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유일 ‘좌명공신교서’ 실물 찾았다…이천서씨 종가 600년 보존 고문헌 첫 공개
- 승인 2026.03.05 19:17
- 지면게재일 2026년 03월 05일 목요일
태종 즉위 도운 서유 공신교서·왕지 3점 확인
개국 초기 공신 제도·왕명 문서 체제 입증 귀중본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해 연말 600년 전통의 이천서씨 양경공 종가로부터 기탁받은
360여 점의 고문헌 가운데, 조선 건국 초기 관료이자 태종 즉위 공신인 서유(徐愈, 1356~1411)
관련 문서 3점을 정리·연구를 거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태조·태종 대에 서유에게 발급된 王旨 2점과
1401년(태종 1) 2월 내려진 佐命功臣敎書 1점이다. 특히 좌명공신교서는 현재 실물이 전하는
조선 초기 좌명공신교서 가운데 유일한 사례로 확인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유는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을 도와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공로로
익대좌명공신 4등에 책록됐다. 태종은 즉위 직후 공을 세운 47명을 좌명공신으로 녹훈했으며,
서유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이른 공신교서는 1392년(태조 1) 10월
개국공신 1등에 오른 李濟(星州李氏)에게 발급된 개국공신교서다.
서유의 좌명공신교서는 시기적으로 두 번째로 빠른 사례에 해당한다.
함께 책록된 마천목의 경우 녹권은 남아 있으나 교서는 일제강점기 촬영 사진으로만
존재가 확인된다. 교서는 공신 책록 사실을 선포한 공식 문서이고,
녹권은 토지·노비 등 포상 내역을 기록한 문서다.
이런 점에서 서유의 좌명공신교서는 역사적·제도사적 가치가 각별하다.

문서 앞뒤에 찍힌 보인 ‘조선왕보(朝鮮王寶)’는 좌명공신교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이제의 개국공신교서에 찍힌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과 대비된다.
원본 하단에 붉은 천을 덧댄 형식은 종가에서 이를 ‘단서(丹書)’라 불러온 근거로,
이른바 ‘단서철권’ 문서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함께 기탁된 왕지(王旨) 역시 희귀 자료다.
고신(告身)이라 불린 관직 임명장은 조선 초기에 ‘왕지’ 형식으로 작성됐으며,
세종 대에 ‘교지’로 정비됐다. 현재 실물이 전하는 왕지는 약 43점에 불과하다.

서유의 왕지는 1394년(태조 3) 9월 태조가 그를 봉정대부 세자우필선으로 임명하며 발급한 문서로,
현존 왕지 가운데 네 번째로 이른 시기 자료다. 문서 상단 일부가 훼손돼 ‘왕지’ 중 ‘왕’ 자가 결락된 상태다.
이와 함께 1402년(태종 2) 12월 서유를 추성익대좌명공신 가정대부 이성군 집현전제학 겸
판내자시사로 임명한 왕지도 함께 전해진다.
이 자료를 기탁한 이천서씨 양경공 종가는 서유의 증손 서석손 대에
경주 현곡면으로 이거한 뒤 오늘날까지 600년 넘게 선대 문헌을 보존해왔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이번에 공개된 서유 관련 문서는
조선 건국 초기 공신 제도와 왕명 문서 체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유산”이라며
“오랜 세월 종가에서 지켜온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연구해 전통기록유산의 가치를 널리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600년 세월을 건너온 공신 교서 한 장. 조선 건국과 권력 재편의 격동기를 증언하는 이 문서는, 기록이 곧 역사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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