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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시가 있는 삶 에서

한문역사 2026. 2. 14. 07:30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뻤을 때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1] 詩가 있는 뜨락 ♡ 내가 제일 예뻤을 때
 후투티  2022. 6. 21. 18:52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뻤을 때
 
화상 강의를 한 지 벌써 두 학기째가 돼 간다. 아무리 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학생들이라고 해도 지겹지 않을 리 없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오래 할 일이 못 된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떠들다 화상 창을 닫으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식의 ‘현타’가 온다. 암울한 시대의 유일한 다행이라고는 현장 강의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는 점이다. 미래 유망 직업군 리스트에서 교사가 사라졌다는데 ZOOM 수업을 하는 요즘, 오히려 반대의 희망이 생겼다. 아무리 IT와 언택트가 강세가 된다고 해도, 4차가 아니라 4차 할아버지 혁명이 온다고 해도, 강단의 ‘살아 숨 쉬는’ 선생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녹강’(녹화 강의)으로 충족되지 못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수업은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고, 사람은 언어라는 기호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의 캠퍼스는 사람이 고프다.
이 고픈 사람들 중에서도 올해 대학 1학년 학생들이 제일 안타깝다. 사실 여기에는 사심이 조금 깃들어 있다. 우리집에도 신입생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 시대의 입학이란 무엇인가’를 간접 체험 중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아이는 대학 신입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생이라는 것이다. 우리집 막내 입장에서는 올해가 인생 최초의 공교육 영접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첫 스텝부터 화끈하게 망해 버렸다. 줄긋기도 모르고 줄서기도 모르고 줄넘기도 모르는, 1학년 같지 않은 1학년이 돼 버린 것이다. 다행히 우리집 어린이에게는 초등학교 라이프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대학 1학년생들은 다르지 않은가. 사복! 미팅! 캠퍼스 라이프! 자유! 그들은 이 희미한 로망만으로 지난 3년을 버텨왔을 터. 그런데도 로망을 더 유예하라는 엄명이 떨어졌으니 답답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며칠 전에는 ‘1학기 ZOOM 수업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요? 어떤 방식이 좋았어요?’ 우리 대학 신입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토론 수업이 좋았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다. 작년에는 조별토론 좋다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학번이 달라지면 토론에 대한 성향이 바뀌는 것일까. 아닐 텐데. 화상에서 하는 토론이 뭐 엄청 특별한 것일까? 그것도 아닐 텐데. 아아, 아마도 이들 역시 사람이 고픈 것이리라. ZOOM에서 우리는 선명치 않은 화면으로 분명치 않은 얼굴을 보고, 기계를 통과해 온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이나마 반가운 우리다. 이쪽의 대학생은 저쪽의 대학생이 신기하고 반갑다. 나만 해도 그렇다. 수업에서 학생이 웃어주면 그가 음소거 상태일지라도 퍽 감사하다.
예년과 달리 토론이 좋다는 특별한 신입생을 바라보자니, 학교에 오지 않아서 『대학신문』도 덜 읽을 우리 신입생을 생각하자니, 지난 나의 대학 1학년 기억과 내 아들의 1학년을 모아 모든 대학 1학년을 축복하고 싶어진다. 실로 청춘이야말로 축복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1학년, 갓 스물의 나이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2020)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요즘 방영되던데, 이 표현이야말로 바로 20대 그들의 것이다.
 
나태주 시인(오른쪽)과 나민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사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오래전에 쓰인, 그리고 이미 죽고 없는 한 시인의 작품에서 나왔다. 윤동주 시인을 몹시 경애했다고 알려진 이바라기 노리코가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1958)를 썼다. 그리고 이 제목을 빌려 공선옥 소설가가 『내가 가장 예뻤을 때』(2009)라는 소설을 썼다. 최근에는 이은규 시인 역시 이 제목을 빌려 「내가 가장 예뻤을 때」(2019)라는 시를 썼다. 그러니까 같은 제목으로 일본 시인의 시, 한국 소설가의 소설, 한국 시인의 시, 한국 드라마가 있는 셈이다. 다른 장르의 각기 다른 텍스트들은 공통적으로 청춘이 달콤하면서도 참 씁쓸하고 외롭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 청춘이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예쁜 줄 모르고 산다. 그리고 지나서야 그때가 찬란했음을 깨닫게 된다. 왜 모든 좋고 아름다운 기억은 사후적으로 구성되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올해도 그렇게 될까. 겪을 때는 고단하기만 한 것이 지나고 나서는 아름답게 기억될까. 안타깝게도 이바라기 노리코는 가장 예뻤을 때, 불행하고 모자랐으며 쓸쓸했다고 적었다. 첫 번째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텍스트는 분명 그랬지만, 이 제목으로 모든 각자는 서로 다른 인생의 일기를 쓸 것이다. 하여, 우리가 다음에 창작할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희망을 걸어본다. 부디 이바라기 노리코의 슬픔과는 반대가 되기를 바라는 2020년이다. --- 대학신문에서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난 멋 부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건네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고
해맑은 눈길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굳어 있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 패했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단 말인가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활보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넘쳐흘렀다
금연을 깨뜨렸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난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몹시도 불행했고
난 몹시도 엉뚱했고
난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무척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이바라기 노리코 (1926~2006)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다시 목련

