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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산소에 간다 (글:이 종열 님)

한문역사 2025. 6. 13. 12:50

걸어온  길   넓었는데  걸어갈  길은 좁혀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만 있는데 길이 좁아지니 

버려야 하나 챙겨야 하나  결정하는데 벌써 저만큼 가버리는

세월에 마음이 급하다.그렇게 길게 느껴진 길인데 돌아보니

한 뼘 정도다.  보낸 세월이 갑자기 허탈해진다. 고향 바람이

불어왔는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근래 들어서는 고향 생각 간절하다.

며칠 전에  동생이 부모님 산소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 오랜만에 

고향도, 부모님 산소에도  가고 싶어 같이 가자고 전화를 걸었다.

남동생 집에서 준비한 음식에 언니와 여동생과 나는 가다가 시골

장터에  들어가  수박과 과일을 샀다.마음은 벌써 동네 어귀 느티나무

밑에서 숨바꼭질했던 친구들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린 마음과 즐거움을 알고 차 발통도 서둔다.

두 남동생은 여름이면 휴가를 내어 고향 냇물이 흐르는 다리 밑에 와서 

한더위를 즐긴다  했다. 부모님이 땅콩 농사짓던 넓은 밭이 캠핑장으로 

변해  있었다. 옥토인 밭은 사라지고 없지만 엄마,아빠 모습은 여전히 

밭에서 일하신다.칠십이 넘었지만 어렸을 때의 천진난만  했던 마음으로 

다정히 엄마, 아빠를 부르니 가슴이 시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시골이지만 도시 버금가게 곳곳에 문화시설이 설치되어 주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그리던 고향 산천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딸들은 결혼을 하면 시댁이 우선이어서 고향에 자주 들릴 수 없다.

태어나 저고리 소매끝으로 콧물 닦을 때까지  자란 곳이지만 오래도록  가지

않았기에 산과 들 모두가 낯설어 보였다. 부모님이 잠들어 있는 산소가는길에 

할머니 한 분이 계시기에 차에서 내려 :안녕하세요.:인사를 했지만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을 말하고 누구시냐고 물었드니 친구 엄마다.

서로  무안해 하면서 반가운 마음을 전하니 웃어야할지  흘러간 세월을 

원망해야할지 모르겠다. 삽십대의 꽃다운 친구엄마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고  단발머리 꼬마 소녀가 반백이 넘도록 오랜 세월을 보내고서야 

고향에 왔으니 서로가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

무심한 세월이다.지난 세월에 비추어 지금 헤어지면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을 인연일 것이다. 서로가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듯 한참 동안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건강하게 잘 계시라고 인사를 건네고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곳을 향했다. 길 곳곳마다 반가움이 깔려있다. 어릴 때 엄마따라 밭에

가던 길이므로 주변에 모든 것들이 백과사전이다.여치며 ,잠자리도 잡고,

친구 고구마 밭도 있고,참깨 밭도 있다.길 저쪽 저 밭은 강 건너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 밭인데 아마 그 아저씨도 엄마처럼 지금쯤은 하늘나라에 살고 계실 것이다.

그때는 바다같이 넓은 밭들인데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어 밭도 줄어들었는지 좁아

보인다. 친구집들은 마당이 넓어 집안에도 감나무가 있었는데 우리집 마당은 좁아 

감마무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감나무를 사다가 밭 언덕에 심었다. 엄마 감나무,

내 감나무, 이렇게 두 그루를 심었고 갑자기 대구로 이사를 하였다.

아버지는 농토가 있어 농번기에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농한기에는 대구로

올라오시기를 몇 년 반복하셨다.

그러다가 시골 전답을 팔아 대구에 집을 장만 하고,대구에서 손자들 재롱속에 

사시다가 고인이 되어 서 이곳에 다시 오게 되었다.남동생이 양지바른  밭을

산소로 사용했다.엄마와 함께 심은 감나무를 무덤 속의 엄마는 알아보고 있을까?

당신처럼 죽지않고 살아있어 신기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싶다. 심어만 놓고 

떠나버린 엄마와  나를 많이도 원망했을 나무에 용서를 빌었다.

감나무야 그래도 살아서 만나니 다행이다.

엄마는 돌아가신 뒤에 이곳에 왔으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 

세월은 소리없이 빨리 가므로 언젠가 될 지는  모르지만  나도 엄마 아빠처럼 

불러도 대답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는 낯선 고향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예쁜 추억들이 베어있는 곳이므로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엄마,아빠를 

그리워하듯이  고향도 그리워할 곳이다. -끝-   淡水會報에서 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