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524] 진주 茶風의 근원
올봄에 촉석루에서 남강의 도도한 물결을 보며 차회(茶會)를 할 때
진주의 茶人인 죽영당(竹詠堂) 정헌식(鄭憲植·70)이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
진주성의 이러한 ‘의로운 정신’이 진주의 뭔가 다른 기풍을 형성하고 있다.
그게 ‘차풍(茶風)’으로 계승되고 있지 않나 싶다.
진주를 포함한 남해안 일대에는 ‘차(茶) 벨트’가 깔려 있다.
전라도의 강진, 해남에서부터 서부 경남의 진주, 하동을 거쳐 김해,
부산에 이르기까지의 기후 조건은 차를 재배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찻사발과 도자기도 이곳에서 발달했다.
정헌식은 전라도의 茶와 부산·경남의 茶가
서로 만나서 융화될 수 있는 지점이 진주라고 주장한다.
죽영당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진주 시내에
백로원(白爐園)이라고 하는 개인 다실을 가지고 있다.
외부 인사들이 진주에 가면 한 번씩 들르는 곳이다.
벽돌 건물인데 한국 차를 소개하는 자료실이기도 하다.
부부가 월급쟁이로 살면서 돈 생기면 여기에 다 썼다.
차에 미친 사람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살았다.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자리도 마련되어 있고,
차 도구와 유물, 차와 관련된 서적들, 차의 계보 등이 도표로 걸려 있다.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다솔사에 갔다가 효당 스님을 만난 것이 차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차와 인생의 스승을 만난 셈이었다. 스승이 보고 싶어 밤에도 서너 시간을 달려간 적도 있었다.
승용차가 없을 때라 집에서 60리 떨어진 다솔사는 먼 거리였다.
자정쯤 집을 나와 스무 살 청년이 뛰다시피 해 도착하면 다솔사의 새벽이 밝아오던 때도 있었다.
진주의 차풍을 형성한 정헌식 윗대의 스승 세대는 4명을 꼽을 수 있다.
효당 최범술, 아인 박종한, 차농 김재생, 의재 허백련이 그들이다.
광주 무등산 춘설헌에 다실을 가지고 있었던 의재 허백련은 효당과 각별한 사이였다.
차를 통해 무등산의 허백련은 진주의 茶人들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정헌식은 자신의 차 인생 50년을 결산하는 정신으로 ‘귀정안민(歸正安民)’을 꼽는다.
‘올바른 정치를 해서 국민을 편안하게 한다’이다.
이는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국사(國師)급이었던 충담 스님이
경주 남산 삼화령(三花嶺)에서 미륵불에게 차를 공양하던 정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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