사월이 오면
목련은 왜 옛 마당을 찾아와 피는 것일까
어머님 가신 지 스물 네 해
무던히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잔디잎이 눈을 뜰 때면
어머님은 내 옆에 돌아와 서셔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신다

하루 아침엔 날이 흐리고
하늘에서 서러운 비가 나리더니
목련은 한잎 두잎 바람에 진다

목련이 지면 어머님은 옛 집을 떠나
내년 이맘때나 또 오시겠지
지는 꽃잎을 두 손에 받으며
어머님 가시는 길 울며 가볼까

김광균(1914∼1993)

겨울 하면 떠오르는 시인에는 김동환이나 백석이 있다.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은 함경북도 출신이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은 평안북도 출신이다. 태생부터 북방이었던 이들은 실제로도 북방의 정서를 능숙히 다루었다. 그리고 또 누가 있느냐 묻는다면 김광균을 댈 수 있다. 북방 정서까지는 아니어도 유난히 설경을 자주 다뤘던 시인이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로 유명한 ‘설야’가 그의 것이다. 그의 시에는 종종 흰 눈과 거기에 폭 쌓인 그리움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사실 김광균 시인이 특별히 눈과 겨울을 좋아했다기보다는 그저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에는 눈이 제일 아닌가. 그러니까 겨울이 먼저가 아니라, 시인이 사랑한 하얀 이미지가 먼저다. 김광균 시인이라고 하면 흔히 ‘와사등’처럼 이국적인 시를 떠올리는데 거기에서 그치면 섭섭하다. ‘설야’까지 읽어야 한다. 그래도 섭섭하다 싶으면 그의 목련 시들을 추천하고 싶다.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에는 목련도 포함된다. 이 시를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4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구나. 돌아가신 지 한참 되었구나. 어머니는 꽃이 되어 매년 돌아오시는구나. 늙은 아들은 그걸 보면서 기쁘고 슬펐겠구나. 이런 사연을 봄에 읽으면 너무 짠할 것 같아 겨울에 미리 읽어둔다.

 

빛멍

돌이켜보아도 무례한 빛이었다.
최선을 다해 빛에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응고되지 않는 말들, 왜 찬란한 자리마다 구석들이 생겨나는가.
너무 깊은 고백은 테두리가 불안한 웅덩이를 남기고.
넘치는 빛들이 누르고 가는 진한 발자국들을 따라.

황홀하게 굴절하는 눈길의 영토를 따라.
지나치게 아름다운 일들을 공들여 겪으니 홀로 돋은 흑점의 시간이 길구나.

환한 것에도 상처 입는다.
빛날수록 깊숙이 찔릴 수 있다.

작은 반짝임에도 멍들어 무수한 윤곽과 반점을 얻을 때,
무심코 들이닥친 휘황한 자리였다.
눈을 감아도 푸르게 떠오르는 잔영 속이었다.

이혜미(1988∼)

움베르토 에코의 책 ‘미의 역사’에 따르면 중세의 예술은 빛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대성당의 정교한 창유리를 통해 빛이 내부로 들어오면 그 아래에 있는 신도들은 신성함에 감격하곤 했다. 많은 문명에서 신은 빛과 동일시됐다. 이집트의 ‘라’, 페르시아의 ‘아후라 마즈다’ 역시 모두 태양빛을 상징하는 신들의 이름이다. 그 빛 안에 안기고 싶지 않은 인간은 없었으리라.
신성이 사라진 근대에서도 빛은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하다. 사람들은 채광이 잘 드는 남향 집을 좋아한다. 식물은 빛을 받아야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데 과연 식물만일까. 우리의 건강 상태에도, 우리의 마음 상태에도 빛이 필요하다. 빛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찾기 어렵다.

