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 말로 사람 읽기] [3] 내가 만난 소년범
1989년 여름,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칼로 위협당했다.
집 앞 골목이었지만 때마침 폭우가 퍼부어 소리도 묻혔다.
작은 가방엔 ‘우뢰매’를 보려고 받아둔 용돈이 있었다. 덜덜 떨면서도 꼭 움켜쥐었다.
결국 빼앗겼고, 피가 흘렀다. 나보다 고작 두 살 위였지만 나쁜 형들과 어울려
남의 동네까지 넘어와 범죄를 연습했던 아이. 하필 초인종마저 고장이 나,
젖은 몸으로 대문을 한참 두드리다 기절했다.
경찰은 미온적이고 엄마는 용감했다. 온 도시를 뒤졌고 마침내 찾아냈다.
내가 “맞다”고 특정하자 사과는커녕 욕을 퍼부었다. 소년원엔 보낼 수 없었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아이 나이가 더 많았다면 더 큰일 났을까.
실제로 강도·강간으로 소년원에 갔다는 얘기를 뒤에 들었다.
또 한참 뒤 TV를 보다 숨이 멎을 뻔했다. 잊은 적 없는 이름, 공개 수배된 것이다.
가정집에 침입해 주부를 성폭행했다. ‘손자를 홀로 키운다’며 빌던
그의 할머니 얼굴이 선한데... 결국 더 큰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한 배우의 일이 기억을 끄집어냈다. 범죄는 응징해야 하고, 공인의 책임을 말해온 사람,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앞장서고 광복절 기념식에선 독립군의 얼굴로 등장했다.
난 그의 연기를 좋아했다. 나쁜 놈 잡는 형사나 독립투사. 의로운 역할을 많이 맡았으니,
더 충격이었다. 소년기의 죄 때문만은 아니다.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십시오”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등 탑처럼 쌓아온 말들, 다 무슨 생각이었나.
해명도 희한했다. “30년 전이라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강간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선택적 정의, 선택적 기억인가. ‘강간’이라고 기록은 돼 있다는데, 그럼 망만 봤다는 말인가.
‘소년의 보호처분은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
소년법 32조 6항은 못 박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기록도 못 본다.
공감하긴 어렵지만 두둔하는 사람도 있다. 죗값을 치렀다, 언제까지 책임지냐는 논리다.
물론 소년범이 새 삶을 사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거를 숨기고 정의로움으로 포장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부와 인기를 얻었다면 더 그렇다. 장발장에 빗대는 것엔 한탄이 나온다.
빵 한 조각 훔친 생계 범죄가 아니라 약한 여성만 노렸고 밝혀진 것만 수차례다.
성인이 된 후에도 폭행, 만취 운전, 탈세. 매장당한 연예인은 셀 수 없는데,
내 편이면 넘어가자는 것인가. ‘更生의 서사’는 이런 데 쓰는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의 간극, 이것을 ‘위선’이라 부른다.
내가 만난 소년범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웅인 듯, 반성 없이 스포트라이트만 받는다면 내 심정은 어떨까.
이번 사건의 제보자 말마따나 ‘깊은 모멸감’을 느낄 것 같다.
정의, 공정은 깃발처럼 흔든다고 생기지 않는다.
거창한 말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사람을 본다면 경계해야 한다.
우리 역시 그럴싸한 말에 쉽게 속지 않는지,
스스로 멋진 말을 하고픈 유혹에 빠지진 않는지 돌아본다.
이 배우가 은퇴한다고 한다.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과거의 잘못,
그러나 더 큰 것은 자신이 쌓은 구업(口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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