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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속의 역사(91) 경주 남산 용장사의 보물들

한문역사 2026. 5. 19. 17:26

신화속의 역사] 91 용장사의 보물들

강시일 기자2026. 5. 18. 11:15
 
남산 깊숙한 용장곡에 탑과 마애불, 석불 보물 3종세트 한 곳dp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쓰여진 용장사 절터는 흔적만 남아
경주 서남산의 보물 용장사지 삼층석탑. 

경주 남산 서쪽 기슭 깊숙이 자리한 용장골은 남산에서도 가장 깊고 그윽한 골짜기로 신비로운 전설과 고결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신라 법상종의 요람이자 미륵 신앙의 중심이었던 용장사(茸長寺)가 터만 남아 옛 영광을 증언하고 있다. 용장사지에는 가람은 사라지고 없지만 신라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 가지 보물이 남아 천년의 세월을 고증하고 있다.

바위를 기단 삼아 하늘로 솟은 삼층석탑, 독특한 대좌 위에 앉은 사실적인 미륵불, 그리고 절벽 바위에 새겨진 온화한 미소의 마애불은 각각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하나되는 신라인들의 예술 정신을 보여준다.

용장사는 조선시대 천재 문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한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신화와 전설, 역사와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용장사의 보물들을 통해 신라인들의 간절한 염원과 조선시대 지식인의 고뇌를 들여다 본다.
경주 서남산에 위치한 보물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1: 대현스님과 미륵불의 감응

경주 남산 서쪽 기슭, 우거진 소나무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용장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서서히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게 된다. '용장(茸長)'이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이 골짜기 깊은 곳에 용이 살았거나, 혹은 용이 승천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인들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해 가람을 조성했다. 산 아래에서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입체적인 구조는 용장사가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자연과 불교 신앙이 결합된 성스러운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바위와 계곡, 암반 위의 탑과 마애불이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지며 남산 전체가 거대한 불국토였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 깊고 그윽한 골짜기에는 신라 고승 대현 스님과 관련된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대현 스님은 원효 이후 활동한 유가종의 석학이다. 백성들에게 불교를 쉽게 풀어 전하며 '백성과 가까운 승려'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경주 서남산의 보물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강시일 기자

대현 스님은 용장사에 머물며 수행했고, 신비로운 도력으로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며 교화했다. 특히 스님이 피리를 불면 하늘의 새들이 날아들고, 산짐승들까지 모여들었다.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스님과 용장사 미륵불의 감응 설화다. 삼국유사는 대현 스님이 용장사의 미륵장육상(丈六像)을 돌며 예배하면, 불상도 스님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는 대현 스님의 깊은 수행과 지극한 염원이 부처님의 마음을 움직였음을 보여주는 이적 중의 하나다.

법상종의 핵심인 미륵 신앙과 유식학적 수행이 실제 불상의 기적으로 나타난 이 설화는 당시 신라인들이 이 불상을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부처님으로 깊이 신봉했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과 병든 이를 외면하지 않았던 대현 스님의 따뜻한 마음과 부처님의 가비가 어우러진 이 이야기는 남산이 단순한 산이 아니라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인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전한다.
경주 서남산의 용장사가 있었던 절터. 강시일 기자

◆흔적: 자연 위에 피어난 신성의 극치

용장골의 깊은 침묵을 깨고 나타나는 용장사지에는 신라의 조각 기술이 집약된 세 가지 보물이 남아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오묘한 진리를 전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독특한 내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거친 산길을 올라온 이들에게 천년 전 신라인들의 간절한 염원과 예술적 감동을 선사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 위에 신성을 더한 신라 예술의 독창성을 잘 보여주는 용장사지의 보물 3종 세트가 땀을 훔치고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보물 제186호로 산 전체를 기단 삼아 하늘로 뻗은 탑이다. 용장사지를 향해 험준한 용장골을 오르다 보면, 낭떠러지 끝 위태로운 암반 위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이 탑은 8세기 후반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발 300m의 봉우리 정상부 암반을 깎아 하층 기단을 대신하게 하고, 그 위에 탑신을 세운 파격적인 발상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자연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자연과 건축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탑은 실제 높이보다 훨씬 웅장하고 위엄 있어 보인다. 마치 산 전체가 이 탑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장관은 계곡 어디에서나 탑을 올려다볼 수 있게 설계됐다.

