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의 역사] <95> 경주 함월산 골굴사의 전설
원효대사가 열반에 든 곳 함월산의 골굴사
수행법 선무도는 13개국 80여 지부와 센터에서 수련 중

경주 동해안으로 향하는 길목 함월산 자락에는 바위산 전체가 하나의 사찰이 된 특별한 공간이 있다. 절벽에는 부처가 새겨져 있고, 바위 속에는 수행자들이 머물던 석굴이 남아 있다. 골굴사다. 해가 떠오르면 동해의 햇살이 가장 먼저 닿고, 달이 뜨면 은빛 바위들이 산 전체를 감싼다.
골굴사는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광유성인이 창건했다는 이야기, 원효대사가 마지막 수행을 했다는 전설,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석굴 수행의 흔적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다.

◆신화전설 1: 골굴사
신라 사람들은 함월산을 특별한 곳이라 여겼다. 바위 절벽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숨어 있었고, 동해에서 밀려온 바람은 밤이면 동굴 사이를 지나며 낮고 긴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그것을 산이 내는 숨결이라 믿었다.
인도 범마라국의 광유성인 눈앞에 어느 날 낯선 땅이 펼쳐졌다. 바다를 품은 반도, 푸른 산맥, 그리고 하얀 바위가 달빛처럼 빛나는 산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부처의 음성이 들려왔다. "동쪽 바다 너머 인연의 땅이 있다. 그곳으로 가 중생을 제도하라." 광유성인은 제자들과 함께 먼 바닷길에 올랐다.
성인은 산의 모습을 보고 곧바로 알아보았다. 남쪽에는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상의 봉우리가 있었고, 북쪽에는 눈처럼 흰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산 아래에는 용이 산다는 연못이 있었으며,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밤이 되면 동굴 속에는 등불 하나 없이도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병든 사람들이 찾아와 바위에 몸을 기대고 하룻밤을 보내면 몸이 가벼워졌고, 근심을 안고 온 사람은 돌아갈 때 얼굴이 밝아졌다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전해졌다.
광유성인이 떠난 뒤에도 골굴사는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약 150년 뒤 신라에는 원효라는 걸출한 승려가 나타났다. 원효는 궁궐보다 장터를 좋아한 사람이었다. 높은 법상보다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그는 노래하고 춤추며 불법을 전했고,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만났다.

원효는 법당굴에 머물며 수행에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동해에서 떠오르는 새벽 해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천년 전 광유성인이 바라보았던 그 하얀 절벽이었을지도 모른다. 원효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었다.
법당굴은 더욱 신성한 공간이 되었다. 병든 사람들은 원효의 기운이 남아 있는 곳이라며 굴을 찾았다. 자식을 원하는 이들은 밤새 기도를 올렸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무사 귀환을 빌었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신비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골굴사 마애불에서는 때때로 상서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이 산골짜기를 비추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 빛을 보았다 하고, 어떤 이는 꿈속에서 만났다고 했다.

◆흔적: 골굴사 마애여래좌상과 12석굴
함월산 골굴사의 전설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암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 절벽 한가운데 천 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골굴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현재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불상이다.
마애여래좌상은 자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해 조성됐다. 머리 위에는 육계가 높게 솟아 있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가늘게 뜬 눈과 단정한 입술, 넓은 어깨와 간결한 옷주름에서는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특히 석굴암 본존불이 장엄함을 보여준다면 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은 부드럽고 인간적인 미소를 품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위와 하나가 된 불상의 모습은 인위적인 조형물이라기보다 함월산 그 자체가 부처가 된 듯한 인상을 준다.

오랜 세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새벽마다 붉게 물드는 부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렸다. 조선시대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에는 마애불에서 상서로운 빛이 발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만큼 이 불상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마애여래좌상이 골굴사의 얼굴이라면 12석굴은 골굴사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골굴사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굴들이 남아 있다. 학계에서는 원래 12개의 석굴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법당굴, 설법굴, 승방굴, 선방굴 등 각각의 기능을 가진 공간들이 하나의 거대한 수행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골굴사는 한국 불교사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는 동굴 안에 불상을 모신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골굴사처럼 여러 개의 석굴을 연결해 수행과 생활, 신앙이 함께 이루어지는 석굴사원 형태는 거의 유일하다.
일부 연구자들은 골굴사의 구조가 인도 아잔타 석굴이나 엘로라 석굴사원과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골굴사 사적기에도 광유성인이 인도에서 석굴사원 양식을 가져왔다고 기록돼 있다.
골굴사의 독특한 구조가 동아시아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법당굴은 골굴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으로 지금도 법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열반한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참배객들의 발길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다.

◆신화전설 2: 선무도
원효가 마지막 눈을 감은 뒤에도 골굴사는 오랫동안 수행의 도량이었다. 수많은 승려들이 이곳을 찾아 좌선했고, 새벽이면 마애여래불 아래에서 예불을 올렸다.
전쟁이 지나가고, 불길이 산을 덮쳤다. 사람들이 떠난 석굴에는 바람만 드나들었다. 한때 수행자들의 발소리로 가득했던 길에는 잡목이 우거졌다. 법당굴에 울리던 목탁 소리도 끊어졌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골굴사를 잊어갔다. 하지만 함월산은 잊지 않았다. 산은 천 년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수행자가 그 길을 올라왔다. 젊은 시절의 설적운 스님이었다.
스님은 처음 골굴사를 마주한 순간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무너진 석굴, 잡초에 덮인 절터, 사람의 발길이 끊긴 산길. 그러나 이상하게도 폐허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무언가를 느꼈다. 마치 누군가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님은 고민했다. 원효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갔을까. 높은 법상 위에서 설법했을까. 아니면 장터 한가운데서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과 함께 웃었을까. 답은 이미 원효가 남겼다. 무애. 막힘이 없는 길. 스님은 수행이 산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수행을 어렵게 여기면 몸으로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수행법들이 하나둘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참선과 호흡. 움직임과 명상. 강인함과 부드러움.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수행. 그것이 오늘날 선무도가 됐다.
새벽이면 수련생들은 마애여래불 아래에 선다. 동해에서 떠오른 햇살이 절벽을 비추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팔을 뻗고 몸을 낮추며 마음속 잡념을 비워낸다. 격렬한 동작 속에서도 얼굴에는 고요함이 흐른다. 싸우기 위한 무술이 아니다. 자신을 이기기 위한 수행이다.
선무도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함월산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몇 명의 수행자가 배우기 시작했다. 곧 수백 명이 모였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절벽 위 부처 아래에서 펼쳐지는 움직임은 무술 같기도 하고 춤 같기도 했다. 수련을 마친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편안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다시 골굴사를 찾아왔다. 미국에서,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브라질에서. 지금 선무도는 국내 사찰과 수련원을 포함해 20여 곳 이상에서 이어지고 있다. 해외로는 13개 나라에 60여 개 센터와 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함월산의 정신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골굴사에서는 선무도 공연이 매주 열린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은 화려한 발차기에 환호한다. 수행자들은 빠른 동작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이고, 강한 힘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천 년 전 원효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결국 같은 것이었다. 선무도는 광유성인이 바다를 건너 품고 온 수행의 씨앗이고, 원효가 백성들 속에서 꽃피운 무애의 정신이며, 설적운 스님이 폐허 속에서 다시 살려낸 천년의 숨결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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