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의 ‘필향만리’
是親不是親 非親却是親(시친불시친 비친각시친)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6.05.28 10:17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한자에 대한 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親(친할 친, 어버이 친)을 지(至), 즉 ‘지극함’으로 풀이했다. 이를 보면 親은 원래 지극히 친한 관계인 부모·자식 사이의 친함을 표현한 글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 그 뜻이 혈연과 혼인 관계의 친함으로 확대되고, 결국엔 모든 친한 관계를 나타내는 글자로 쓰이게 됐다.
是:이(this) 시, 이다(is) 시, 親:친할 친, 却:오히려 각.
친해야 할 사람과는 친하지 않고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오히려 친하고자 하네. 33x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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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형제처럼 혈연으로 엮인 친함을 천륜(天倫)이라 하고, 여기에 부부 사이의 친함을 더해 흔히 인륜(人倫)이라 말한다. 인륜이란 운명적으로 친해야 할 사람과 응당 친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천륜을 저버린 놈과 인륜을 배반한 자는 아예 사람으로 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상하게도 천륜과 인륜을 지켜야 할 지극히 친한 사이인 부자·형제·부부 사이에는 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남들과는 친하고자 애쓰는 ‘시친불시친 비친각시친(是親不是親 非親却是親)’의 상황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명절에 제 부모는 찾아뵙지 않으면서 직장상사에겐 선물 보따리를 싸 들고 가고, 제 남편이나 아내는 늘 타박하면서도 직장 동료는 미소로 대한다. 모두가 코앞의 이익 때문에 인륜을 저버려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인륜을 중시하자는 말은 ‘혈연 콤플렉스’에 빠져 박애(博愛) 정신을 저버리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먼저 실천함으로써 박애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천륜과 인륜으로 엮여 응당 친해야 할 부모·자식·부부와 친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을 박애할 수 있겠는가. ‘친친(親親·마땅히 친해야 할 사람과 친한 것)’이 곧 인(仁)을 실천하는 길이다. 가슴에 띠를 두르고 청소년 선도 운동에 나서거나, 생색내려고 경로당을 방문하기 전에 각자 친해야 할 부모·자식·부부와 먼저 친하게 지내자. 그러면 세상은 절로 어질고 선하게 된다. 오늘 내가 부모님께 전화하면 내 자식도 내게 전화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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