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67] 쇄국의 결과
1871년 5월 21일 나는 풍도(楓島) 해안가에 정박한 존 로저스 제독의 미국 함대를 바라보고 있다.
저들은 강화도 쪽으로 나아갈 것이고, 6월 1일 손돌목에서 신미양요(辛未洋擾)의 첫 포격전이
벌어질 것이다. 한양으로 올라가는 요충지인 풍도는 1894년 7월 25일 일본군이 청나라 군함을
기습 공격하며 청일전쟁이 사실상 시작된 지점이기도 하다.
신미양요의 원인은 1866년 9월 2일 대동강에서 평양 군민(軍民)들이 미국 상선(商船)을 격침시키고
승무원 전원을 죽인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사죄와 통상 조약 체결 요구 등이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조부 김응우가 백성들을 지휘해 제너럴 셔먼호를 공격했다고 선전해왔다).
신미양요에서 조선인들은 서양 귀신들을 물리쳤다고 여겼는지 모르지만, 미국 해군 기록에는
한여름에 솜옷 열세 겹을 방탄복 삼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치열하게 싸우는 조선 병사들이
귀신처럼 보였노라고 적혀 있다. 당시 미군은 남북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전쟁에 이골이 난
군인들이었다. 그런데도 어찌나 조선 군인들이 사력을 다해 공격과 저항을 해대는지 학을 뗐다.
조선군 전사자가 수백 명에 이른 반면 미군 전사자는 소수에 불과했고, 강화도의 주요 요새들을
점령한 미군은 조선군의 군기(軍旗)와 무기를 노획했다. 그러나 군사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건
미군이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문을 닫아걸 일인가? 미국 함대는 결국 한 달여 만에 퇴각했고,
흥선대원군은 전국에 斥和碑를 세우며 쇄국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프랑스, 미국과는 저렇게 죽어가며 싸우더니 훗날 일본에는 총 한 번 못 쏴 보고 나라를 뺏긴다.
일본은 미국에 개항당한 지 약 50년 만에 강대국이 되었더랬다.
조선 쇄국 이념의 기원을 18세기 조선에서가 아니라,
1649년 효종 1년 우암 송시열의 ’기축봉사(己丑封事)’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더 솔직하게는, 조선의 지배계급이 신분제를 지키려 그랬다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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