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36] 청나라 '마지막 황제'

1967년 10월 16일 나는 자금성 옥좌 앞에 서 있다. 황제가 앉아서 천하를 내려다보던 그 자리를 올려다보며. 내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베이징에서 병고로 숨을 거둔다. 향년 61세. 기실 그가 청 황제였던 것은 고작 3년 남짓이었고, 26세부터 일제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에서 집정(執政)으로는 2년 정도, 황제로는 11년 170일을 지냈다. 물론 실권이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 ‘꼭두각시’는 그의 실존적 키워드다. 서태후의 지명으로 2살 무렵 졸지에 황제가 된 뒤로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제 운명의 꼭두각시로 살게 된다. 반면, 청나라에서든 만주국에서든 호사와 사치와 음행(淫行) 등은 실컷 누렸다. 푸이가 비극적 연민의 대상이 된 데에는 영화 ’마지막 황제(1988)' 탓이 크다. 그러나 전쟁과 혁명으로 세상이 불타고 뒤집히던 그 시대 민중들의 고통과 죽음에 비하면, 그의 비극은, ‘어둡게 도금된 비극’에 불과하다.
2023년 5월 홍콩 필립스 아시아 옥션 하우스에서는 푸이가 만주국에서 착용했던 파텍 필립 시계가 수수료 포함 약 82억원에 낙찰됐다. 한데, 이런 푸이도 일제에 나라를 팔아넘긴 고종에 비하면 다분히 유아기적이다. 고종·순종은 조선 병합 조약문들에 의거해, 자신의 일족을 왕공족(王公族) ‘이왕가(李王家)’로 만든다. 일본의 귀족인 화족(華族)보다 높은, 일본 황족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 신분으로 가계(家系) 자체를 이식해버린 것이다.
이왕가는 일본 왕공족들이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세비를 받아 썼고, 자두꽃(李花)을 형상화한 문장(紋章)도 하사받았다. 고종의 7남 영친왕은 화려한 장기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는 대일본제국 군대의 중장(中將)에 오른다. 고종의 5남인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스포츠카 수집광이자 일본군 중좌였으며 차남 이우 역시 중좌였다. 일제 전범(戰犯) 이왕가의 작위와 특권은 1947년 일본 신헌법으로 왕공족과 화족 제도가 폐지되기까지 유지됐다. 이왕가는 제 운명을 그런 식으로 개척(?)한 셈이다. 차라리 꼭두각시 푸이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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