3월 1일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천 년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딸 아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 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의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 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 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로운,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만지나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워함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10]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지나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아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 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 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어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공약 3장 1.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보성고등학교내의 인쇄소인 보성사[11]에서 인쇄하였다. 여담으로민족대표 33인중손병희,최린, 이종일 등등 상당수의 인물들이 보성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야사에 따르면 보성사와 인쇄물을 보관해 둘 임시 창고 사이에 경찰서가 있어 발각될 뻔했는데, 인쇄물들을 이송하던 날 갑자기 일대 부근이 정전되었고, 그 틈을 타 관련자들이 새벽에 수레로 몰래 날랐다고 한다.
그날이 오면[14]에서 밝혀진 것이나, 朝鮮 부분이 '鮮朝'로 거꾸로 찍혀있는 판본이 있다고 한다.
[1]이 사람은 민족대표 33인이 아니고 나중에는 친일파로 변절한다. 최남선이 쓴 최초 원문을 위창 오세창 선생이 보고는 요즘 젊은 것들은 글도 제대로 못쓴다고(한문 실력이 형편없다는 뜻) 야단 맞았다는 일화가 있다.[2]그런데 정작 손병희 본인은 경찰에 연행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나는 한일합병에 대하여 별로 찬성이라든가 불찬성도 하지 않았다."라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과연 조선 독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 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출처: 손병희에 대한 경성지법 조서, 4월 10일자.[3]당대 가장 유명한 기생집인 명월관(明月館)의 분점. 자세한 것은요릿집문서의 태화관 부분 참고.[4]출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5]오래도록 변함이 없음[6]눌리어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짐[7]미개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대우함[8]1920년대 조선의 문맹률은 전체 인구의 무려 80%에 달했으며, 1945년 광복 직후 미군정이 시행한 조사에서도 문맹률(한국어와 일본어 중 어느것도 읽고 쓸 줄 모르는 비율)이 78%나 되는 등 일제강점기 때의 문맹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전체 조선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다 읽고 그 내용과 뜻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이승만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한글 보급과 의무교육을 도입하여 문맹률을 낮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문맹률은 1959년 22%까지 떨어졌다.[9]보성사판 원문에는 선조(鮮朝)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10]이 부분을 두고 최남선이 당시 시대적 정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당시, 중국은 여러 개의 군벌들이 제각기 땅을 차지하고 서로 치열한 내전을 벌이며 괴거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떨어지는 중이었던 중국이 동아시아 안위의 주축이라거나 일본을 경계하여 일본을 망하게 한다는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졌기 때문. 실제로 일본을 패망시킨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었다. 이러한 서술을 두고 최남선 본인의 정신 세계가 중국을 숭상하는 모화사대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의견들도 있다. 다만 중국이 그렇게 돌아서면 동아시아의 화합과 평화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다.[11]현 종로구 수송공원 자리.보성고와고려대의 설립자인이용익선생이 세운 인쇄소이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과 편집자 이광수는 3.1 운동의 실패를 보면서 좌절하여 조선 독립의 희망을 버리고식민체제에 협력했다.최남선 본인은 1940년 중국 동북 지역(만주)을 방문해서 조선인 독립군들한테 "조선 독립은 불가능하니, 일제에 항복하라."는 글을 직접 썼고, 이광수는 일제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열렬히 찬성하면서 조선인 청년들한테 '일본군에 자원입대하라'는 글을 연이어 썼다. 최남선 본인이 기미독립선언서에서 말한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라는 내용을 그 스스로 부정한 것이었다. 심지어 최남선은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된 이후에도 자신의 친일행각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깨진 벼루의 명 같은 시를 써서 오히려 자신이 옳았다고 변명하는 구차함을 보였다.
