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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1541) 온양 정씨

한문역사 2026. 5. 11. 20:09

조용헌 살롱] [1541] 한민족 고유의 철학 '낭가' 잇는 온양 정씨

입력 2026.05.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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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가(郞家)’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단재는 ‘독립’과 ‘민족’을 평생 동안 생각한 인물이다. 그 자존심의 표현이 낭가였다고 본다. 낭가란 불교와 유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있던 한민족 고유의 정신 철학이다. 자주적인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DNA라고 할 수 있다. 고조선의 소도(蘇塗),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신라의 화랑(花郞), 조선의 단학파가 낭가의 계보다.

필자가 전국의 명문가를 탐방하면서 알게 된 집안들은 대부분 유교 명문가였다. 불교는 자식을 낳지 않으니까 혈손은 없고 대신 법손들로 이루어진 출가 문중(門中)이 있다. 낭가는 어디 있는가?

온양 정씨 북창(北窓) 정렴(鄭磏·1506~1549)의 집안을 꼽을 수 있다. 북창은 선가의 수련서인 ‘용호비결(龍虎秘訣)’을 남겼다. 코앞에 꿩의 깃털을 대고 숨을 쉴 때 깃털의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미세하고 깊게 숨을 쉬어야 단전호흡의 깊은 경지로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렴의 동생 고옥(古玉) 정작(鄭碏·1533~1603)은 허준의 상관으로서 ‘동의보감’을 편찬할 때 큰 틀을 세운 인물이다. 중국 의학 서적에 없는 동의보감만의 특징이 바로 정기신(精氣神)에 대한 부분이다. 정작의 관점에 의하면 인체의 모든 건강은 큰 틀에서 정·기·신을 보강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정작의 조카가 총계당 정지승(鄭之升·1550~1589)이다. 이 양반도 특이한 도사였다. 정지승은 전북 진안군 용담(龍潭)에서 신령스러운 거북이를 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거북이를 타고 강물을 건너다녔으며 쉴 때는 거북이를 바위 틈에 숨겨두었다”는 내용이 1717년 용담 일대를 여행한 김창흡의 ‘남유일기(南遊日記)’에 나온다.

북창의 증손이 정두경(鄭斗卿·1597~1673)이다. 그가 금강산에 올라가 보고 찬탄했다. “동해의 삼신산이 이곳에 있으니 중원의 오악(五嶽)도 낮아 보인다. 뭇 신선들 자리 잡고 싶어 안달이니 서왕모도 서쪽에 거주함을 한탄하리.” 단학파의 후예인 정두경에게 조선의 금강산은 중국의 오악에도 꿀릴 것이 없는 명산이었다.

정두경의 11대 후손이 신화학자이자 이화여대 교수로 있던 정재서(74)이다. 난해하다고 소문난 ‘산해경(山海經)’을 30대에 번역해 냈다. 윗대로부터 전수된 낭가 집안의 콘텐츠가 밑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이번에 그가 낸 책인 ‘제3의 신화학’은 서양신화와 중국신화 사이에서 짓눌리지 않고 한국 고유의 제3의 신화를 모색한 결과물이다. 한국에 낭가 집안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