1층 탑신이 유난히 높고 위로 갈수록 급격히 규모가 줄어들어 상승감을 극대화하며, 전체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날렵한 느낌을 준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도굴되고 무너져 있던 것을 1922년에 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륜부가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여전히 남산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용장사지 뒷쪽에 글씨가 쓰여진 암벽. 강시일 기자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은 보물 제187호로 삼륜대좌 위에 앉은 사실적인 미륵불로 신비감을 주는 이색적인 형식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삼층석탑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불상은 현재 머리 부분(불두)이 없어지고 몸체와 원형으로 조성된 대좌만 남아 있다. 8세기 중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특이한 형태의 삼륜대좌이다. 둥근 원반 모양의 돌을 3단으로 쌓아 올린 형태로 마치 작은 삼층석탑 위에 불상이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이다.

 

이러한 대좌 형식은 한국 불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유일하고 독특한 예로 불상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발견 당시 불상의 몸체는 누군가에 의해 분해되어 있었고 목은 예리하게 절단돼 있었으나 머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억불 정책이나 전란 중에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도상학적으로는 왼쪽 어깨의 가사 띠 매듭과 술 장식 등을 근거로 지장보살상이나 승려의 초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대현 스님이 예배했던 '미륵장육상'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경주 용강사지 일대에 흩어져 있는 석재. 강시일 기자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보물 제913호로 지정돼 있으며 절벽 바위에 새겨진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살아 있는 듯한 예술성이 뛰어난 불상이다.

석조여래좌상 뒤편의 거대한 바위 벽면에 새겨진 이 마애불은 8세기 후반 통일신라 전성기의 우수한 조각 양식을 보여준다. 자연 바위 벽면을 다듬어 바위 자체를 광배로 삼고 그 안에 부처님을 새겼다. 마치 바위 안에 들어있던 불상을 찾아낸 듯하다는 해석을 듣는다.

불상은 소박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어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굽타 양식의 마투라불과의 유사성이 언급될 정도로 국제적인 감각이 투영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애불의 왼쪽 어깨 바깥쪽에는 판독이 어려운 10여 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학계에서는 이 명문을 근거로 마애불의 제작 시기를 977년 혹은 1022년으로 비정하기도 하며, 이는 신라의 불교 조각 전통이 고려 시대까지 계승되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김시습의 법명을 따 지은 용장곡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설잠교.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2: 매월당 김시습과 금오신화

용장사지는 신라의 불교 문화와 조선 지식인의 고뇌가 함께 남아 있는 특별한 인문학적 공간이다. 조선 초기 천재 문인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1435~1493)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분개해 현실 정치에 뜻을 접고 승려가 돼 전국을 떠돌았다. 법명 설잠으로 불리던 그는 경주 남산 용장사지 은적암(隱寂庵)에 머물며 사색과 수행의 시간을 보냈다.

그윽하고 폐사된 용장사 절터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집필한 작품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집으로 평가받는 '금오신화다. 금오(金鰲)는 남산의 다른 이름인 금오산에서 따온 것이다.

금오신화에 기록된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다섯 편의 작품은 현실에서의 좌절과 고독, 그리고 초현실적 세계를 통한 이상향의 추구를 담고 있다.
경주 용장사지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전경. 강시일 기자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금오신화의 신비로운 이야기는 안개 낀 남산 골짜기와 무너진 왕실에 대한 비판과 좌절에서 탄생했다는 해석이 많다. 특히 남염부주지와 같은 작품에서는 부정한 권력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엿보이는데, 이는 김시습 자신의 절의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용장사의 깊고 적막한 골짜기는 그에게 문학적 영감과 위로를 동시에 제공했다.

용장사지는 단순한 절터를 넘어 천년 전 신라인들의 미륵 신앙과 조선 시대 지식인의 우국충정이 얽힌 문학적 무대다. 산봉우리 위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과 머리를 잃은 채 앉아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세월의 무상함과 동시에 영원히 변치 않는 예술적 가치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발굴에서 드러난 금당지와 명문 기와들은 이 계곡이 한때 수많은 승려와 신도들로 붐볐던 신라 불교의 요람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지금은 적막만이 감돌지만 바위에 새겨진 불상의 온화한 미소와 탑이 응시하는 하염없이 뻗어나가는 가없는 세계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용장사지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앙이 하나로 어우러진 지고의 문화적 공간으로서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보존되어야 할 소중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