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오랫동안 저버린 자녀, 유산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
[아무튼, 주말]
[정재민의 법이 머무는 자리]
유류분 조항 뜯어고친
상속법 개정의 의미는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이 법을 몰라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판사와 법무부 법무심의관, 외교부 법률자문관 등으로 23년간 공직에 몸담았고,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인 정재민 변호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법 이야기를 쉽고 깊이 있게 풀어냅니다. - 편집자 주

올해 2026년 3월부터 상속법의 핵심인 ‘유류분(遺留分)’ 조항이 크게 바뀌어 적용된다. 이제 부모를 저버린 자녀는 유류분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고, 오랜 세월 부모 곁을 지킨 자녀가 그 대가로 받은 재산은 기여도 범위에서 유류분 반환 대상에서 빠진다. 그간 유류분 재판에서 상속인과 망인의 실질적 관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수만 하던 법원이 올해부터는 가족 관계의 실질을 들여다보고 유류분 액수를 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류분이란 단어가 낯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상속을 앞둔 분들은 어김없이 ‘유류분’이라는 용어를 만나게 된다. 십중팔구 되묻는다. “유… 뭐라고요?” 낯선 데다 발음도 어렵다. 법대생 때 상속법 수업 중 누군가가 한자어를 ‘우유분’이라 읽어 강의실을 웃음바다로 만든 적도 있다.
유(遺)는 ‘물려주다’, 류(留)는 ‘남긴다’는 뜻으로, 유류분이란 망인이 유언으로도 생전 증여로도 뺏을 수 없는 유산 중 상속인 몫으로 끝내 남아야 하는 부분이다. 자식의 경우 법정상속분의 절반이다. 상속인이 자녀 둘뿐이고 상속 재산이 10억원이라면 설사 망인이 한 자식에게만 전 재산을 물려주려고 해도 상속인은 최소 2억5000만원(5억원의 절반이므로)은 가진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뜻을 살아남은 자가 거스를 수 있는 권리다.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가 죽음 앞에서는 제한되는 것이다.
유류분은 근래의 발명품이 아니다. 수천 년 전 로마법에도 상속인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portio debita)’이란 개념이 있었다. 유류분은 나폴레옹 민법전을 거쳐 독일, 일본, 그리고 우리 민법으로 이어졌다. 흥미롭게도 우리 민법은 1958년 처음 제정 당시 일본 민법에 있던 대부분의 조항을 이어받으면서도 유류분 조항은 의도적으로 빼버렸다. “법정 최저 상속분 보장이라는 개념은 우리 전통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입법 이유였다.
아버지가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겠다는데 자식이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한 전통적 거부감이었다. 가부장의 권위가 법전에 보장돼 있던 시대였다. 가령, 요즘 젊은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1958년 민법상 상속분은 장남(호주상속인)이 나머지 아들보다 50% 더 많았다. 처와 딸은 차남 이하 아들 몫의 절반이고 출가한 딸은 차남 이하 아들의 4분의 1이었다. 유류분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이니, 이런 상속분마저 다 무시하고 아버지가 특정 자식이나 제3자에게 재산을 다 줘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20년쯤 흘렀다. 장남이 부모 재산을 물려받아 동생들 생계까지 책임지던 농경사회의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개인주의를 토대로 한 핵가족 시대가 도래했다. 아버지가 후처에게 전 재산을 넘기는 바람에 처자식이 생계를 위협받는 일이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결국 1977년, 우리 민법은 유류분 제도를 뒤늦게 도입했다. 차남도, 딸도, 배우자도 비로소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받게 됐다(다만 차남 이하 아들, 딸에 대한 상속분 차별은 1990년에 이르러서 철폐됐다). 이로써 “내가 죽으면 재산은 다 기부하겠다”거나 “그 녀석에게는 한 푼도 안 준다”는 말이 힘을 잃었다.
그동안 유류분은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관계의 실질을 따지지 않고 수학적으로 인정됐다. 상속은 참 독특한 제도다. 대부분의 돈은 그에 상응한 대가를 제공함으로써 얻는다. 그러나 상속만큼은 아무 대가를 주지 않고도 단지 혈연이나 배우자의 ‘사망’이라는 사건과 관계만을 이유로 꽤 큰돈을 받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당연한 것도 아니다. 대개 부모가 자식에게 가진 것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무조건 자식에게 물려줄 의무를 부과하고 자식에게 이를 청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또 상속을 많이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은 출발선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개개인의 불평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볼셰비키 혁명 직후 러시아는 사람이 죽으면 모든 재산을 국가가 몰수했고, 이스라엘의 키부츠도 망인의 재산이 공동체에 귀속됐다. 우리나라도 상당한 비율의 상속세를 거둬서 그만큼 국가에 귀속시키고 있다.
그렇게 수학적으로만 작동하는 유류분 제도를 반세기 가까이 운용해보니 법이 정서와 심하게 어긋나는 지점이 드러났다. 20년 넘게 치매 어머니를 홀로 모신 자식과 부모 곁을 30년 전에 떠나 연락조차 없던 자식이 똑같은 유류분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어머니가 자신을 보살핀 자식에게 전 재산을 주고 싶어도 연락 없던 자식이 나타나면 상속분의 절반은 돌려줘야 했다.
내가 판사로 일할 때는 이런 법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법무부에서 이른바 ‘구하라법’,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법’ 등 상속법 개정 실무를 담당할 때도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관념적인 느낌만 가졌다. 그러나 변호사가 돼 의뢰인 편에 서자 다르게 보였다. 피고 입장에 서서 유류분 소송을 방어하는 입장에 서보니 상속인이란 이유만으로 아무 왕래가 없던 사람에게 큰돈을 내어주는 것이 여간 억울하지 않았다. 반대로 원고 입장에 서서 유류분 소송을 하니 이기고 나서도 개운치 않았다.
이러한 정서와 법의 괴리를 문제 삼는 헌법소원이 잇따랐고, 2024년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반영해서 올해 2026년 3월부터 새로운 법이 시행된 것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자녀는 유류분 자체를 잃을 수 있다.
둘째, 오랜 기간 부모를 돌본 자녀가 그 대가로 받은 재산은 기여도를 고려해서 유류분 반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즉, 30년간 연락 끊긴 자녀의 유류분 청구가 한 푼도 인용되지 않을 수 있고, 20년간 부모를 모신 자녀는 유류분 소송을 당해도 과거보다 덜 빼앗긴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유류분 소송이 한층 복잡해졌다. 과거에는 상속 재산을 빠짐없이 탐색해 수학적 계산만 잘 하면 됐지만, 이제는 기여도와 부양의무 위반 여부, 다시 말해 ‘효도 점수’까지 따져야 한다. 이제 유류분 법정은 숫자만 세는 곳에서, 그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묻는 곳으로 바뀐다. 법이 마침내 정서를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다. 법이 정서를 반영하는 그만큼, 가족 간의 갈등의 골이 깊을수록, 앞으로 유류분 분쟁은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새 카테고리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월이 머문 자리)북한산 백운대,인수봉. (0) | 2026.06.01 |
|---|---|
| 6.25때 영덕 장사상륙작전때 잊혀진 772명의 어린 영웅들 (0) | 2026.06.01 |
| 닉네임은 한둘쯤 (0) | 2026.06.01 |
|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蓮塘의 女人. (1) | 2026.06.01 |
| 대구) 이름 속에 숨은 이야기.대구 지명의 기억. (2) | 2026.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