문장력은 깔끔하고 수려한데 현대에 비해 한자어 및 한문투 표현이 상당히 많이 사용됐다. 예를 들어 "이로써"는 "此로써", "얼마이뇨"는 "幾何ㅣ뇨"라고 하는 등 실질형태소는 거의 다 한자어로 표현했고, 恒久如一(항구여일)[5], 壓縮銷殘(압축소잔)[6], 土昧人遇(토매인우)[7]등 사자성어나 오늘날에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무더기로 나온다. 한문에 익숙했을 당대 지식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체가 아니었겠지만,문맹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당시에는 다수 민중에게는 이해하기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8]오늘날에도 그다지 읽기 쉬운 문장은 아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에게는 온건함과 더불어 민중에게 어필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띄어쓰기 및 한글화 적용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布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發露)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是)이 천(天)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何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야 유사 이래 누(累) 천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겸제(箝制)의 통고(痛苦)를 상(嘗)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 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이 무릇 기하(幾何)이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이며 민족적 존영의 훼손됨이 무릇 기하이며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裨)할 기연(奇緣)을 유실(遺失)함이 무릇 기하이뇨. 희(噫)라! 구래(舊來)의 억울을 선창하려 하면, 시하(時下)의 고통을 파탈(擺脫)하려 하면, 장래의 협위(脅威)를 삼제(芟除)하려 하면,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염의(廉義)의 압축소잔(壓縮銷殘)을 흥분 신장하려 하면,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遂)하려 하면, 가련한 자제에게 고치적 재산을 유여(遺與)치 아니하려 하면, 자자손손의 영구 완전한 경복(慶福)을 도영(導迎)하려 하면, 최대 급무가 민족적 독립을 확실케 함이니 이천만 각개가 인(人)마다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인류 통성과 시대 양심이 정의의 군(軍)과 인도의 간과(干戈)로써 호원(護援)하는 금일 오인(吾人)은 진(進)하야 취(取)하매 하강(何强)을 좌(挫)치 못하랴, 퇴(退)하야 작(作)하매 하지(何志)를 전(展)치 못하랴. 병자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이래 시시종종(時時種種)의 금석맹약(金石盟約)을 식(食)하얏다 하야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罪)하려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我) 조종세업(祖宗世業)을 식민지시하고, 아(我) 문화 민족을 토매인우(土昧人遇)하야, 한낱 정복자의 쾌(快)를 탐할 뿐이오, 아(我)의 구원(久遠)한 사회 기초와 탁락(卓犖)한 민족 심리를 무시한다 하야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하노라.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타(他)의 원우(怨尤)를 가(暇)치 못하노라. 현재를 주무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숙석(宿昔)의 징변을 가(暇)치 못하노라. 금일 오인(吾人)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有)할 뿐이오 결코 타(他)의 파괴에 재(在)치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오 결코 구원(舊怨)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他)를 질축배척(嫉逐排斥)함이 아니로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覉縻)된 일본 위정가의 공명적 희생이 된 부자연 우(又) 불합리한 착오 상태를 개선광정(改善匡正)하야, 자연 우 합리한 정경대원(政經大原)으로 귀환케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서 출(出)치 아니한 양국 병합의 결과가 필경 고식적(姑息的) 위압과 차별적 불평(不平)과 통계 숫자상 허식의 하에서 이해 상반한 양 민족간에 영원히 화동할 수 없는 원구(怨溝)를 거익심조(去益深造)하는 금래 실적을 관(觀)하라. 용명과감(勇明果敢)으로써 구오를 확정(廓正)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遠禍召福)하는 첩경임을 명지(明知)할 것 아닌가. 또, 이천만 함분축원(含憤蓄怨)의 민(民)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所以)가 아닐 뿐 아니라, 차로 인하야 동양 안위의 주축인 사억만 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危懼)와 시의(猜疑)를 갈수록 농후케 하야 그 결과로 동양 전국이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明)하니, 금일 오인(吾人)의 조선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영을 수(遂)케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사로(邪路)로서 출(出)하야 동양 지지자(支持者)인 중책을 전(全)케 하는 것이며, 지나로 하여금 몽매(夢寐)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 공포로서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이리오.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장양(鍊磨長養)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始)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來)하야 만물의 회소(回蘇)를 최촉(催促)하는도다. 동빙한설(凍氷寒雪)에 호흡을 폐칩(閉蟄)한 것이 피일시(彼一時)의 세(勢)이라 하면 화풍난양(和風暖陽)에 기맥(氣脈)을 진서(振舒함은 차일시(此一時)의 세(勢)이니, 천지의 부운에 제(際)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乘)한 오인(吾人)은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아무 기탄(忌憚)할 것 없도다. 아(我)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護全)하야 생왕(生旺)의 낙(樂)을 포향(飽享)할 것이며, 아(我)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한 대계(大界)에 민족적 정화(精華)를 결뉴(結紐)할 지로다. 오등(吾等)이 자(玆)에 분기(奮起)하도다. 양심이 아(我)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古巢)로서 활발히 기래(起來)하야 만휘군상(萬彙羣象)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어도다. 천백세 조령(祖靈)이 오등(吾等)을 음우(陰佑)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의 광명으로 맥진(驀進)할 따름인뎌.
