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보
여행작가이자 시인. 전국 방방곡곡을 걸으며 자연과 사람을 만나는 인문여행을 실천하고 있다. 트레킹을 통해 내면의 무한한 에너지를 일깨우고,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삶의 중요한 여정으로 삼는다. ‘걷기’는 곧 치유이자 힐링이며, 인간 존재의 궁극적 가치인 영성으로 향하는 진화의 길임을 깨닫고, 현장 답사를 통해 이러한 사유를 더욱 깊이 다지고 있다.
영남대학교 철학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하였다. 《문학사랑》에서 신인상과 교원문학상을 받으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인문기행서 『방방곡곡 길을 걷다』 외 다수의 시집과 수필집이 있다. 현재에도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고 있으며, 대구힐링트레킹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 1부 푸른 바다와 섬의 실루엣
완도 생일도와 고금도 충무사
낭만 낭도
여수 오동도와 야경
금단의 섬, 저도
새만금 고군산 군도
미지의 여행지, 조도와 호도
뭍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제부도
예술의 섬, 고흥 연홍도
인천 무의도 실미도 트레킹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
서해의 진주 국화도, 도지섬과 매박도
꺽이지 않는 지조, 홍성 죽도
통영 장사도
2부 바람이 흔드는 숲
강릉 노추산과 안반데기
지리산 대원사를 찾아서
의령 봉황대 일붕사
강정보 디아크와 성지산
해와 달의 도장이 찍힌 영양 일월산
단양적성비와 대관령 양 떼 삼양목장
천 년 은행나무와 양평 용문사
고흥 팔영산 능가사
은수저 같은 거제도와 노자산
삼척 맹방해변 덕봉산
정선 가리왕산과 오일장 트레킹
3부 오래된 거리로 떠나는 시간여행
구리 동구릉과 고구려 대장간 마을
창녕 부곡온천 둘레길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인재와 물류의 대동맥, 영남대로
선교의 성지 청라언덕
산청군 남사 예담촌
고령군 장기리 암각화와 개실마을
대구 기독교 성지 제일교회
두물머리와 정약용 유적
익산 나바위성당
곡성 세계장미축제
책 속으로
[머리말]
눈 내리는 남이섬에 날아다니던 겨울새 울음, 거제 노자산 정상에서 본 영혼을 닮은 남해와 섬, 제주도 천지연 폭포 무태장어의 신비, 익산 나바위성당의 포승줄에 묶인 예수님의 에케 호모상, 한센인의 애환이 서린 소록도, 철원의 백마고지와 노동당사, 고창의 오월 청보리밭 등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
그건 마치 그리움처럼, 세월처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여로일 것인가. 무언가 결핍을 느끼면 왜 봇짐 싸서 떠나고 싶은지. 현실에 대한 갈증은 걷기로만 달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날, 감정을 치유하는 인제 자작나무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이제 얼마를 더 걸어야 어제 본 반달을 만날 수 있을까. 그대 다시 만나는 길은 어떤 감동으로 우리를 두근거리게 할까. 우리가 그려 가던 미완성의 사랑도, 그 어혈의 증오도, 길을 걸으면 사라지고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기쁨이 된다. 그 찬란한 물질문명 때문에 온갖 사람이 다 영적으로 잠을 자며 비현실 즉 꿈과 상상에서 살고 있다. 이제 걸음으로써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어찌 길이 끝이 있겠는가. 길은 처음처럼 시작만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같이 걸어서 가자. 걸어가면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영혼을 찾고, 큰 수레 타고 함께 가자. 저 우주 끝까지.
[책 속으로]
조선 시대 전라 감사 이서구(1754~1825)는 새만금 일대가 앞으로 뭍으로 변한다고 예언했다. 그는 ‘수저水低 30장丈이요, 지고地高 30장丈이라’고 했다. 군산과 변산의 앞바다가 30장(약 90m) 깊이로 해수가 빠지고, 해저의 땅이 30장丈 위로 솟구친다는 뜻이다. 호남인들은 새만금 방조제로 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되자 이서구의 예언이 맞았다고 놀라워한다.
