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와 ‘장무상망’
- 기자명박광희
- 입력 2024.07.26 15:24
■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339)

우리나라 조선조 때에는 글(시)과 글씨(서), 그리고 그림(화)...
이 세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문인을 일컬어 ‘삼절(三絶)’이라고 했다.
바로 조선조 후기인 1844년(헌종10) 만 59세의 나이에 수묵화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그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그러하다.
그는 흔히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 고증학자, 서예가, 역사학자, 금석학자로 불린다.
69.2㎝×23㎝(가로×세로) 크기의 수묵화인 <세한도>는,
초가집 한 채와 소나무와 잣나무 고목 네 그루가 한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듯,
오싹한 한기를 느끼게 하는 초라한 정경이 전부다.
그림의 오른쪽 밑단에 찍혀 있는 빨간 한자 사각 인장 하나-<장무상망(長毋相忘)>.
‘장무상망’이란, 길 장, 말 무, 서로 상, 잊을 망… 즉,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이다.
이 <세한도> 그림에 담겨 있는 표면적 의미는, 추사 자신에게 너무나도 헌신적이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의리에 감동한 추사 김정희의 애틋한 마음이다.
추사는 옛 중국 책 <논어>(자한 편)의 한 구절--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 토대로 한 폭의 그림 <세한도>를 그린 것이다.
# 추사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의 인연은, 그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사가 55세 때인 1840년, 조정의 벼슬자리에 있었을 때,
‘윤상도 옥사’와 관련된 士禍로 인해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됐다.
추사와 18년 터울이었던 우선 이상적은, 추사의 제자로서 통역관으로 중국 사신을
갈 때마다 당시 청나라 수도 연경(지금의 북경)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최신 서적들까지
어렵사리 구해서 모두 추사에게 보내줬다.
추사 자신이 유배를 가기 전이나, 9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도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이상적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렸던 것이다.
추사는 뒤늦게 자신이 어려운 지경에 처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리고, 제자 이상적이야말로 진정으로 공자가 얘기했던 송백(松柏 = 소나무와 잣나무)같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멀리서 어렵게 책을 구해 보내줬던 이상적의 그 변함없는 의리를 다시금 절절하게 생각했다.
<세한도> 그림을 끝낸 추사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그림을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화면 오른편 아랫단에 꾹 눌러찍은 빨간 사각 인장 하나가,
바로 추사의 인간적 바람을 모아담은 ‘長毋相忘(장무상망:길 장,말,무,서로 상,잊을 망)’이었다.
“우리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마세나!”
追加)樂冊. 本勳 .謹追記 (長毋相忘: 길 장, 말 무, 서로 상, 잊을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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