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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부총리님 대신 경훈님

한문역사 2026. 2. 14. 05:53

만물상] "부총리님" 대신 "경훈님"

입력 2026.02.12. 20:53업데이트 2026.02.13. 00:10
 
CJ그룹은 2000년부터 직급 직책 호칭을 없애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쓰고 있다.
임원부터 평직원까지 서로 ‘님’으로 부른다. 이재현 회장도 그냥 ‘이재현님’이다.
많은 기업이 이런 호칭 변화에 동참했다. 기업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상하간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성과 위주 조직으로 탈바꿈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프로’ ‘매니저’ ‘책임’ 등의 호칭을 도입한 기업도 여럿이다.

▶IT나 플랫폼 기업들 중엔 영어로 된 가명이나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고

‘님’마저 쓰지 않는 곳도 많다. 카카오는 입사할 때 영어 이름을 정하게 한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시나(Shina)를 쓴다. 음식 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을 운영했던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는 별명에 코믹 터치까지 더한 ‘봉드래곤’을 썼다.

▶위계서열에 엄격한 공무원 조직이 이 흐름에 동참했다고 해서 화제다.

기업인 출신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최근 국장·과장·팀장 호칭을

없애고 이름 뒤에 ‘님’ 자만 붙이게 했다. 부처 내부 회의에서 배 부총리의 호칭은 ‘경훈님’이다.

명패도 이름 뒤에 ‘님’만 붙인 것으로 바꿨다. 민간 기업처럼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탈관료주의 조직으로 바뀌자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며 ‘각하’ 대신 ‘대통령님’으로 불러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부총리님’을 ‘경훈님’으로 바꾼 과기부는 이와 차원이 다른 변화다.

 

▶그러나 직급 호칭을 없앤다고 한국의 뿌리 깊은 서열 문화가 바뀌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여전하다.

상사에게 “00님” “김프로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직장인들은 ‘부장님께 헛기침으로 말 걸기’

‘상무님 근처에 가서 눈빛 발사하기’ 등 노하우를 개발했다.

“모니터 보는 상무님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할 때까지 무작정 벌서기를 했다”는 푸념도 있다.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부하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르며 반대 의견을 말하면 솔직히 당혹스럽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 승진했더니 부장님, 상무님이 아니라 ‘00님’이고 ‘김프로’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언어학에선 ‘한국어에서 높임말이 유독 발달하고 호칭 사용도 엄격한 것은 위아래를 따지는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나이로 대번에 위아래를 정하는 유별난 사회 풍습은 아직 여전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서로 ‘님’이라 부르라고 하면 불편한 강요가 될 수도 있다.

방향은 맞는다. 서로 예의를 지키되 업무상 의견 제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