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1441~1457. 在位:1452~1455)
영월 청령포와 莊陵(장릉)
1457년 유배 교지를 받고 宮을 나섰던 魯山君 李 弘暐(단종)가
1주일만에 도착한 곳은 영월 청령포였다.당최 이런 섬 같은 육지가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소나무가 빽빽하게 뻗어 얼핏 보면 秘境으로 보이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서쪽에 육육봉이 100m 가까운 높이로 우뚝 솟았고
나머지 3면은 西江의 강물이 둥글게 둘러쌌다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노산군이 宮에서 수영을 배웠다면 모를까 헤엄쳐
바깥으로 나오기란 불가능했다.영월군도 그 심정을 느껴보라는 의미인지
지금껏 다리를 설치하지 않았다.
청령포에 오기 1년 전, 왕위를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넘기며 그가
기대한 것은 살육없는 평화였을 것이다.1453년 자신의 수호천사들이 줄줄이
죽어나간 계유정난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수양대군을 비롯한
그 당시 정변 주역들을 마주하기란 더 큰 고통이었으리라 .영화:관상:을 통해
계유정난을 이해하는 이들도 적잖은데 큰 흐름은 어느 정도 사실과 일치한다.
노산군이 창살없는 감옥, 청령포에서 지낸 기간 은 두 달 남짓이었다.
세조실록에는 이 기간 임금이 갖은 노력을 다 해 노산군을 챙겼다고 기록한다.
여름에 덥다면 얼음이 끊이지 않도록 하고,참외나 채소등을 보내고 가뭄으로
인하여 금주령을 내렸지만 노산군에게는 술을 보내라고 했었다.
壓卷(압권)은 금성대군(세종 6子)에게 사약을 내린 부분이다.단종 복위에
나섰던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리자 노산군이 자결했다는 부분이다.
예를 갖춰 장사를 지냈다고 실록엔 돼 있다.
조선의 史官을 믿을 것인지, 野史를 믿을 것인지, 아리송하다.
왜냐하면 야사를 정설로 봐야 청령포와 장릉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훨씬 설득력이 있다. 野史엔 이렇다.
단종이 유배된 지 두 달만에 洪水가 나서 관풍헌으로 거쳐를 얾겼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약을 받게 되었는데 이즈음이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린
시기이다. 단종은 사약을 거부했다. 그러나 단종을 살해하면 상을 받으리라
생각한 한 하인이 단종의 목을 졸라 버렸다는 것이다. 단종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이것이 野史 중 定說로 꼽힌다.
죽음 이후에도 누구도 단종의 屍身을 수습하지 않았다. 3족을 멸하리라는 지엄한
왕명이 내려져 있었다.
그때 寧越戶長 嚴興道라는 사람이 서강 강물에 떠 있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몰래 묻었다.시신 수습 후 후환이 두려워 처자식을 데리고 몰래 숨어든다
지금 문경과 군위,울산으로 흩어져 그 후손들이 살고 엄흥도의 묘는 군위에 있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장사지낸 곳이 지금의 장릉인데 1516년 중종때 간신히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고 1580년 선조 때 석물을 세우고,제사를 지낸다.
1698년 숙종 때 왕의 신분으로 회복시켜서 종묘에다 廟號를 端宗이라 하고
陵號를 莊陵이라 하여 지금까지 내려온다.
엄흥도는 노루가 앉아있던 자리, 자신의 先山인 東乙支山에 묏자리로 썼다고 하나
실제로는 아무도 찾지 못할 곳이었으리라.
옛지도인 해동지도 영월부에는 산에 겹겹으로 둘러싸인 장릉이 나오는데 이곳을
찾아낸 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萬古忠臣 嚴興道가 야밤에 단종을 장사 지내려 집을 나설 때 삼족을 멸한다는
왕명이 내려져 있어 벌벌 떠는 가족에게 남긴 말씀이 그의 묘비에 새겨져 전해진다.
爲善被禍 吾所甘心 (위선피화 오소감심) 이란 8字인데
착한 일을 하다가 화를 입으면 내 달게 받으리다.:라는 뜻이다
엄흥도는 그후 400 여년 지난 1877년 고종때 忠毅(충의)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내 여기에 此史知後幾多鳴(차사지후기다명)이라 써 본다
뜻은 이 역사를 알고난 뒤 그 얼마나 내 울었던가요 라면서 위로해본다.
2025.5.26 .14:37분. 본훈 書 신문에서 발췌하고 몇가지는 덧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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