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1] 나무에게로의 여행
12시 정각에 외할아버지, 시계 방향으로 1시에 외할머니,
반시계 방향으로 11시에 첫째 외삼촌, 10시에 둘째 외삼촌이 계신다.
높이가 7m는 되는 키다리 전나무 아래서 두런두런 이야기라도 나누고 계실 테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한 그루 나무 아래 모여 있으면서
서로 다른 강가에 머무르고 있다. 이승과 저승이라는 강가에.
가족 수목장 이야기다.
나는 외갓집 식구들과 1년에 한 번씩 음식을 싸 들고 소풍 가듯 숲으로 간다.
성묘는 성묘인데 전통 봉분이 아니다 보니 동화 같은 상상력이 발동한다.
바늘처럼 뾰족한 이파리가 외할머니 웃을 때 가늘어지던 눈을 닮았네.
듬직한 기둥이 어릴 때 자전거에 날 태우고 달리던 외삼촌 팔뚝을 닮았네.
뼛가루는 잘 썩는 나무 상자에 담아 묻기에 벌써 구석구석 망자의 미네랄이 퍼져 있으리라.
음의 여성은 양의 기운을 가진 시계 방향으로,
양의 남성은 음의 기운을 가진 반시계 방향으로 묻어,
생사의 교차로인 나무 밑에서 음양이 반전하며 균형을 이룬다.
아직 살아 있는 우리는 전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3시부터 9시에 자리한다.
올해 배(梨)가 참 맛나요. 좀 드셔보세요. 어젯밤 부친 부추전과
싱싱할 때 살짝 데친 문어도 맛있답니다. 외삼촌들은 생전에 술을 좋아하셨으니
술잔 가득 정종을 따라드릴게요. 그러다가 하늘 꼭대기 우듬지를 올려다보면
어느새 수맥을 타고 저만치 올라가 춤을 추듯 한들거리는 망자의 모습들이 보일 듯 말 듯.
솨솨.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도 예사로 들리지 않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는다.
죽으면, 우리 모두 이렇게 나무 밑으로 녹아 물과 함께 흐르겠지.
그 물은 지하수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 비가 되리라.
죽는다는 건 나무배를 타고 먼바다를 항해하는 일. 그와 다름없단다.
생일날 크레파스를 사주시던 외할아버지의 속삭임인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깊은 밤 외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 소리인가.
숲에서 들려오는 수런거림이 한층 깊어져 참 듣기 좋은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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