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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만리) 재 한 줌

한문역사 2026. 4. 17. 12:57

문향만리) 재 한 줌 / 조오현

  • 기자명 최미화 기자 
  •  입력 2026.04.16 06:20
 

이정환(시조 시인)

양산 통도사 영축산 다비장에서

오랜 도반을 한 줌 재로 흩뿌리고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날려 보냈다

거기, 길가에 버려진 듯 누운 부도

돌에도 숨결이 있어 검버섯이 돋아났나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내려왔다

언젠가 내 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 건가

어느 숲 눈먼 뻐꾸기 슬픔이라도 자아낼까

곰곰이 뒤돌아보니 내가 뿌린 재 한 줌뿐이네..


​『아득한 聖者』(2007, 시학)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에게 쓰라고 명령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리고 그 쓰고 싶다는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뻗어 나오고 있다면,

만일 쓰는 일을 그만 둘 경우에는

차라리 죽어버릴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조용한 밤에 나는

정말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인가를 확인해 보십시오.

그리고는 마음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이상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이다.

글쓰기에 대하여 이보다 더 치열한 발언을 일찍이 본 일이 없다.

글을 쓰지 못하게 되면 죽어버릴 수 있는 극한에까지 내몰릴 때

글을 쓰라는 말 앞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조오현(1932~2018)은 영원한 구도자이자 시인이었다. 그의 시편은 심히 절절했다.

좋은 시조를 만나면 그 작품을 암송하기까지 할 정도로 시조를 사랑했다.

경지가 달랐다. 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재 한 줌」은 무상 무위를 노래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 영축산 다비장에서다.

오랜 도반을 한 줌 재로 흩뿌리고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날려 보내던 날의 기록이다.

그리고는 길가에 버려진 듯 누운 부도를 바라보며

돌에도 숨결이 있어 검버섯이 돋아났나, 하고 혼자서 되뇐다.

언젠가 내 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지 질문하며,

어느 숲 눈먼 뻐꾸기 슬픔이라도 자아낼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곰곰이 뒤돌아보니 내가 뿌린 재 한 줌뿐인 것을 깨닫는다.

누구인들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雪嶽 조오현 대종사가 열반에 들던 건봉산 다비식을 또렷이 기억한다.

2018년 여름이었다. 대중들이 숙연히 고개 숙인 가운데 불이 들어가고,

그는 마침내 한 줌 재가 되었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시조의 저변 확대와 질적 향상을 위해

헌신했다. 좋은 작품을 쓰는 후진들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의 시조는 거침없었고 심오했다. 천의무봉의 경지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친필 그림과 글을 다수 간직하고 있어서 가끔 찾아보곤 한다.

그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를 기린다. 재 한 줌의 뜻을 오래도록 새긴다.
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