다만 살면서 아주 강력한 빛에 휩싸이는 경험은 드물다. 이 시대의 조도는 늘 적정 수준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의 시를 준비했다. 시에서 빛이 사랑인지, 사람인지, 경험인지 확실치 않으나 시인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빛에 강타당했다. 얼마나 강렬했는지 멍이 들 듯, 칼에 찔리듯 비틀거렸다고 나온다. 빛에 멍이 들 정도의 경험은 무료한 일상에 큰 파격이 될 것이다. 넘치는 빛 무리에 파묻히는 경험을 상상해본다. 일조량이 부족해 한 줌 빛에 목마른 우리에게는 부러운 일이다.
 

바다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온다.

정지용(1902∼1950)

‘논어’를 보면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등산하시는 분들이 특히 이 구절을 좋아한다. 역시 지자보다는 인자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우열이 무슨 상관이랴. 바다와 산은 서로 대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에 바다와 산이 차례대로 왔다 가기도 한다. 시인 정지용이 그랬다.
정지용 시인은 젊어서 바다의 시를 여러 편 썼고 조금 더 나이 들어서는 산의 시를 썼다. 바다의 시는 감각적으로 탁월하고 산의 시는 정신적으로 깊이 있다. 그중에서 무엇이 더 나으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다. 아직 덜 인자하고 더 지혜롭고 싶은지 나는 정지용의 바다 연작을 좋아한다.

그중 하나가 오늘의 시다. 여섯 줄이 전체인 시. 그것만으로도 꽉 차 있는 시. 이 시를 보면 커다란 밤바다 앞에 서 있는 한 사람, 유난히 키가 작았다던 정지용이 보인다. 사람이 바다보다 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밤바다 전체를 앞에 두고도 이 시인은 작지 않다. 그의 외로운 마음은 바다도 밤도 불러낼 만큼 크다.
어떻게 백 년 전에 이런 시를 썼을까. 그에게는 시 학교도 시 선생도 없었다. 충북 옥천 출생이니 바다를 일찍이 접했던 것도 아니다. 공부하러 일본 오고 가는 뱃길에서 그는 바다를 보았다. 외로운 갑판에서 홀로 써 내려갔을 시는 백 년을 넘어 살아 있는 시가 되었다. 이 시인은 천재고 그의 시는 교과서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림자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듯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함민복(1962∼)

그림자는 없는 듯 있다. 무채색인 주제에 늘 무겁게 처져 있는 것. 많은 사람들이 무심하게 밟고 지나가도 아야 소리 못하는 것. 그저 질질 끌려다니다 사람이 죽으면 함께 사라지는 것이 그림자의 운명이다.
쓸모없는 그림자라도 시인들만은 제법 좋아하고 중시했다. 가까이로는 김소월이 영혼을 일러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중국의 이백은 ‘월하독작’에서 말하길 달과 나와 그림자 셋이 모여 술을 마신다고 하였다. 고래로 많은 이들이 그림자를 또 다른 나, 혹은 영혼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그림자에 스며든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있지만 없는 듯,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우리의 일부가 그림자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도 있고, 우리 발치에도 있고, 우리 바깥에도 있다. 함민복 시인은 그중에서 몇 조각을 이어 붙여 시로 만들었다. 꽃이 쉽게 지는 게 아쉬우니 지는 그림자가 색이라도 입었으면 한다. 어머니 휜 허리 안쓰러우니 그림자라도 펴졌으면 한다. 걸인이 고단하고 추우니 그림자라도 따뜻했으면 한다.
꽃도 어머니도 걸인도 다 서글프지만 그림자는 그중에서도 더 소외된 부분이다. 이걸 발견한 시인의 눈이 귀하고, 거기에 담긴 따뜻한 시선이 귀하다.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자 지는 자리가 더 추운 겨울이니까.
 

저녁이면 돌들이

저녁이면 돌들이
서로를 품고 잤다
저만큼 굴러 나가면
그림자가 그림자를 이어주었다
떨어져 있어도 떨어진 게 아니었다

간혹,
조그맣게 슬픔을 밀고 나온
어린 돌의 이마가 펄펄 끓었다
잘 마르지 않는 눈빛과
탱자나무 소식은 묻지 않기로 했다

박미란(1964∼)

