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아무튼, 주말]
[김효선의 세상 구경]
부모와 자식은 언젠가
역할을 바꿀 날이 온다

봄이 병원 예약과 함께 지나갔다. 형제자매가 없는 게 가장 아쉬울 때는
역시 부모님의 보호자로 병원에 다닐 때다.
사람의 몸은 어찌나 복잡한 기관인지 아플 수 있는 부위가 끝도 없었다.
지난달부터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던 아빠가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추가 통증을 호소했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진단서를 받아 온 우리는 진료실 바깥에서 대기했다.
병원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는 아픈 사람밖에 없는 것 같다. 걸음이 느린 할아버지가
그보다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붙잡고 걷는 걸 보면 누가 환자인지 구분이 안 됐다.
병원 키오스크에 CD를 등록하는 게 어려워 한참 헤맸다는 말씀을 들은 후 가급적
아빠를 병원에 혼자 보내지 않기로 했다. “큰 병원은 혼자 오는 사람 아무도 없어.
” 아빠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쌍쌍이 온 것을 유심히 보았다.
일머리가 좋던 아빠는 이제 혼자 병원에 가는 걸 서운해하는 사람이 됐다.
‘내 가게에 부모님을 고용했습니다’의 저자 최윤선은 연희동 선술집 ‘또또’의 대표다. ‘
또또’는 어린 시절 가족들이 그를 부르던 애칭인데, 이를 그대로 식당 이름으로 삼았다.
사실 이 이름이 처음은 아니다. 평택에서 ‘또또포차’를 운영하다 메르스 여파로 폐업을 겪은 부모님을 모셔오면서 두 분이 쓰던 가게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조리실장으로, 아버지는 홀 인턴으로 일한다. 그렇게 둘째 딸은 사업과 가정을 함께 경영해 나간다.
‘또또’의 사례처럼 부모와 자식은 언젠가 역할을 바꿀 날이 온다. 기력이 쇠하며 아빠는 많이 온순해졌다. 아빠는 2번 간호사실로 가라는 말을 “입원하래?”라고 되물을 정도로 헤맸다. 하루에 검사 하나씩 예약돼 병원을 여러 날 와야 하는 스케줄을 받고 나는 아빠에게 천천히 다시 설명했다. “진료는 다음 날 또 오셔야 해. 병원도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까 본인 성미대로 하루에 다 와서 하는 건 안 돼.” 얌전히 설명을 듣는 아빠와 옆에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나를 보던 맞은편 사람이 눈을 맞추며 웃어주었다.
이 와중에 아빠의 대상포진은 좀처럼 낫질 않았다. 신경통이 한 달째라 피부과에서 소개해 준 대로 마취통증의학과로 갔다. 아빠는 드물게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에 발진이 생겼다. 대상포진은 띠 모양으로 한쪽 몸에만 생기는 것이 보통인데 면역이 약한 고령자일 경우 이렇게 동시에 대상포진이 오기도 한다고 했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 푸드코트에 갔다. 머리를 박박 민 어린이가 의젓하게 휠체어에 혼자 앉아 있었다. 엄마가 쟁반을 반납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는 노래를 시작했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소란한 푸드코트를 울리는 우렁찬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이의 뒤통수와 아이를 보는 어른들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아이를 보고 있던 어른 넷이 모두 같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여기선 조용히 해야지.” 아이 엄마가 작게 말했다.
하지만 그 노랫소리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병원 푸드코트에서 급하게 한 끼를 해치우려던 바쁘고 지친 사람들은 그 순간 ‘증기 배출을 시작합니다’라는 압력밥솥의 익숙한 안내를 들은 것처럼 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 덕분에 적당하게 산다.
병원을 나와 지하철을 타는데 개찰구 앞에서 아빠가 투덜댔다. “난 저렇게 자기 물건 떨어뜨리는 사람이 이해가 안 가.” 뒤를 돌아보니 휴대전화를 떨어뜨린 젊은이가 허둥지둥 물건을 줍고 있었다. 아빠의 면역력이 약한 것에는 이런 성격 탓도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하나 신경 쓰여 밖에서 회사 생활은 어떻게 하셨수. 고생했수.” 이렇게 신소리를 할 수밖에.
퇴근길 시청역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앞에서 행인이 오페라 발성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홍콩 작가 찬호께이는 추리소설 ‘고독한 용의자’에서 ‘홍콩이라는 압력솥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받는 압박에 주목하는데, 서울도 홍콩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다들 노래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거지.’ 설렁설렁 걷는데 뒤에서 따라온 젊은 여성이 내가 떨어뜨린 체크무늬 셔츠를 들고 나를 불러 세웠다. 가방에 걸쳐둔 것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잃어버린 게 한둘이 아니다. 나야말로 아빠가 이해를 못 하는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민감하고 쇠약해진 아빠를 떠올리며 웃었다. 아빠는 별수 없이 약한 사람이 됐고 나 같은 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병원을 순회해야 한다. 이래서 사는 게 재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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