-p. 42, ‘새만금 고군산 군도’ 중에서
간물 때였다. 시나브로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제부도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S 자 포장길은 갈회색 갯벌 위로 은박의 띠처럼 반짝거린다. 바닷물을 상실한 섬은 뭍의 한 팔이 되어 마치 연꽃을 쥐고 있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다. 섬은 화성 송교리 해안에서 1.8㎞ 서쪽 지점에 있다. 제부도는 예부터 뭍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섬이란 의미로 ‘저비섬’ 또는 ‘접비섬’으로 불리었다. 조선조 중기 무렵부터 송교리와 제부도를 이어주는 갯벌 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애면글면 건넌다는 뜻의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는 말이 전해 왔다. 여기서 ‘제濟’ 자와 ‘부扶’ 자를 따와 ‘제부리濟扶쐧’로 개칭되었다 한다.
이 섬은 하루에 두 차례 바닷길이 열리는, 이를테면 ‘모세의 기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40년 전만 해도 제부도 사람들은 장화를 신고 갯벌에 빠지면서 뭍으로 건너가곤 했다. 그 뒤 갯벌에 돌다리가 놓이고, 한동안 그렇게 다니다가 1988년 지금과 같은 시멘트 포장길, 즉 바닷속 찻길이 되었다.
-p. 49, ‘뭍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제부도’ 중에서
감금실을 둘러본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병원장은 징계검속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환자들을 통제했다. 병원장은 재판 없이 환자들을 감금할 수 있었고 출소 시에는 단종 수술을 시행했다. 암울한 과거사다.
1935년에 건축된 옆의 검시실로 간다. 방 한가운데 돌로 만든 검시대가 놓여 있다. 한센병 환자가 죽으면 누구든지 이곳에서 검시 절차를 거쳐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입구의 넓은 방은 검시실, 안쪽 방은 영안실로 사용됐다. 그래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는 일생에 세 번 죽는다고 한다. 한센병이 확진되면 한 번 죽고, 검시실에서 해부하면서 두 번 죽고, 그 후 화장을 하면서 세 번을 죽는다고 한다. ‘태어나지 마라, 죽기가 괴롭다. 죽지 마라, 태어나기가 괴롭다’는 어느 고승의 전언이 귀를 파리하게 한다. 그러한데 한 생에 세 번씩이나 죽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p. 69,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 중에서
종교개혁가 루터는 “돈주머니가 회개하기 전까지는 회개가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 곁에 온 부처 성철 스님이 열반하면서 남긴 것은 누더기처럼 기워 입은 가사와 숟가락, 일기장 정도였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가 떠나면서 남긴 것은 성경과 숟가락, 주전자, 낡은 코트 한 벌과 운구비뿐이었다. 즉 소유욕을 줄이고, 버리고, 그 가슴에 사랑을 채워 넣는 것이다. 나에게 그게 가능할까. 불경 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 그 부처님 말씀에 순간이지만 나의 탐욕이 부서져 나가는 전율을 느낀다.
-p. 108, ‘의령 봉황대 일붕사’ 중에서
신생대 에오세에 번성하였던 나무. 우둘투둘한 껍질에 방화벽을 만들어 아득한 세월에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 불린다. 열 아름도 넘어 보이는 둥치는 1,100년 동안 성찬이 된 용문사 독경을 끼니로 한 탓이리라. 한갓지게 바람이 다시 불었다. 찾아온 탐방객에게 불꽃처럼 영감을 터트리던, 가장 먼 여행이었던 은행나무. 그 어느 때보다 의아한 수수께끼 얼굴을 하고 그곳을 떠난다.
-p. 129, ‘천 년 은행나무와 양평 용문사’ 중에서
용굴에는 전설이 있다. 가난한 어부가 꿈에서 계시를 받고 바다로 나가 죽은 구렁이를 찾아낸 뒤 용굴에 정성껏 제사를 지내자 죽은 구렁이가 살아나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 그 보은으로 어부는 풍어를 누리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 선조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상상과 전설은 아득히 사라져 메아리가 되고 있다. 6·25사변 때 초곡 마을 주민들이 배를 타고 용굴로 피란하였다는 아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되돌아 나오면서 한 번 더 절경을 따라 걷는다. 지나온 발자국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찍는다.
초곡항으로 나오니 2월의 해가 설핏하다. 어디라도 삶의 현장은 생동감이 있다. 초곡 앞바다에는 자연산 문어·전복 등 중요 해산물이 많이 서식한다. 이걸 따기 위해 제주도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살고 있다. 해녀들은 물질로 생활을 꾸려간다.