“저녁이면 돌들이 서로를 품고 잤다.”
첫 구절만으로도 이 시에 대해서는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맛집에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법이다. 저녁에 서로를 품고 자는 돌들이라니. 이 말을 들은 순간 우리는 그것들을 본 적도 없으면서 이미 본 듯도 하다.
사실 우리는 저 돌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궁금하면 어두운 밤중에 깨어 있으면 된다. 피곤에 찌든 남편은 방구석에서 이를 갈며 잔다. 어린 자식은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고 잔다. 더 큰 자식은 팔다리를 대자로 펼치고 잔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면 서로 품고 자는 돌들이라는 표현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하루 종일 데굴데굴 구르는 돌처럼 산다. 그분이 시키시면 앞구르기도 하고, 뒤구르기도 한다. 구르다가 상처도 입고 속에 금이 가기도 한다. 다난했던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돌에게는 다른 돌들이 위안이고 희망이다. 돌아갈 집이 있고 함께 기대어 잠들 가족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그건 매우 고마운 일이다.
옛날에는 아궁이에 돌을 데워 그것을 품고 잤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뜨끈하게 데운 돌을 슬쩍 쥐여 주기도 했다. 가슴이 버석하게 말라가고 내가 무정한 돌인지, 돌이 무정한 나인지 헷갈리는 날에는 이 시를 읽는다. 겨울, 마음이라도 뜨끈한 온돌이 될 필요가 있다.
 

매화

창가에 놓아둔 분재에서
오늘 비로소 벙그는 꽃 한 송이
뭐라고 하시는지
다만 그윽한 향기를 사방으로 여네

이쪽 길인가요?
아직 추운 하늘문을 열면
햇살이 찬바람에 떨며 앞서가고
어디쯤에 당신은 중얼거리시나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 하나가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이쪽 길이 맞나요?

한광구(1944∼)

좋은 것 중에서도 드문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귀하다’고 표현한다. 매화도 그중의 하나다. 봄날의 꽃은 많아도 혹한을 이기고 피는 꽃은 드물다. 옛 선인들은 백매화를 보면 깨끗하다 칭송했고 홍매화는 보면 신비롭다고 사랑했다. 그들에게 매화는 결코 물체가 아니었다. 그 속에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화분 안에 심겨 있는 것은 분재가 아니라 일종의 마음이었다.
역사상 매화 사랑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퇴계 이황일 것이다. 그가 쓴 매화시만 해도 100편이 넘고 매화와 주거니 받거니 문답을 나누는 문답시도 있다.

오늘의 시에도 매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매화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라면 눈을 마주하고, 이마를 비비듯 가깝고 기꺼운 자세다. 그러다 시인은 매화에게 질문한다. 뭐라고 하십니까? 그래, 이쪽입니까?
물론 매화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시인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왜 묻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매화는 물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거기에는 나도 미처 모르는, 나의 바람과 소망과 뜻과 의지가 들어 있다. 그러니 물어야 한다. 내가 사는 방향이, 가는 방향이 이쪽이 맞습니까? 우리 삶의 방향은 우리의 것이면서 우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가고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물으면서 더듬더듬 간다. 이쪽 길이 맞나요?
 

눈 내린 아침

설핏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
댓가지 풀썩거리는 소리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

들은 듯한 밤

어머니
살그머니 다녀가셨나 보다.

장독대 위에
백설기 시루 놓여있는 걸 보니

한경옥(1956∼)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 “나는 선물을 받을까요?” 하루에도 열두 번 어린 아들이 물어올 때면 행복하며 씁쓸하다. 아들은 착한 일을 안 해도 선물을 받을 테니까 행복하다. 그리고 예전에 착한 어린이였던 모든 착한 어른들은 선물을 못 받을 테니까 씁쓸하다. 적어도 성탄절에는 조금만 더 따뜻하고 싶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했다. 성탄절에 기다리는 산타의 선물 부럽지 않은 시, ‘눈 내린 아침’이다.
한밤 내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설경을 묘사하겠지, 예상했는데 이 시인은 전혀 다르게 말한다. 시인은 간밤에 눈이 내렸다고 하지 않고, 어머니가 살짝 왔다 가셨다고 표현한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고 하지 않고, 대신 어머니의 선물이 저 장독대 위에 놓여 있다고 쓴다. 아, 어머니는 나를 사랑해서 세상의 눈으로 오셨구나. 깨닫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세상이 온통 내가 사랑받은 증거로 충만해진다. 나는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뜨끈한 눈을 본 일이 없다.

