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친명배금' 명분 반정 주역, 정권 잡자 명분 팽개쳐
중앙일보 원문 기사전송 2025-11-04 00:23 최종수정 2025-11-04 05:23
탄금대 전투와 인조반정의 주역들

김정탁 노장사상가
■
명·청 등거리 외교 등에 대한 불만
정변 명분 약해, 정치로 풀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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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삼전도 굴욕 후 ‘친청’ 기울어
이괄 등 반란 주역, 또 반란 일으켜
권력에서 소외된 서인들의 반역
집권 후 예학 강조, 민간 활력 잃어
왜군에 패한 신립, 탄금대에서 몸 던져

탄금대의 열두대.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진 김정탁]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등극했는데 이때 반정 주역들이 내세운 명분은 선조의 젊은 계비 인목왕후의 폐모와 명·청 등거리외교에 대한 불만인데 이것들은 엄밀히 말해 왕을 폐위시킬만한 사안이 아니다. 이 정도의 반정 명분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야당의 연이은 탄핵 공세로 계엄령을 발동했다는 주장과 어쩌면 흡사하다. 정치력으로 풀어야 할 사안을 무력으로 해결해서다. 게다가 폐모론을 주도한 사람은 광해군이 아니라 권신 이이첨인데 설령 광해군이 방관했다 해도 이이첨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지 이를 이유로 왕을 폐위시킨 건 누가 뭐라 해도 불충한 일이다.

탄금대의 탄금정. [사진 김정탁]
그러니 인조반정은 무엇보다 명분에서 약했다. 명분이 얼마나 약했는지는 반정 일등공신인 이서(李曙)의 회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광해군을 폐출하고 새 임금을 세웠다는 소식을 접한 나라 사람들이 새 임금에게 성덕이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해 반정 주역들의 상하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더라도 반정의 성패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마당에 이들을 위세로 누를 수 없어 전 왕조 때의 원로인 이원익을 영상에 제수하자 백성들이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이런 분위기 탓이었는지 광해군 시절 폐모론에 반대해 광해군에게 미움을 받은 유몽인(柳夢寅)도 광해군의 복위를 꾀했다. 그래서 강화도에 유배된 폐세자를 찾아가 복귀를 시도했는데 발각돼서 처형당했다. 유몽인은 선조 시절 장원급제한 인물로 설화문학의 대가이자 『어우야담』의 저자로 유명한데 김시습이 설악산이라면 그는 금강산에 비유될 정도로 노장사상의 추종자다. 그런데도 왕에 대한 충(忠)을 행동으로 보여줬으니 충을 지고지순의 교리로 받든 당시의 성리학자들보다 언행일치에서 훨씬 모범을 보였다.

탄금대를 휘감으며 흐르는 남한강. 조선 장수 신립이 달천평야 전투에서 왜군에 패한 후 탄금대에서 몸을 던졌다. [사진 김정탁]
그뿐이 아니었다. 인조는 청에 배신당할까 봐 순치제의 섭정왕인 도르곤의 신뢰를 받던 왕세자 소현세자와 그 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자신의 왕 자리를 대신할까 늘 걱정이었는데 권좌 유지를 위해 맏아들과 맏며느리를 죽게 하고 맏손자까지 죽게 했으니 가정적으로 가장 불행한 왕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친명배금의 명분은 놓고 싶지 않아 왕위를 이은 봉림대군에게 이 숙제를 맡겨 효종은 집권 내내 마음에 내키지 않는 북벌을 외쳐야 했다.
최명길·장유·이귀, 실리 외교 주장

우륵이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뜯었다는 이야기를 알리는 표지석. [사진 김정탁]
한편 반정 주역 중에 다시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셋이나 된다. 이괄·심기원·김자점이다. 이괄은 인조반정 성공 후에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서 한양을 점령했는데 서대문 밖 안산에서 패해 부하들에게 목이 잘렸다. 심기원은 회은군을 왕위에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하다가 김자점의 고발로 체포돼 능지처참을 당했다. 김자점도 효종 때 유생들로부터 지탄받아 유배됐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다시 역모를 획책하다가 탄로가 나 똑같이 능지처참을 당했다.

열두대에서 신립 장군이 몸을 던져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 [사진 김정탁]
게다가 김류의 아들 김경징은 반정 후에 아버지 덕으로 고속 승진해 병자호란 때 강화도 수비를 책임졌는데 방비를 허술히 하다가 강화도가 함락돼 사약을 받았다. 그는 평소에도 행실이 좋지 못해 태형을 자주 받았는데 사사 당하기 직전 아버지 김류에게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원해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과 비교돼 이 집안은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인조반정의 주역들은 권세는 누렸는지 모르지만 행복하진 못했다. 그러니 탄금대에서 몸을 던진 신립과 김여물이 차라리 삶을 깨끗이 마무리했다.
서인의 권력 독점, 조선말까지 계속돼

탄금대에서 바라다보이는 먼 산에 조령이 있다. [사진 김정탁]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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