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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살롱)(1517)대구의 서각 고수를 찾아서

한문역사 2025. 11. 10. 18:07

조용헌 살롱] [1517] 대구의 書刻<서각> 고수를 찾아서

입력 2025.11.09. 23:35
 
대구는 고풍(古風)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고풍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까닭은
논어·주역·풍수·보학(譜學)·불교 등에 관심 있는 식자층이 다른 도시보다 많다는 점 때문이다.
‘고풍’을 코로 흡입하고 입으로 들이마실 때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대구 용계동에 서각(書刻)의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팔만대장경 가운데 소실된 경판 48개를 복원해서 채워 넣는 작업도 그가 했다는 것이다.

허름한 빌라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정환(李晶煥·78) 선생을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어떤 고풍이 느껴졌다.

허연 수염에다 검은 테 안경을 끼고 작업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먹물이 스며 있는 문기(文氣)가 전해져 왔다.

짚이는 바가 있어 물었다. “본관이 어디입니까?” “진성(眞城)입니다”

“온혜(溫惠)요? 하계(下溪)요? 상계(上溪)요? 의인(宜仁)이요?”

“상계입니다. 퇴계 16세손입니다.”

상계, 하계 등은 퇴계 후손이 많이 사는 안동의 동네 이름이다.

안동·대구에 사는 60~70대 진성 이씨들을 보면 대체로 호학(好學)하는 기풍을 지녔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매우 조심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윗대 어른들로부터

‘집안 욕먹는 행동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가정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까닭이 아닌가 싶다.

 

작업실 방에는 옻칠한 은행나무 판재에 새겨 놓은 서각이 벽을 따라 줄줄이 놓여 있다.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비롯하여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

박정희 대통령의 ‘無欲則剛(무욕즉강·욕심이 없으면 곧 강해진다)’ 등을 쓴 글씨들이 작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이정환은 호가 ‘흰 파도’라는 뜻의 백랑(白浪)이었다.

대학 졸업식 날 은사였던 박목월 선생이 그를 동해안의 낙산사 어느 절벽 위의 암자로 데려갔다.

흰 파도가 부딪치는 바닷가 절벽의 암자였다. “이것이 백랑이다. 너는 앞으로 호를 백랑이라고 해라.”

‘백랑’이라는 호 때문인가! 그는 20대 후반에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경험을 한 후부터 전국을 방랑했다.

9년 동안 전국을 무일푼으로 네 바퀴 반이나 돌았다고 한다.

주로 절에서 먹고 자기도 했고, 병원 응급실의 환자 보호자 대기실 같은 데서 끼어 자기도 했다.

3년 동안 세계 118국을 다녀보기도 했다. 그 방랑에서 쌓인 ‘세계와 나’에 대한 사색들이

인생의 밑천이 되었다. 50년 동안 목판 위에 한문 명구들을 새기는 서각의 길을 걷게 만든 힘이 됐다.

팔공산과 비슬산이 둘러싸고 있는 대구에 그런 서각가(書刻家)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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