예전에 김현이라는 평론가는 하얀색은 구원의 색조이며 사랑의 상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얀 눈을 구원처럼 기다리나 보다. 산타의 선물 따위는 받지 않아도 좋다. 사실 성탄절에는 받고 싶은 선물이 따로 있다. 온몸으로 세상이 되어주셨던 분, 함박눈처럼 사랑을 퍼부어준 사람. 어머니가 오신다면 산타보다 더 반갑겠다.
 

그 꿈 다 잊으려고

밤마다 꿈을 꾸어도
아침마다 대개는 잊어버리고
어쩌다 한 토막씩
말도 안 되게 남아 있다

나는 한평생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나
잊어도 좋은 꿈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고, 꿈꾸며 살 날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한평생
얼마나 많은 꿈을 잊었나
사는 게 잊어버리는 연습이라면
말도 안 되게 남은 꿈들은
언제 다 잊을 것인가

그 꿈 다 잊으려고 아침마다
잠이 모자라나보다 아침마다
말도 안 되는 몇 토막 그리움으로
모자란 채로 나는 남는다

정양(1942년∼)

박태원의 소설 중에 ‘적멸’이라는 작품이 있다.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인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인생은 꿈이다. 그리고 인생이 좇고 있는 것도 꿈이다.” 무려 90년 전에 박태원은 이미 알았던 것이다. 인생이 꿈을 향해 있고, 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은 단단한 현실에 토대를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일부는 실체도 없는 꿈이다. 꿈을 꾸지 않고서 우리는 낮을 살 수가 없다. 꿈을 품지 않고서는 우리는 삶도 살 수가 없다. 매일의 꿈이 모여 일 년이 되었다. 12월마저 지나가면 우리의 일 년은 ‘안녕’을 고하고 떠날 것이다. 사라져가는 올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 시를 읽자.

정양 시인의 ‘그 꿈 다 잊으려고’는 우리가 꾼 모든 꿈에 대한 시, 모든 나날에 대한 시다. 꿈으로 쌓아 올린 한 해를 정리하기에 이 시만큼 적합한 작품은 없다. 12월에 이 시를 읽지 않으면 대체 언제 읽겠는가. 올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되고 힘든 해였다. 전쟁터에서도 아기가 태어나듯 우리는 힘든 중에도 꿈을 품었다.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꿈, 바라던 바를 이루리라는 꿈, 원하던 사람이 되리라는 꿈. 그 꿈은 대개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도 탓하지 말자. 잊혀야 하는 꿈도, 꿈을 잊어야 했던 우리도 원망하지 말자. 올해의 남은 꿈들을 잘 잊어야 내년의 꿈이 다시 꿔질 테니까. 이제는 잘 잊을 시간이다.
 

바람 부는 날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만을 보면서
오래 오래 기다려 보았나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로
세상에 매달려 보았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에 시달려 보았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되어 스친 것들을
잊어 보았나

삶이 소중한 만큼
삶이 고통스러운 만큼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개의 낡은 잎새를
사랑해 보았나

윤강로(1938∼)

‘감응’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만난 결과, 우리 마음이 따라 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 만나면 변하기도 하겠지’ 싶지만 시에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시는 감응을 마법같이 대단한 힘으로 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시인은 오롯이 저 혼자서 시를 빚어내지는 못한다. 오늘 만난 타인, 말, 장면, 심지어 지나가는 바람마저 시인을 흔든다. 흔들어서 무엇인가 변화하게 한다. 감응하는 자이기 때문에 시인은 비로소 시인이 된다.
이 시를 보면 ‘감응’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시인은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낡은 잎새를 바라보고 있다. 그저 눈으로 만났을 뿐이다. 만지지도 않았고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깥의 것들을 눈에 담으면서 시인은 그것에 감응한다. 깊게 감응한 끝에 시인은 열매가 되고, 또한 낡은 잎새는 시인이 된다.

힘겹게 매달려 곧 떨어질 열매가 꼭 자신 같다고 생각한다. 바람에 시달리면서 아슬아슬 붙어 있는 잎사귀가 꼭 우리 삶 같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그것들을 이해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자, 이것이 인간과 잎새의 감응이다. 이런 감응이 왜 마법 같은가. 시인은 타자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자기 자신 안에서 타자를 보면서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은 상승하여 넓어진다. 이 시의 끝을 보라. 시인은 잎새처럼 보잘것없는 자기 인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시를 다 읽은 찰나, 마음에 무엇인가 꿈틀했을까. 바로 그거다. 그것이 ‘감응’이다.