몬주익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의 어머니도 제주도 출신 해녀였다. 국민의 가슴에 자부심과 환호를 심은 영웅의 심폐 기능은 일반인의 1.5배 이상 수준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의 숨비소리 속을 달리는 황영조, 고통을 거치지 않고 닿을 수 있는 영광은 없을 것이다.
-p. 151, ‘삼척 맹방해면 덕봉산’ 중에서
거리로 나와 종로로 간다. 종로는 읍성의 여닫음을 알리던 종루鐘樓에 연원을 둔 거리다. 현재 우리는 무슨 종소리를 듣고 있는가. 빚의 올무에 걸려 허적거리고 공짜가 아닌데도 공짜같이 받아먹고 노예가 되는, 우리에게 누가 깨달음의 종을 울려 줄 것인가.
종로의 샛골목인 진골목으로 들어간다. 한국관광의 별이자 한국관광100선에 오른,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대구 중구 골목 투어, 말하자면 보석 같은 골목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진골목은 ‘긴 골목’이란 뜻이다. 경상도 말씨로 ‘길다’를 의미하는 ‘질다’에서 따온 말이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 온 역사이자 문화다.
-p. 176,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중에서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알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하늘신과 땅신이 교접해 알을 산란한 곳이라 하여 알터 혹은 알현이라 부르고 있다. 암각화는 남향의 수직 암벽 위에 길이 5m 높이 1.5m 정도로 새겨져 있다. 그림은 하나의 중심에서 새긴 동심원同心圓과 신의 얼굴을 상징하는 신면형神面形이 주를 이룬다. 모양은 검파형, 가면형, 방패형, 인면형, 장방형, 기하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정리되어 있다. 바위에 새긴 방식은 쪼기로 기본형을 만든 다음 여러 차례 다듬고 문질러서 완성하였다.
암각화는 바위가 전하는 그림이지만 바람이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신석기 후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우리 조상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수많은 역사학자가, 또 전공자가 암각화를 연구해도 그 해답은 명확하지 않고 다만 추측으로 그 기호와 상징을 풀이할 뿐이다.
-p. 197, ‘고령군 장기리 암각화와 개실마을’ 중에서
출판사 서평
“길을 걸으면서 언제나 물끄러미, 그리고 때론 멀리, 어느 때는 현실 그 너머까지 바라보고 다녔다. 그렇지만 이 우주는 그 자신 모두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어떤 순간에 그것도 흘낏 보여주었으므로 더 뚜렷한 것을 찾기 위해 걷고 더 걸어갈 뿐이다.”
인간성 회복으로 향하는 인문기행,
국내 여행에 깊이를 더하다
김찬일 작가는 여행작가이자 시인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걸으며 자연과 사람을 만나는 인문여행을 실천하고 있다. 작가는 트레킹을 내면의 무한한 에너지를 일깨우고,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시키는 도구로 쓴다. 작가에게 걷는다는 것은 치유이자 인간 존재의 궁극적 가치인 영성으로 향하는 진화의 길이다.
작가는 인문기행이라는 말에 걸맞게 여행을 떠난 곳과 관련된 역사나 인물, 전설을 이야기하며 시공간을 뛰어넘어 깊어지는 인문학적 고찰을 가감 없이 풀어놓는다. 트레킹 코스 따라 이어지는 풍경 묘사와 사색은 가봤던 곳도 새롭게 느껴지게 만든다. 익숙한 곳은 낯설게, 모르는 곳은 신비롭게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든 걷고 싶어 근질거리게 된다.
1부는 푸른 바다와 접한 섬의 풍경을 담았다. 싸목싸목 걷기 좋은 낭만 낭도, 눈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를 품은 오동도와 저도,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 등 해무 속에 아득한 섬 이야기다. 2부는 깊은 곳에 바람을 품고 있는 산속으로 떠난다. 인문학의 성지인 강릉 노추산과 바람의 땅 안반데기, 동학 재건의 기틀을 다진 영양 일월산, 고흥 팔영산 능가사 등을 다니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3부는 오래된 거리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구리 동구릉과 고구려 마을, 대구 중구 근대로, 청라언덕과 고즈넉한 돌담길을 자랑하는 산청군 남사 예담촌 등에서 한국사의 조각을 엿본다.
『방방곡곡 인문기행』은 우리가 발 디디고 걷는 이 길 위에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모두 녹아있음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 작가는 걸어야 잠시 엿볼 수 있는 우주의 신비가 있다고 말한다. 국내 곳곳의 매력적인 풍경을 짚어주는 이 책 한 권이면 걷기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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