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마음 읽기
온기
중앙일보
입력 2026.07.15 00:06
각전 스님 범어사 교육국장
주말 오후 늦게 경주의 야산 자락에 자리한 산중오두막에 도착했다. 차실 문을 열고 방에 연결된 공양간(부엌)에 먼저 들어섰다. 공양간 싱크대에 새끼 새 한 마리가 한껏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물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나왔나 했다. 깃털이 젖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았다. 즉시 전기난로를 가져다가 맞은편에 놓고 전원을 올리고, 옆에 있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온기 있어
세상을 품는 마음의 온기가 자애
자애의 온기로 분노를 넘어서야
20년 전 해인사에 있을 때 강원 학인 스님들이 사는 처소 밑에 사흘간 계속 울어대던 고양이 새끼 네 마리를 넘겨받아 키운 적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는 터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주에 있는 동물병원까지 가서 지원 요청을 했지만 고양이 전용 분유를 사서 스포이트로 한 시간 간격으로 먹이라는 요령만 듣고 왔다. 그 후 한 시간 간격으로 스포이트로 분유액를 먹이면서 눈도 뜨지 않은 고양이들을 키웠다. 한 달쯤이나 후에 제법 컸다고 생각되어 접시에 분유를 타서 줬다가 한 마리가 분유액에 목욕하는 일이 일어났다. 즉시 따뜻한 물에 목욕을 시켰지만 그날 밤 그 새끼 고양이는 나의 이불 속에서 떨다가 떠나갔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새끼 새를 보자마자 온도를 높이려 했던 것이다. 전기난로는 오래되어 고장이 났는지 작동하지 않았지만 가스레인지 3구의 열기는 상당했다. 곧 공양간 전체가 따뜻해졌다.
그러고 보니 새끼 새가 가스레인지 쪽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왔다. 내가 쳐다볼 때마다 저도 나를 쳐다보았다. 온도 상승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어 내심 흐뭇했다. 좀 있다가 다시 가보니 3~4m 떨어진 밥솥 근처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곧 내려앉았는데 내가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밥솥을 열고 보온으로 설정하고 전원을 넣었다. 잠시 후에 새끼 새는 따뜻해진 밥솥의 가장자리에 올라앉았다. 그렇게 좀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생명 있는 것들에게는 모두 온기가 있다. 짐승들에게는 체온이 있고 사람에게는 마음의 온기가 있다. 짐승들은 내 새끼와 내 가족을 사랑하고, 사람들은 이웃과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 부처님도 어린 시절 농경제 행사에 참여하여 지렁이를 개구리가 먹고, 개구리를 뱀이 먹고, 뱀을 공작새가 먹고, 공작새를 독수리가 잡아먹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깊은 사색에 잠겼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 부처님은 자비와 지혜라는 양 바퀴로 된 진리의 바퀴를 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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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자애와 연민이다. 자애는 온기이다. 팔리어로 메타(metta)이다. 그것은 남을 사랑하고 생각하여 항상 안온하고 즐거운 일을 찾아 그들을 요익(饒益)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증오하고 그 중간인 세 종류의 남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는 것이며, 한 방향의 존재들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의 생명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를 실천한 성자가 미래 세상에 오실 마이트레이야붓다, 즉 미륵불이다. 미륵은 마이트레이야의 음역인데, 자씨(慈氏)불이라 의역한다.
부처님 재세 때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에 사는 웃따라 여인이 친정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하룻밤에 1000냥으로 가장 몸값이 비싼 시리마라는 기녀를 사서 보름간 남편과 지내게 하고 자신은 부처님께 공양할 음식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남편이 웃따라를 보고 웃는 것을 보고 이를 질투한 시리마가 기름솥의 끓는 기름을 웃따라에게 퍼부었다. 웃따라는 이를 보고 성내지 않고 즉시 자애삼매에 들었다. 웃따라는 자애의 공덕으로 무사할 수 있었고, 주위 사람들이 시리마를 바닥에 때려눕혔다. 웃따라는 시리마를 부처님께 데려가 법문을 듣게 했다. 부처님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분노는 자애로 이겨내고
악은 선으로 이겨낸다네.
인색은 보시로 이겨내고
거짓말은 진실로 이겨낸다네.
자애의 온기가 분노를 넘어설 수 있고 그럴 때 더욱 따뜻해진다. 이러한 따뜻함으로 부처님은 수많은 과거 생을 통해 모든 존재들을 이롭게 하고자 애썼다. 이 온기로 인해 다른 이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다른 이의 기쁨을 따라 기뻐하는 것이다. 종국에는 슬픔도 기쁨도 모두 초탈하니 이것이 부처님의 마음이다.
각전 스님 범어사 교육국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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