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530] 경주 황룡골의 다실(茶室)
경주 황룡골에 개인 차실이 하나 있다고 하기에 인연 따라 찾아가게 되었다.
토함산(吐含山) 자락이 동해로 흘러 내려가면서 골짜기를 형성한 곳이 황룡골이다.
예전에는 이 골짜기에 사찰이 100군데 이상 있었다고 한다.
차실은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가삼간이었다. 10평이나 되는 크기일까.
찻물을 끓이는 주방 용구가 놓여 있는 탕비실이 2.5평,
서너 명이 나무 탁자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는 공간이 3평.
차실 주인이 잠을 자는 침실이 4평 정도나 되겠다.
차실 한쪽 벽면은 통유리다. 초겨울인데도 불구하고 통유리 너머로는
붉게 익은 홍시감 수십 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나무가 보였다.
주변의 까치와 여러 새가 와서 이 감을 따 먹을 수 있도록
주인장이 일부러 감을 따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셈이었다.
방안에 앉아서 통유리 너머로 새들이 날아와 한가롭게 감을 쪼아 먹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뭣 때문에 그리 헐떡거리며 살았나’ 하는 회한이 올라온다.
오른쪽 멀리에는 토함산의 뒤꼭지 모습이 보인다.
그 앞쪽에는 석굴암(石窟庵)이 자리 잡고 있다.
차실 앞마당에 종각을 설치하고 종(鐘)도 하나 매달아 놓았다.
에밀레 종을 5분의 1로 축소한 크기다.
‘댕댕댕’ 울리는 종소리가 거머리같이 들어붙어 있는 근심 걱정을 털어 내는 것 같다.
차실 주인장은 춘경(春景) 선생이다. 70세에 사업에서 손을 떼고 황룡골로 들어왔다.
춘경 선생도 사업을 할 때 조폭들이 목에다 칼을 대고 매달 얼마씩 상납하라는 곤욕을 버텨냈다.
중국에서 납품을 받을 때 ‘공짜로 부지를 제공하겠으니 여기에다 공장을 지어라’는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는 것도 힘들었다. 부친이 말년에 건강이 안좋아지니까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링거와 의사를 데리고 병석에 간 춘경 선생에게 그의 부친이 말했다.
“네가 효자가 되고 싶으면 나를 이대로 가게 내비 둬라!”
단호한 사생관(死生觀)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풍파를 다 겪고 마침내 이 차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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