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시조시인

절창
이두의
잠이 든 시간 위로 내려앉는 옅은 향기/
오동꽃나무 아래서 고요히 눈을 뜨면/
잊혀진 얼굴이 한둘/
그립게 피어난다//
기억 속 골목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
흩날리던 웃음으로 들려오는 이름들/
어둠은 번지는 먹물/ 몽환으로 오는 밤//
계절이 가둔 꽃은 적막 같은 것이어서/
오동꽃, 너를 불러 나를 세워 보느니/
이렇게 돌아오지 못하던/
봄이 마저 피었구나
『표현』(202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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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은 애절하게 읽힌다. 오동꽃에 관한 서사를 노래하고 있다. 문득 눈물의 시인 박용래가 남긴 ‘오동꽃 우러르면 죽은 홍래 누이 생각난다’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시의 화자도 엇비슷한 감정으로 「절창」을 펼치고 있다.
‘잠이 든 시간 위로 내려앉는 옅은 향기 오동꽃나무 아래서 고요히 눈을 뜨면 잊혀진 얼굴이 한둘 그립게 피어난다’라는 첫 수는 아련한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하여 기억 속 골목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 흩날리던 웃음으로 들려오는 이름들을 기억한다. 실로 어둠은 번지는 먹물, 몽환으로 오는 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구절은 ‘계절이 가둔 꽃은 적막 같은 것이어서’라는 대목이다. 시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는 표현이다. 이윽고 오동꽃이라는 너를 불러 나를 세워 본다. 이렇게 돌아오지 못하던, 돌아올 수 없던 봄이 마저 피어난 것을 이윽히 바라보며 그리움을 속절없이 달래고 있다.
「생폴 드 방스에서」를 더 소개한다. 굉장히 공들여 쓴 시다.
창을 든 중세 기사 튀어나올 듯한 요새/ 붉은 태양 깃을 접는 흐린 햇빛 마을에/ 기괴한/ 소리 없는 시/ 그리다가 잠든 샤갈/ 긴말 없이 잘 통하는 숫눈길 튼 두 가슴/ 공중을 자유롭게 날며 돌던 유별난 사랑/ 그 끝에/ 찾아온 울음마저/ 활기찬 색채로 환치/ 한 캔버스 안에서도 각기 다른 서사들이/ 난해한 일곱 손가락 물음표에 숨은 길은/ 상식이/ 파괴된 세상/ 춤을 추는 붓질이었다// 휘도록 울음 긴 풍상, 놓지 않던 붓에서/ 올리브 빛 씨앗들은 늘 부화를 꿈꾸더니/ 더운 피/ 돌집에서도/ 태양 같은 꽃이 폈다.
‘소리 없는 시’는 조선시대 성간(1427∼1456)이 강희안(1417∼1464)에게 보낸 시라고 한다. 「기강 경우(奇姜景愚)」의 부분 화내무성시(畵乃無聲詩)를 차용한 것이다. 이렇듯 역작 「생폴 드 방스에서」는 흥미진진한 작품인데, 주에서 보듯 성간과 강희안에 대한 학습과 이해가 필요한 시편이다.
때로 시에서 남다른 천착과 궁구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부단한 탐색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절창」이나 「생폴 드 방스에서」처럼.
이정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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