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
이승만 박사 한시
三十離鄕七十歸 [삼십이향칠십귀]
歐西美北夢依依 [구서미북몽의의]
在家今日還如客 [재가금일환여객]
到處逢迎舊面稀 [도처봉영구면희]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칠십 세에 돌아왔네
서쪽 유럽 북쪽 미주를 돌아다닌 나날이 꿈만 같도다
오늘 집에 돌아오긴 했으나 도리어 나그네와 같구나
곳곳에서 마중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낯익은 얼굴은 드무네
桃園故舊散如煙 [도원고구산여연]
奔走風塵五十年 [분주풍진오십년]
白首歸來桑海變 [백수귀래상해변]
春風揮淚古祠前 [춘풍휘루고사전]
도원에서 놀던 옛 친구들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분주하게 흘러간 풍진 50년
백발이 되어 돌아오니 산하는 상전벽해 처럼 변하였구나
옛 사당 앞에 서서 봄바람에 눈물을 뿌리네
이승만 박사가 40년만에 해방된 고국에 돌아와서 그 심정을 읊은 한시
돈암장에서 박헌영과 함께 회담을 하기에 앞서 그 감회를 적은 시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이에 박헌영은 “그 감회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우남 이 승만 박사(1875~1965)
1895~1897: 배재학당에서 新式 영어 교육 수학
이후 졸업시 영어로 연설하다.
1898~1904 :수감되다
1904년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7년 수감 후 특사로 출옥 ,
1905년 : 미국 행
배재학당 미국인 선교사 주선으로 워싱턴 大 입학
1907년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학사 졸업
1908년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大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1910:6:14: 프린스톤 대학원 철학 박사 학위 취득 (윌슨총장)
1945년 해방 후 40년만에 귀국
제헌의원 ,제헌국회 의장,초대 대통령~3대 대통령
4.19 학생의거로 대통령 직 사퇴 후 하와이 망명
1965년 별세 후 국립묘지 안장되다.
추기):박 헌영: 1900~1955년
남로당 黨首 ,월북 후 북한 첫 내각부수상 겸 외무상
그후 남로당계와 함께 숙청, 처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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