 

당신의 방

당신의 방엔
천개의 의자와
천개의 들판과
천개의 벼락과 기쁨과
천개의 태양이 있습니다

당신의 방엘 가려면
바람을 타고
가야 합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마 당신의 방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새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승훈(1942∼2018)

내장산 단풍이 타오르듯 붉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그걸 보러 갔다. 더 많은 사람이 그걸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단풍이 붉든 붉지 않든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나도 단풍을 좋아했었지 싶지만 지금 아무 설렘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를 좋아하고, 희망하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타는 듯 붉은 단풍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나는 끝없이 추락하는 듯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우울하다’는 뜻이다. 우울하면 우리 마음속에는 딱 나 하나만 들어갈 좁고 어두운 방이 생겨난다. 그곳에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타는 듯 붉은 단풍이 아니라, 타오르는 뜨거운 마음이다.

오늘은 우울의 검은 방에 대항할 만한 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승훈 시인의 이 시에는 천 개의 기쁨과 천 개의 태양이 있다. 하나의 기쁨도 알지 못하는 터에 천 개의 기쁨이라니. 관 같은 어둠에 들어앉은 눈에 천 개의 태양이라니. 이 기쁨은 심장을 터지게 하고 이 태양은 눈을 부시게 한다. 시인은 죽을 때까지 그곳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고백은 결코 포기나 좌절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할 줄을 알면서도, 천 개의 기쁨과 천 개의 태양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열정’이라고 부른다.
생전의 이승훈 시인이 그랬다. 서양 시학의 최첨단이든 동양 시학의 최정점이든 시인은 최후의 순간까지 치열하게 추구했다. 성공했느냐 묻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어둠의 시대다. 지금 우리는 태양의 방을 가졌을까.
 

사람 지나간 발자국

아름다워라 나 문득 눈길 머물러

그것의 고요한 소리 보네

누군가가 슬쩍 밟고 갔을

저 허리 잘록한 소리

한참 살다 떠난 부뚜막 같은

다 저문 저녁 같은

이경림(1947∼)

사랑시에서 고독은 좋지 않은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마주 보는 둘이 있어야 하니까, 홀로 있는 고독이 좋을 리 없다. 고독한 연인은 이별 앞의 연인이다. 혼자서 하는 사랑은 슬픈 사랑이다.
그렇지만 사랑시를 제외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시와 고독은 오래전부터 유명한 짝꿍이었다. 슈타이거라는 이론가가 정리하기를, 서정시는 대체로 고독의 공간을 다룬다고 했다. 혼자 고요히 앉아, 삶과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은 분명 ‘시적인 시간’이다. 이것이 단 오 분이라도 주어지면 우리는 좀 충전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육체적 에너지만으로는 살 수 없다.

애들 학교 보낸 후에 가만히 앉아 있는 잠시. 일찍 도착한 사무실에서 잠에 덜 깨어 앉아 있는 나만의 시간. 일하다 잠깐 나와 햇빛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시간. 세상과 함께 있어도 이럴 때는 꼭 나만 혼자 있는 것 같다. 그런 걸 고독하다고 부른다.
이경림 시인의 시도 그런 시간에서 태어났다. 사람이 다 지나가고 나서 남아 있는 자국이 소리인지 형상인지는 시인만이 알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꼭 저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지 않은가. 고독하게 멍하니 있다가, 문득 깨닫고 마는 어떤 장면 말이다. 고독은 텅 빈 것 같지만 실은 비어 있지 않다. 분명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지만 마음이 꽉 채워지는 시간이다.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하략)

김기택(1957∼ )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 중간에 ‘가을꽃’이라는 글이 있다.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이 영민한 소설가는 항상 옳은 소리만 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힘입어 벌레 소리와 찬 달빛과 가을꽃을 즐기는 것은 후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 된다.
꽃만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도 벌레 소리에 감응하곤 한다. 감응력이 뛰어난 시인들의 경우는 더하다. 작은 힘을 가지고 태어나 큰 세상을 견뎌내는 벌레를 보고 시인들은 자기 자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김기택의 이 시도 벌레와 깊이 공명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벌레 중에서도 더 작은 것, 목소리가 더 작은 것을 떠올린다. 그것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시인은 더 힘없는 벌레들이 어두운 곳에 매달려 사는 모양을 떠올린다.
이 시는 목소리 큰 사람만 돌아보는 세상 탓에 우리가 잊고 사는 사실을 알려준다.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소리다. 크게 나서지 못하는 여린 마음도 마음이다. 우리는 때로 들리지 않는 것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매미는 올해도 연습만 하다 갔구나

텅 빈 합창단 연습실, 의상만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주인은 당장 방을 비우라고 했을 것이고

