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착한 사람'의 뒷모습
희한한 일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의 부고에 유독 마음이 아릴 때가 있다. 먼 친척의 부고에도 무덤덤하던 마음이, 스크린을 통해 마주했을 뿐인 유명인의 죽음 앞에서는 맥없이 흔들린다. 최근 배우 안성기의 비보가 내게는 그랬다.
발인식 날, 그의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옛 편지를 낭독하는 영상을 보았다. 안성기가 다섯 살배기 어린 아들에게 쓴 편지였다. 어쩌면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에게 건넬 법한 평범한 당부들이 담겨 있었다.

“아빠는 아들이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라.
야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고,
끝없이 도전해 보아라. 그러면 네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
무엇보다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말하기는 쉽되 그 문장들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하며 살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겸손하면서도 오만해지지 않기,
정직하면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야망을 품되 타인을 밀어내지 않기.
일평생을 걸어 증명해야 하는 고단한 태도의 문제 아닐까.
부고 이후, 고인과 인연이 있던 수많은 이들이 그의 인품에 대해 증언하는 장면을 보았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지만, 삶의 태도만으로 대중의 신뢰를 얻는 사람은 드물다.
그가 남긴 명작들보다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을 유산은 그런 고요한 증명일 것이다.
문득 나는 아들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쓴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았다.
부끄럽게도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이제라도 써야겠다.
말과 삶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애쓰는 일, 그리하여 훗날 내 아이에게
‘착한 사람’의 뒷모습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일.
대배우가 떠나며 내준 숙제가 새해 내 가슴에 묵직한 이정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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