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명목을 찾아서](36)중곡 문태갑과 인흥마을 홍매
- 기자명 최미화 기자
- 입력 2026.03.2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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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공무원으로 시가지에 나무를 심고, 가꾸며 가졌던 소망 중 하나는 입춘과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는 나무를 심고 싶었다. 2월 초순 절기는 입춘(立春)이라고 하지만 주변은 겨울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사나 신문은 산골짜기 얼음 속에서 개울물이 흐르는 장면이나 버들강아지의 움튼 가지, 눈 속에 핀 복수초 등을 영상으로 내보내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그러나 숲의 세계는 겨울 그대로 이기 때문에 봄을 체감하지 못한다. 대구는 대체로 3월 하순이 되어야 개나리, 살구꽃, 목련이 피고, 4월 초순 벚꽃이 만개해야 봄을 실감한다.

이런 고민으로 날을 보내던 중 시가지에 심을 초본류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 전남 구례의 대한종묘원(원장 장형태)을 찾았다. 지리산 야생화를 조경용으로 재배한다는 소문을 듣고 팬지, 페츄니아 등 외래종 일변도의 식재 패턴을 우리 꽃으로 바꾸어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농장을 둘러보다가 진한 향기가 코를 자극해 주변을 살펴보니 붉게 핀 홍매(紅梅) 한 그루가 흰 눈으로 덮인 지리산 정상과 묘한 대조를 이루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다!. 빨리 시민들에게 봄소식을 전해 주려면 이 홍매가 적격이구나 하고 되돌아왔다.

매화전문가 정옥임 여사를 만나 삽수(揷穗)를 구해 묘목을 생산해 놓으면 구매하겠다고 약속하고 일을 진행했다. 이듬해 생산된 묘목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경상감영공원 등에 심고 일부는 중곡(中谷) 문태갑(文胎甲) 선생의 권유로 인흥마을에 심었다. 그 결과 비록 입춘과는 한 달여 늦게 피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따라서 3월 초·중순 인흥마을은 탐매객(探梅客)들로 주차장이 비좁을 정도로 붐비고,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여 대구의 상춘(賞春) 명소가 되었다.

민속 마을 인흥(仁興)은 대구에서 몇 군데 남아있지 않은 비보(裨補) 숲과 희귀 수종인 노란해당화, 또 목화밭이 있고, 특히, 문희목 댁의 능소화 고목은 꽃이 필 때 전국 각지의 사진작가들이 찾아온다.
그때 은퇴하고 마을을 지키던 분이 인흥마을 중곡(中谷) 선생이었다. 평소 매화를 좋아해 이미 조성해 놓은 백매원(白梅園)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에 홍매를 더 심어 줄 것을 제안했고 그것이 크게 자라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흥매’(仁興梅)다.
중곡은 독립운동가 문영박(文永樸) 선생의 손자로 1930년 인흥마을에서 태어나
명문 경북중, 고등학교를 거처 서울대학교 상대(商大)를 졸업했다.
동양통신 정치부장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정계에 입문해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잠시 신현확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그 후 다시 언론계로 복귀하여
서울신문 사장과 한국신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마지막으로 귀향한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우리에게 참된 전통의 계승이 무엇인가를 침묵의 소리로 말해 주는 소문 나지 않은 명소가 있다. 그곳은 대구광역시 화원 인흥마을에 있는 남평문씨 세거지다”라고 평가할 만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반촌이다.
누군가 중곡에게 왜 낙향했느냐고 물으니 “도시는 일하는 곳이다. 일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낙향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할 일을 다하고 돌아오는 귀향이나 환향(還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조그마한 응접실인 거경서사(居敬書舍)에 머물면서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국내 최대인 1천95종, 6천948책(도산서원, 4천400책, 1975년)의 장서를 보유한 인수문고(仁壽文庫)와 당신이 소장하고 있던 5천여 한국학 관련 책이 있는 중곡문고(中谷文庫)를 관리하고, 문중 소유 토지를 대구시에 기증하여 연못, 인흥원(仁興園) 조성을 주도한 이외 ‘마을의 형성 과정’과, ‘가계와 세덕’(世德) 등을 정리한 마을 인문 지리지 『인흥록(仁興錄)』(2003, 규장각, 필명 문희응 文熙膺)을 편찬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론계, 관계(官界), 정계의 요직을 맡아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일을 해온 비화(祕話)도 많을 것이나, 자서전 한 권 남기지 아니하고 2024년 향년 94세로 영면했다. 명함에도 화려한(?) 전력(前歷)을 쓰기보다는 단지 이름 석자 만 쓸 만큼 드러내기를 싫어했으며 평범한 촌로의 모습으로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찾아오는 지인을 만나며 소일했었다.
온화한 성품에 한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처럼 곧게 산 분이었다. 해마다 봄이면 당신이 정성스럽게 가꾼 홍매는 붉게 피고 탐매(探梅) 하려는 사람들로 인흥마을은 북적일 것이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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