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심금 / 김수환

심금
김수환
치렁치렁한 남천의 그 옛 물소리였다/
흰 구름 송이송이 곱고 고운 하늘이었다//
죽으러 가는 길 위에/
초록 바람 몰아친다//
끝없이 말하려는 것 끝까지 숨기려는 것/
수만 개 검은 꽃 벼랑,/
눈이 부신 절벽//
꽃들은 자꾸만 피고/
마지막은 없더라
『정음시조 8호』(제라,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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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은 일반적으로 볼 때 심금(心琴)이다. 이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 미묘하게 움직이는 마음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마음의 금'이라고 읽지는 않을 것이다. 다름 글은 세 편의 「심금」 시편을 발표하면서 쓴 시작노트다.
사람의 마음에도 기타처럼 울림통이 있고, 거문고처럼 絃(악기줄 현)이 있다. 그리움과 절망과 초조함과 환희와 절정과 좌절의 현, 사람에 따라 그 수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스라렝딩 스라렝딩 나의 현으로 나를 뜯는다. 조율도 없는 나의 연주, 악보도 없고 반복도 안 되는 나의 연주는 담을 넘지 못한다. 세이렌처럼 유혹할 줄도 모르는 나의 연주는 언제나 나 혼자 듣는다. 스라렝딩 스라렝딩 그 옛날 남해 유배지의 한 사나이처럼 연주를 한다. 그리움이 그칠 때까지, 희망이 끝날 때까지, 줄이 다 끊어질 때까지, 내가 다 망할 때까지 가슴팍을 긁으며 스라렝딩 스라렝딩.
시인이 얼마나 시조 앞에 좌정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잘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잘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수천 명의 시조시인 중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시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 점이 신작과 시작노트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야말로 「심금」은 면밀히 계획된 작품이라기보다 한순간 신명 들어서 쓴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신명 들어서 쓴 시가 명작이 될 때가 많다. 온몸으로 쓴 것이다. 온 영혼과 온 심혈을 다 기울여서 썼기에 마음의 맨 밑바닥으로부터 감동이 밀려 올라온다.
별안간 '치렁치렁한 남천의 그 옛 물소리였다'라고 심금을 풀어내고 있다. 이어서 '흰 구름 송이송이 곱고 고운 하늘이었다'라면서 옛 물소리와 고운 하늘을 일체화하고 있다. 종장 '죽으러 가는 길 위에/ 초록 바람 몰아친다'는 도저하다. 초장과 중장을 과거 진실로 노래하다가 종장은 현재형이다. 그러므로 지금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죽으러 가는 길과 몰아치는 초록 바람은 동질의 것이 아니다. 이질적인 이미지의 충돌이다. 비동일성의 미묘한 결합이다. 둘째 수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끝없이 말하려는 것 끝까지 숨기려는 것/ 수만 개 검은 꽃 벼랑,/ 눈이 부신 절벽'에서 보듯 다채로운 이미지들의 조합이 현란하기까지 하다. 종장 '꽃들은 자꾸만 피고/ 마지막은 없더라'라는 끝맺음이 의외다.
이렇듯 「심금」은 그리움과 절망과 초조함과 환희와 절정과 좌절의 絃이다. 그의 시조 세계가 이렇게 웅숭깊어졌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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