공약 삼장 하나、금일 오인(吾人) 의 차거(此擧)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하나、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하나、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야 오인(吾人)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던지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하라.
조선 건국4252년 3월 1일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천 년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딸 아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 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의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 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 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로운,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만지나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워함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10]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지나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아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 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 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어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공약 3장 1.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보성고등학교내의 인쇄소인 보성사[11]에서 인쇄하였다. 여담으로민족대표 33인중손병희,최린, 이종일 등등 상당수의 인물들이 보성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야사에 따르면 보성사와 인쇄물을 보관해 둘 임시 창고 사이에 경찰서가 있어 발각될 뻔했는데, 인쇄물들을 이송하던 날 갑자기 일대 부근이 정전되었고, 그 틈을 타 관련자들이 새벽에 수레로 몰래 날랐다고 한다.
영문학자들과 학원 원장들은탑골공원기념비에 새긴 영문 번역문이 아주 엉망진창이라고 지적하였다.[12]그러나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영문 번역본은1919년당시3.1 운동에 참여했던 대한국민회 소속의재미 한국인이 번역한, 당대 배포되었던 실제 영문판 독립선언문을 그대로 새긴 것이며 '오역'이라는 비판도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13]예컨대 insect는 '힘없이 남에게 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비유하기도 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오역이 아니다. 1백 년 전영어이니 지금 영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28일하와이의 일간지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The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 오늘날의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The Honolulu Advertiser)에 처음 게재되었으며 이 번역문은 캘리포니아 신문 《새크라멘토비》(Sacramento Bee)의 발행인 매클래치(V.S. McClatchy)가 제공한 것인데, 정작 매클래치는YMCA관계자로 추정되는 미국인에게서 영문본 독립선언서를 받았다고 하니 YMCA 소속 인사 중 누군가가 번역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날이 오면[14]에서 밝혀진 것이나, 조선 부분이 '선조'로 거꾸로 찍혀있는 판본이 있다고 한다.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 대부분은 최남선이 작성했는데, 정작 최남선 그 본인은 기미독립선언서에 자기의 이름을 집어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겸손해서가 아니라, 혹시 그것 때문에 조선총독부한테 체포되어 법적인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해서였다고 한다(...) 훗날 그가 조선독립을 완전히 포기하고 친일파로 변절하여 조선 청년들한테 일본군에 자원입대하라고 외치고 다녔던 점을 감안한다면, 친일파로의 변절에 복선이 있었던 셈[21].
