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순신과 넬슨은 다르다

비교하기를 즐기는 역사가들은 이순신 장군과 영국 넬슨 제독을 동일시하며 그들의 공통점을 따져본다. 특히 이순신의 명량대첩과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을 자주 비교하는데, 나는 이것이 굉장히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명량대첩은 국가의 존폐에 관한 전투였다. 만약 이순신이 명량대첩에서 패했다면 지금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트라팔가 해전은 영국과 프랑스 중 누가 초강대국이 될지 패권 다툼을 위한 전쟁이었다. 또한 당시 넬슨의 해군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순신에 견줄 만한 영국 해군의 영웅은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다가 430년 전 세상을 떠난 프랜시스 드레이크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친척의 배에서 견습생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던 드레이크는 영국 해군에 발탁돼 스페인의 신세계 개척을 방해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16세기 후반 초강대국이자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은 영국이 자신들의 신세계 개척을 방해하고 개신교 사상을 품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당시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는 3만여명의 병력과 130척의 전함으로 구성된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보내 영국을 정복할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이에 맞서 드레이크는 작은 무역선들이 절반 이상이었던 함대를 이끌고 무적함대의 집결지인 스페인 카디스를 공격했다. 그는 스페인 함선들을 나포하고 많은 시설을 파괴하며 아르마다의 출정을 1년이나 늦출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혔다. 마침내 아르마다가 영국 원정길에 올랐을 때 드레이크와 영국 해군들은 무역선을 개조한 배들을 타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공선을 이용한 기습 공격 전법으로 스페인의 초대형 함선을 나포하는 등 스페인의 함대를 궤멸시키며 큰 승리를 거둔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인들이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드레이크의 작전이 실패했다면 지금 영국인들은 스페인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 카테고리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000일 기도해 보니 지금 이 순간,한 걸음이 소중 (0) | 2026.01.30 |
|---|---|
| 만물상)테슬라 FSD 풍경 (0) | 2026.01.30 |
| 실용한자 )集中豪雨 (0) | 2026.01.30 |
| 이익주의 고려,또 다른 500년 (0) | 2026.01.30 |
| 정만진의 문학향기)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 | 2026.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