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영의 세월에 장사 있다] 물을 마셔도 왜 계속 입이 마를까?
‘느린 물’이 부족하기 때문
노년기 식사량 줄이면 위험… 골고루 먹고 근육량도 지키길
최근 건강 관리에 적극적인 분들이 부쩍 늘었다.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에 매진하며
몸의 지표를 개선해 나가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몸이 건강해져도 해결되지
않는 불편함 때문에 진료실을 다시 찾는 사례가 빈번하다.
대표적인 것이 ‘입 마름 증상’이다.
하루에 물을 2L 이상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고 화장실만 들락거린다는
이 역설적인 고충의 답은, 의외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 있다.

◇검사 결과 정상인데 왜 입이 마를까
보통 입 마름이 지속되면 침샘 기능 저하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약물 부작용,
혹은 농축된 건강기능식품을 먼저 의심한다. 하지만 복용 중인 약이 없고 정밀 검사상
별다른 질환이 없는데도 입 마름을 호소하는 분을 꽤 자주 만난다. 뚜렷한 원인도 없고
고령이 아닌데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노화나 물 섭취 부족이 아니라
수분을 섭취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인의 수분 섭취 구조를 살피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국민건강영양조사와 다른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성인의 수분 섭취량 중
마시는 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서 3분의 1 정도다. 오히려 음식을 통해 얻는 수분이
음료를 통한 섭취량보다 월등히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한국인은 수분 공급의
상당 부분을 마시는 물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식사량을 줄이면
그만큼 체내 수분 부족량도 예상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결국 식사 구조가 무너지면
평소처럼 물을 마셔도 몸은 여전히 건조한 상태에 머물게 돼 근본적인 갈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밥이 줄면 수분 섭취도 줄어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곡기(밥)다. 쌀로 밥을 지을 때 쌀 무게의 1.2~1.5배에 달하는 물을 붓는다. 조리 과정에서 일부 증발하더라도, 남은 수분은 곡물의 섬유질 및 단백질 분자와 결합한 상태로 우리 몸에 들어온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에너지만 얻는 행위가 아니라, 꽤 많은 수분을 섭취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곡기 섭취량이 줄어든 경우뿐 아니라, 혈당 관리나 다이어트를 위해 밥 양을 줄인 후 1~2주 뒤부터 서서히 갈증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쌀밥을 잡곡밥으로 바꾸거나 떡이나 빵, 샌드위치로 식사를 대신할 때도 입 마름이 자주 생긴다.
수분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흡수 속도로 보는 ‘빠른 물’과 ‘느린 물’
물론 물을 직접 마시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갈증은 지속되는데 화장실만 자주 가게 되는 악순환을 경험할 때가 많다. 이는 우리 몸의 생리적인 조절 시스템 때문이다. 빠르게 혹은 많은 양의 물을 한꺼번에 마시면 우리 뇌는 혈액량의 급격한 변화를 감지하고, 체액 균형을 위해 항이뇨호르몬(ADH) 분비를 줄여 소변 생성량을 일시적으로 늘려 버린다. 마신 물이 세포 구석구석에 분포되는 속도보다 신장을 통해 배출되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이다. 조금씩 자주 나누어 마시는 것이 대안이 되기도 하지만, 체감 효과가 크지 않을 때가 많다.
필자는 진료실에서 ‘느린 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느린 물이란 밥이나 채소에 함유된, 식이섬유나 단백질에 결합된 수분 형태를 말한다. 음식 속 물 분자는 소화 과정과 함께 아주 천천히 해리돼 체내로 유입된다. 덕분에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조직과 세포 깊은 곳까지 수분이 전달될 충분한 시간을 벌어준다. 탈수처럼 갑자기 수분이 부족해진 상황이 아닌 만성적인 입 마름에선 이처럼 몸속에 오래 머물며 천천히 흡수되는 구조화된 수분 섭취가 꽤 효과적이다.
음식을 골고루 잘 챙겨 먹은 날은 물을 따로 마시지 않아도 목이 잘 마르지 않는 것도 같은 원리다.

◇유독 입 마름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
식사 패턴 변화로 인한 입 마름은 근육량이 적고 마른 체형일수록 더 강하게 체감한다. 근육은 거대한 ‘수분 저수지’ 역할도 있어서 체내 수분이 부족할 때 요긴한 조달처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근육이 적고 왜소한 여성이나 노인의 경우 이런 완충 능력이 떨어져, 식사량이 조금만 줄어도 몸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노년기에는 구강 점막의 재생 능력이 떨어지고 신장 기능도 저하돼 수분 완충 능력이 더 부족한 편이다. 이때 어떤 이유로 식사량이 줄어 수분 부족이 몇 주 이상 지속되면, 갈증이 만성화되면서 입안이 화끈거리는 작열감이나 통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예민해진 신경이 이 감각을 통증으로 ‘학습’해 버리면, 이후엔 아무리 물을 마셔도 고통이 가시지 않게 된다. 노년층에서 입 마름이 유독 더 많고 해결은 어려운 이유다.
◇촉촉한 몸을 위한 솔루션
입 마름이 느껴질수록 생활 속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만성질환 관리와 약물 검토는 기본이다. 다이어트나 혈당 관리를 위해 식습관이 바뀌었거나 곡기량이 줄었다면 평소보다 분쇄하지 않은 생야채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오이나 상추처럼 수분 함량이 높은 채소를 원형 그대로 먹으면 수분이 체내에서 서서히 흡수돼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다만 곡기 섭취량이 적을 땐 이전보다 꽤 많은 양의 채소를 먹어야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노년기에는 증상이 만성화될 우려가 크므로 훨씬 더 일찍 대응하길 권한다.
궁극적인 예방법은 식사를 골고루 챙기고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이다.
갈증이 자주 나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 한 번쯤 자신의 식습관 변화를 세심히 살펴보자.
잘 먹는 것이 곧 잘 마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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