[1]이 사람은 민족대표 33인이 아니고 나중에는 친일파로 변절한다. 최남선이 쓴 최초 원문을 위창 오세창 선생이 보고는 요즘 젊은 것들은 글도 제대로 못쓴다고(한문 실력이 형편없다는 뜻) 야단 맞았다는 일화가 있다.[2]그런데 정작 손병희 본인은 경찰에 연행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나는 한일합병에 대하여 별로 찬성이라든가 불찬성도 하지 않았다."라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과연 조선 독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 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출처: 손병희에 대한 경성지법 조서, 4월 10일자.[3]당대 가장 유명한 기생집인 명월관(明月館)의 분점. 자세한 것은요릿집문서의 태화관 부분 참고.[4]출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5]오래도록 변함이 없음[6]눌리어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짐[7]미개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대우함[8]1920년대 조선의 문맹률은 전체 인구의 무려 80%에 달했으며, 1945년 광복 직후 미군정이 시행한 조사에서도 문맹률(한국어와 일본어 중 어느것도 읽고 쓸 줄 모르는 비율)이 78%나 되는 등 일제강점기 때의 문맹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전체 조선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다 읽고 그 내용과 뜻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이승만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한글 보급과 의무교육을 도입하여 문맹률을 낮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문맹률은 1959년 22%까지 떨어졌다.[9]보성사판 원문에는 선조(鮮朝)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10]이 부분을 두고 최남선이 당시 시대적 정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당시, 중국은 여러 개의 군벌들이 제각기 땅을 차지하고 서로 치열한 내전을 벌이며 괴거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떨어지는 중이었던 중국이 동아시아 안위의 주축이라거나 일본을 경계하여 일본을 망하게 한다는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졌기 때문. 실제로 일본을 패망시킨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었다. 이러한 서술을 두고 최남선 본인의 정신 세계가 중국을 숭상하는 모화사대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의견들도 있다. 다만 중국이 그렇게 돌아서면 동아시아의 화합과 평화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다.[11]현 종로구 수송공원 자리.보성고와고려대의 설립자인이용익선생이 세운 인쇄소이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과 편집자 이광수는 3.1 운동의 실패를 보면서 좌절하여 조선 독립의 희망을 버리고식민체제에 협력했다.최남선 본인은 1940년 중국 동북 지역(만주)을 방문해서 조선인 독립군들한테 "조선 독립은 불가능하니, 일제에 항복하라."는 글을 직접 썼고, 이광수는 일제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열렬히 찬성하면서 조선인 청년들한테 '일본군에 자원입대하라'는 글을 연이어 썼다. 최남선 본인이 기미독립선언서에서 말한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라는 내용을 그 스스로 부정한 것이었다. 심지어 최남선은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된 이후에도 자신의 친일행각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깨진 벼루의 명 같은 시를 써서 오히려 자신이 옳았다고 변명하는 구차함을 보였다.
문장력은 깔끔하고 수려한데 현대에 비해 한자어 및 한문투 표현이 상당히 많이 사용됐다. 예를 들어 "이로써"는 "此로써", "얼마이뇨"는 "幾何ㅣ뇨"라고 하는 등 실질형태소는 거의 다 한자어로 표현했고, 恒久如一(항구여일)[5], 壓縮銷殘(압축소잔)[6], 土昧人遇(토매인우)[7]등 사자성어나 오늘날에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무더기로 나온다. 한문에 익숙했을 당대 지식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체가 아니었겠지만,문맹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당시에는 다수 민중에게는 이해하기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8]오늘날에도 그다지 읽기 쉬운 문장은 아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에게는 온건함과 더불어 민중에게 어필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띄어쓰기 및 한글화 적용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布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發露)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是)이 천(天)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何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야 유사 이래 누(累) 천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겸제(箝制)의 통고(痛苦)를 상(嘗)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 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이 무릇 기하(幾何)이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이며 민족적 존영의 훼손됨이 무릇 기하이며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裨)할 기연(奇緣)을 유실(遺失)함이 무릇 기하이뇨. 희(噫)라! 구래(舊來)의 억울을 선창하려 하면, 시하(時下)의 고통을 파탈(擺脫)하려 하면, 장래의 협위(脅威)를 삼제(芟除)하려 하면,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염의(廉義)의 압축소잔(壓縮銷殘)을 흥분 신장하려 하면,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遂)하려 하면, 가련한 자제에게 고치적 재산을 유여(遺與)치 아니하려 하면, 자자손손의 영구 완전한 경복(慶福)을 도영(導迎)하려 하면, 최대 급무가 민족적 독립을 확실케 함이니 이천만 각개가 인(人)마다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인류 통성과 시대 양심이 정의의 군(軍)과 인도의 간과(干戈)로써 호원(護援)하는 금일 오인(吾人)은 진(進)하야 취(取)하매 하강(何强)을 좌(挫)치 못하랴, 퇴(退)하야 작(作)하매 하지(何志)를 전(展)치 못하랴. 