단장도 단원들도 불쌍한 얼굴로 방을 나섰을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 울며 떠났을 것이다

나는 이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

윤제림(1960∼ )

매미는 생각도 못 했겠지만 그는 종종 시의 주인공이 되어 왔다. 매미는 결코 바라지 않았을 텐데 많은 시인들이 그를 퍽 좋아했다. 예뻐서는 아니었다. 예로부터 매미는 환생의 상징이거나, 청백리의 상징이었다. 그 소리가 시원하여 더위가 가신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괴롭게 읊조리는 이가 마치 매미 같다는 표현도 있었다. 매미가 느긋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즐긴다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오래 기다리고 짧게 허물어지는 인생이어서 주목받았다. 한철의 인생 내내 절절하게 울어서 사랑받았다.

쓰르르 쓰르르, 인생이 쓰다는 듯 우는 매미를 쓰르라미라고 한다. 쓰르라미가 스러지면 귀뚜라미가 온다. 딱 요맘때다. 철 늦은 매미도 생을 거의 다하고 초저녁이면 귀뚜라미들이 자르르 울어댄다. 말하자면 지금은 쓰르라미와 귀뚜라미 사이의 시간이다. 윤제림의 제목도 긴, 이 작품이 생각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아주 무서운 시다. 주인이 방을 비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당장 말이다. 누구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것이다. 게다가 쫓겨나는 이들은 말미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저 울면서 떠나갔다고 한다. 이 매미들의 사연을 슬퍼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게다가, 이 매미가 실은 매미만은 아님을 우리는 직감하고 있지 않은가.
 

빈들

늦가을 바람에
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

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

사람이 없는 빈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들
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은

고진하(1953∼)

고진하 시인은 강원도에서 태어난 시인이고, 지금도 강원도에 산다. 그의 피에는 강원도 산골짜기 물이 흐르고, 그의 숨에는 강원도의 공기가 머물 것이다. 시인의 육신이 자연에 기대 있는 것처럼, 그의 생각과 마음도 자연에 의탁해 있다. 그러니 그의 시가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서 빚어지는 건 당연하다. 자연은 의지할 만한가. 그렇다. 자연은 그렇게 든든한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자연이 항상 채우는 것,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피를 채우고 우리의 숨도 채우지만 때로 자연은 텅 비어 있다. 비어서 무엇을 하나. 빈 자연마저 허투루 있지 않다. 그것은 늘 우리에게 뭔가를 준다. 비어서도 우리를 껴안아 주려고 한다.

고진하 시인의 ‘빈들’은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삶의 첫 깃발이었다는 말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시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어 있는 들을 닮아 나도 다 내려놓자. 비어 있는 곳에 뭔가가 꽉 차 있다. 그것 따라 나를 채워보자. 이런 마음이 이 시를 만들었고, 시인의 삶을 만들었다. 나중에 시인은 ‘다시 빈들에서’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빈들의 마음이 중요했다는 말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무엇을 얻었나.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곳이 가득 차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생각을 처음부터, 마음을 처음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다 비우는 데서 시작된다. 마음의 빈들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의 등불

저 뒷울 댓이파리에 부서지는 달빛
그 맑은 반짝임을 내 홀로 어이 보리

섬돌 밑에 자지러지는 귀뚜리랑 풀여치
그 구슬 묻은 울음소리를 내 홀로 어이 들으리

누군가 금방 달려들 것 같은 저 사립 옆
젖어드는 이슬에 몸 무거워 오동잎도 툭툭 지는데

어허, 어찌 이리 서늘하고 푸르른 밤
주막집 달려가 막소주 한 잔 나눌 이 없어

마당가 홀로 서서 그리움에 애리다 보니

울 너머 저기 독집의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이
어찌 저리 따뜻한 지상의 노래인지 꿈인지

고재종(1957∼ )

