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죽이려던 적장과 30년 뒤 재회"… 백선엽이 마주한 소름 돋는 순간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
입력 2026.01.30. 03:00업데이트 2026.01.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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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차이청원·北 이상조 노년에 다시 만나
휴전회담·전선 공세 사이 백선엽의 고뇌

1950년 10월 19일은 펑더화이(彭德懷)가 이끄는 중공군 본대가 본격적으로 압록강을 넘어 6·25전쟁에 뛰어든 날이었다. 그 하루 전, 베이징에서 긴급 전보를 받아 김일성에게 중공군 참전 소식을 전한 중공군 장군이 차이청원(柴成文·1915~2011)이다. 그는 중공군 총참모부 부부장을 역임했으나, 6·25전쟁 중에는 주북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백선엽 장군이 전쟁터에서 보여준 리더십을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가 회고합니다. 조선멤버십에 가입하셔서 큰 울림이 있는 콘텐츠와 다채로운 혜택을 만나보세요
조선멤버십 가입 →특히 중공군 참전 여부를 김일성에게 처음 통보했으며, 1951년 열린 휴전회담에서는 간사장 역할을 맡아 중국 수뇌부 의중을 휴전회담 대표에게 전달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유엔군의 북진으로 궁지에 몰려 평북의 한 탄광에 숨어 있던 김일성에게 중공군이 “마침내 참전한다”는 소식을 알려 김일성이 크게 환호했다는 차이청원의 회고담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1990년대 베이징을 방문했던 백선엽과 마주 앉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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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장군이지. 근데 착각마라. 한국전쟁의 결과를 보면 백장군만 있냐. 그가 오래 살아서 증언한게 많아서 그렇지. 김홍일 장군, 김종오 장군, 손원일 제독, 김석원 장군 ... 몰라서 그렇지 다 있다. 뭔가 유일하다고 하지말고..뭔 말만 하면 중국인 하지마라. 본인이 모르는 거지...
답글작성
김일성이 남한을 침략하여 남북한이 갈리게 된 것이 한국의발전 그리고 북한발전의 기초다. 그때 일성이 부산까지 점령해 통일했더라면 지금의 남북한 번영은 없었을 것이다. 일성이 말했다. 동구가 무너지면서 수출길이 막혀 어렵게 되었다. 벡선엽장군이 아니었으면 남한의 제주폭동, 여수반란, 지리산 빨지산 출신은 다 끌려가 처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게 김일성의 통리후결론이다. 남한사럼은 노예적 삶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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