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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소리 길 ,판소리 1호 名家 정순임 명창

한문역사 2025. 11. 5. 20:48

4代째 소리 길… 가수 될 뻔했지만 판소리 名家 이었죠”

윤수정 기자 님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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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경북 경주시 경주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제32회 방일영 국악상 수상자인 정순임 명창이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자세를 잡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판소리(흥보가) 보유자인 그는 “판소리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지 60주년 되는 해에 큰 상을 받게 되어 더욱 기쁘다”고 했다./김동환 기자

“맨 윗줄이 우리 외증조부, 철종의 어전 명창이던 장석중, 그 아래가 고종황제의 어전 명창이었던 장판개 큰 외할아버지, 오른편이 명창 ‘장월중선’으로 유명한 우리 어머니, 장순애지요.”

지난달 27일 경북 경주무형유산전수교육관에 걸린 외가 친지들의 사진을 쓰다듬던 정순임(83) 명창의 얼굴에 그리움과 자부심이 동시에 서렸다. 그는 4대째 ‘판소리 명가’를 잇고 있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전통예술 판소리 명가 1호’ 집안이다. 서양음악과 가요에 밀려 전승이 끊길 뻔했던 국악을 3대 이상 보전·계승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 명창은 현재 동국대 국악과를 졸업한 조카 정성룡에게도 직접 소리를 가르친다. 그는 “우리 집안 핏줄 어딘가에 단단히 소리가 새겨졌나보다”며 웃었다.

올해 32회 방일영 국악상의 주인공인 정 명창은 전남 목포 출생이지만, 20대 중반부터 어머니를 따라 경북 경주에 정착해 소리길을 이었다. 스스로는 “뒤섞인 소리”라며 겸양을 표했지만, 그처럼 영·호남을 넘나들며 동편과 서편 발성을 조화롭게 익힌 예인은 흔치 않다. ‘국악 불모지’라 불리던 경주에서 세천향민속예술단장, 한국전통예술진흥회 경주지회장, 한국판소리보존회 경북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판소리 보급에 앞장섰다. 1996년 동국대 한국음악과를 시작으로 부산대, 목원대, 중앙대, 서라벌대, 영남대, 경북대 등지에 출강해 국악 후학들을 이끌었다.

정 명창은 소리 인생의 원동력으로 경북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1993)인 모친 ‘장월중선’(1925~1998) 명창을 늘 꼽는다. “생활은 넉넉지 않아도 소리는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친이 전쟁 고아 등의 교육을 위해 설립한 목포 국악원에서 일곱 살 때 처음 소리를 배웠다. 당시 무용과 기악, 작곡 등에 두루 능했던 모친은 정 명창에게 “뛰어넘어야 할 벽이기보다 평생 닮고 싶은 예인”이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해 “거문고, 가야금, 아쟁, 양금을 혼자 다 다룬 천재 중의 천재셨어요, 어머니 따라 가야금도 배워봤는데, 나는 둔재라 겨우 소리 하나만 되더라”며 아쉬워했다. 대신 남동생인 정경호가 아쟁 산조와 국악 작곡, 여동생 정경옥이 가야금병창의 맥을 이었다.

정작 어머니는 정 명창이 15세에 정식 소리꾼으로 입문할 땐 “소리로 사는 삶은 고달프다”며 극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딸을 모친은 전남 보성으로 보냈고, 국창 임방울, 조상현 명창 등을 배출한 유명 소리 스승인 정응민 명창 문하에 뒀다.

모친은 국극을 선망하던 정 명창에게 자신의 친구이자 여성 국극계 대스타였던 임춘앵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정 명창은 1985년 40대에 국립창극단에 입단, 9년간 주연급으로 활약했다. 정 명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에 두루 능했던 어머니가 저한테 직접 전수하는 대신 지인이던 박송희 명창에게 보내 흥보가를 배우게 한 것도 돌이켜보면 세심한 안배였다”고 했다.

정 명창에게도 소리길이 흔들린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50대 때 어린 시절 앓은 중이염이 악화되면서 보청기 없인 듣기 어려운 청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30대 때는 유명 작곡가 길옥윤과의 만남이 그를 대중가수로 만들 뻔했다. “목포의 재즈 기타리스트였던 외삼촌 소개로 가요를 부르는 한 무대에서 패티김 노래를 했고, 길 작곡가에게 가수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가수 혜은이가 노래 연습을 하고 있던 길 작곡가의 사무실까지 찾아갔지만, “판소리 명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끝내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정 명창은 재작년 서울 국립극장에서 3시간 20분에 달하는 흥보가 완창을 선보였다. 80대에도 왕성한 소리 활동 뒤엔 가슴속 풀지 못한 마지막 꿈이 있다. 바로 어머니에게 배운 ‘박동실제 열사가’로도 무형유산이 되는 것. 이준,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등의 항일 행적을 노래한 이 창작 판소리는 그가 “인생 처음으로 어머니께 ‘잘 불렀다’고 칭찬받은 소리”다. 정 명창은 “상이란 상을 하도 많이 받아봤지만, 방일영 국악상은 꼭 오르고 싶었던 고지”라며 “결국 이 상에 도달했다는 성취감이 내 남은 꿈에 대한 큰 응원이 된다”고 했다.

☞정순임 명창

2020년 국가무형유산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가 됐다. 섬세한 서편제와 우렁찬 동편제의 소리 맛을 두루 익힌 소리꾼으로 통한다. 그가 익힌 흥보가는 흥부와 놀부가 대변하는 선악 대비와 권선징악의 우화를 극적인 장단에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