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떫은 맛, 우습게 보지 마세요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주황색 등불을 켜듯 열매를 맺은 감나무 한 그루. 우리 농촌의 가을은 감나무를 중심으로 향기 그윽한 풍경을 형성하면서 짙은 정취를 풍긴다.
도시에서도 우뚝 솟은 감나무는 가을의 정점을 찍는다. 20여 년 전 서정주 시인이 서울의 옛 사당동에 살 때 그의 집은 가을이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마당에 심은 감나무에 먹음직하게 매달린 감이 선명한 색깔을 돌올하게 내뿜었다. 시인은 그러나 감을 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까치밥으로 남겨둔다고 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기온이 떨어지면 큰 과일은 따 먹지 않고, 새나 들짐승에게 양보하는 미덕이 한국인의 오랜 가을 관습으로 남아있다.
지난 주말 아내의 외사촌 오빠가 경북 김천의 산자락에 농가를 개조해 마련한 ‘농촌 체류형 쉼터’에 갔다가 텃밭을 낀 마당에서 튼실한 감나무를 만났다. 원뿔형 대봉(大峰)감이 야구공보다 더 큰 덩치를 뽐내면서 주렁주렁 매달린 채 홍시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사촌 형제 부부 여남은 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으니, 따서 나눠 먹게 됐다. 약간 떫었지만 먹을 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목이 메기 시작했다. 목구멍으로 자갈이 들어간 듯 숨이 막히면서 굵은 밧줄에 목이 조이는 것처럼 공포가 엄습했다. 서둘러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나서야 불쾌감이 서서히 사라졌다. 경상도에 와서 정말 ‘시껍’했다.
그 까닭을 인공지능으로 알아봤다. 감의 떫은 부분에 포진한 타닌이 입안의 침을 응고시키고 건조하게 만든다는 것. 입안이 쪼그라들고 텁텁해지면서 목이 막힐 수밖에 없다. 떫은맛을 우습게 볼 게 아니다.
허영자 시인은 시 ‘감’에서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이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내년이면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지만, 아직 영혼의 비린내를 씻어내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손을 댔으니, 감이 노여워한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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