병자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이래 시시종종(時時種種)의 금석맹약(金石盟約)을 식(食)하얏다 하야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罪)하려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我) 조종세업(祖宗世業)을 식민지시하고, 아(我) 문화 민족을 토매인우(土昧人遇)하야, 한낱 정복자의 쾌(快)를 탐할 뿐이오, 아(我)의 구원(久遠)한 사회 기초와 탁락(卓犖)한 민족 심리를 무시한다 하야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하노라.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타(他)의 원우(怨尤)를 가(暇)치 못하노라. 현재를 주무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숙석(宿昔)의 징변을 가(暇)치 못하노라. 금일 오인(吾人)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有)할 뿐이오 결코 타(他)의 파괴에 재(在)치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오 결코 구원(舊怨)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他)를 질축배척(嫉逐排斥)함이 아니로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覉縻)된 일본 위정가의 공명적 희생이 된 부자연 우(又) 불합리한 착오 상태를 개선광정(改善匡正)하야, 자연 우 합리한 정경대원(政經大原)으로 귀환케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서 출(出)치 아니한 양국 병합의 결과가 필경 고식적(姑息的) 위압과 차별적 불평(不平)과 통계 숫자상 허식의 하에서 이해 상반한 양 민족간에 영원히 화동할 수 없는 원구(怨溝)를 거익심조(去益深造)하는 금래 실적을 관(觀)하라. 용명과감(勇明果敢)으로써 구오를 확정(廓正)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遠禍召福)하는 첩경임을 명지(明知)할 것 아닌가. 또, 이천만 함분축원(含憤蓄怨)의 민(民)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所以)가 아닐 뿐 아니라, 차로 인하야 동양 안위의 주축인 사억만 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危懼)와 시의(猜疑)를 갈수록 농후케 하야 그 결과로 동양 전국이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明)하니, 금일 오인(吾人)의 조선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영을 수(遂)케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사로(邪路)로서 출(出)하야 동양 지지자(支持者)인 중책을 전(全)케 하는 것이며, 지나로 하여금 몽매(夢寐)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 공포로서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이리오.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장양(鍊磨長養)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始)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來)하야 만물의 회소(回蘇)를 최촉(催促)하는도다. 동빙한설(凍氷寒雪)에 호흡을 폐칩(閉蟄)한 것이 피일시(彼一時)의 세(勢)이라 하면 화풍난양(和風暖陽)에 기맥(氣脈)을 진서(振舒함은 차일시(此一時)의 세(勢)이니, 천지의 부운에 제(際)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乘)한 오인(吾人)은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아무 기탄(忌憚)할 것 없도다. 아(我)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護全)하야 생왕(生旺)의 낙(樂)을 포향(飽享)할 것이며, 아(我)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한 대계(大界)에 민족적 정화(精華)를 결뉴(結紐)할 지로다. 오등(吾等)이 자(玆)에 분기(奮起)하도다. 양심이 아(我)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古巢)로서 활발히 기래(起來)하야 만휘군상(萬彙羣象)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어도다. 천백세 조령(祖靈)이 오등(吾等)을 음우(陰佑)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의 광명으로 맥진(驀進)할 따름인뎌.
공약 삼장 하나、금일 오인(吾人) 의 차거(此擧)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하나、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하나、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야 오인(吾人)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던지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하라.
조선 건국4252년 3월 1일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천 년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딸 아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 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의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 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 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로운,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만지나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워함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10]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지나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아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 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 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어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공약 3장 1.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보성고등학교내의 인쇄소인 보성사[11]에서 인쇄하였다. 여담으로민족대표 33인중손병희,최린, 이종일 등등 상당수의 인물들이 보성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야사에 따르면 보성사와 인쇄물을 보관해 둘 임시 창고 사이에 경찰서가 있어 발각될 뻔했는데, 인쇄물들을 이송하던 날 갑자기 일대 부근이 정전되었고, 그 틈을 타 관련자들이 새벽에 수레로 몰래 날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