‘미스 트롯’같이 성공한 경연 대회를 보면 꼭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낯선 가수가 노래를 시작한다. 첫 구절을 딱 듣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는 노래도 아닌데 알았던 노래처럼 들린다.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처음 읽었는데,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시. 새로움과 친숙함을 함께 전하는 시는 ‘내 맘에 꼭 맞는 이’처럼 금세 독자를 점령한다. 맞다. 나는 지금 고재종의 ‘사람의 등불’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시의 풍경은 예전에 가봤던 어떤 곳이 아니다. 그렇지만 알 것만 같다. 가봤는데 잊고 있었던 것 같고, 이제야 기억해 낸 것도 같다. 기억의 오류일까 묻는다면 시의 기적이라고 대답하겠다. 내 마음속에 흩어졌던 세계는 시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다. 시라는 안내자를 통한 여행이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이 시의 언어와 묘사가 구절구절 몹시 아름답지 않은가. 뒷울 댓이파리에 부서지는 달빛이라니. 마당가를 서성이면서 바라다보는 울 넘어 등불이라니. 이것은 오래전 우리 선조가 개발하고, 우리가 잊었던 장면들이다. 시를 통해 가진 적 없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가질 수 없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가을의 심상이 찾아온다. 이제 그런 계절이다.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아버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감 따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감 따는 게 싫어 짜증을 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느냐고
감 따위 따서 뭐 하냐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가을이 왔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나는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톱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울었다

피재현(1967∼)

시를 읽으러 오신 분들은 모두 시의 손님이다. 손님께는 물 한 잔이라도 정성껏, 맑은 차라도 계절에 맞게 드리는 법. 그래서 봄에는 꽃과 나비의 시를, 겨울에는 흰 눈과 쓸쓸함을 준비하곤 했다. 그러니 오늘, ‘별이 빛나는’ 시를 준비한 것이 어색하지 않다. 늦게까지 별을 올려다보는 계절은 여름날이니까. 나아가 감나무 이야기를 준비한 것도 너무 이르진 않다. 이제 곧 가을이 올 테니까. 우리는 가을을 기다리는 중이니까. 가슴을 찡하고 울리는 이 작품은 시인의 최근 시집에 들어 있다.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시인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기 등장한다. 시골 마을 감나무에는 감이 많이도 열렸나 보다. 그것을 아버지는 사랑했고, 아들은 귀찮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는 감을 포기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남편의 빈자리, 슬픔, 허무함, 우울 같은 것이 퉁명스러운 말 속에 가득하다. 때로 이런 슬픔은 별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시에서의 별이 실제 별이 아닌 걸 우리는 안다.
그 별들은 시인의 나무, 아버지가 사랑한 감나무, 그런 아버지를 사랑한 어머니 마음에만 떠 있다. 시인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르듯 오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무덤을 짓듯 시집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뒤적이면서 오래도록 감나무의 안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톱질하면 아플 텐데 걱정하면서. 나도 시인처럼 울게 될 텐데 하면서.
 

뜨락

자고나면 이마에 주름살,
자고나면 뜨락에 흰 라일락.

오지랖이 환해
다들 넓은 오지랖 어쩌자고 환한가.

눈이 부셔 눈을 못 뜨겠네.

구석진 나무그늘 밑
꾸물거리는 작은 벌레.

이날 이적지 빛을 등진 채
빌붙고 살아 부끄럽네.

자고나면 몰라볼 이승,
자고나면 휘드린 흰 라일락.

김상옥(1920∼2004)

시인들은 때로 시작 노트라는 것을 쓴다. 신작시를 발표할 때, 시를 쓸 때의 마음이라든가 작품 해설을 짧게 붙인 것을 말한다. 사실 시작 노트는 흔하지 않다. 대개의 시인들은 설명을 삼간다. 시는 시 그대로, 읽는 이의 마음으로 날아가 살아야 한다. 거기에 시인의 해설을 얹으면 시는 무거워져 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시작 노트를 좋아한다. 그건 마치 자기 시의 셀프 뒷담화 같다. 게다가 시인들은 시작 노트도 잘 쓴다. 산문이어도 시 같은 산문일 때가 많다. 시보다 정보도 더 많이, 명확하게 담겨 있다. 그러니 재미가 없을 수 없다.

1970년대에 나온 책을 뒤적거리다가 김상옥 시인의 이 시를 보았다. 그 곁에 시작 노트가 놓여 있었는데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시를 돈으로 바꾸고도 싶지만 흔들리지 않겠다고 했다. ‘시가 어떤 보배보다 값지고, 시인이 어떤 인격보다 빛난다’고 적고 있었다.
이건 세상의 주류와는 반대되는 말이다. 돈보다 귀한 것이 있다니, 이런 주장은 잊혀진 철학이며 변방에나 떠돌 신념이다. 그러나 잊혀졌다고 해서 잊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상한 그의 자존심, 마이너가 된 다짐을 신뢰한다. 시인은 자고 나면 주름살이 느는 세상살이에서 덜 부끄럽게 살자고 말한다. 삼 일을 못 갈 다짐이래도, 한번 따라해 볼까. 지금은 햇살이 눈부신 계절이니까.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