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출신 여대남이 구마모또 혼묘지 주지가 된 이야기
미디어붓다 | mediabuddha@hanmail.net | 2024-03-27 (수)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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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에 실린 이순신 장군 초상화
한국에서 최고 영웅으로 받드는 이순신 장군도 생전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것이다. 여기 일본 교과서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있다.
구마모또는 임진왜란 때에 갖은 만행을 저질렀던 가또 기요마사의 고향이다. 그곳에는 조선인포로들을 동원하여 지은 구마모또성이 있다. 그리고 혼묘지(본묘사)는 가또 기요마사를 기리는 추모사찰이다. 한국에서는 갖은 악행을 저지른 악마 같은 존재이지만 일본에서는 전쟁영웅이며 구마모또에서는 가또신사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혼묘지의 보물관에는 1400여 점의 귀중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조선에서 약탈해 간 유물들과 울산 서생포 왜성에서 받은 사명대사의 친필도 있다. 함경도에서 포로로 잡힌 임해군과 순화군의 친필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칠언율시 친필이 전시되고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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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친필 글씨
만리강산 필하성 공림적적 조무성
도화의구 연연재 운불행해 초자생
만리강산은 붓끝에서 이루어지고
텅 빈 숲은 적막하니 새도 울지 않네
복숭아꽃 예전처럼 해마다 피어나고
구름은 지나가지 않아도 풀은 저절로 자라네
ㅡ 순신 ㅡ
참으로 은원이 얽힌 한일관계이다. 조국에서는 잊혀지고 기록 한 줄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의 신사나 사원에 가면 우리 역사의 흔적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단 한 번의 패전도 용납하지 않고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의 친필이 적장 가또기요마사의 추모 사찰 보물관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절의 3대 주지는 조선인 포로 여대남이다. 그는 13살 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왔다. 우리나라에서 ‘남묘호렌게꾜’로 불리는 일련종 불교교단으로 출가하여 일요라는 법명을 받았다. 일련종 승려로서 교육을 이수하고 29세에 혼묘지 주지로 임명받는다. 그는 79세까지 이 절에 주지로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구마모또 사람들은 그를 고려상인. 조선에서 온 큰스님으로 불렀다.

하동출신 여대남은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왜장 가또의 인도로 출가하여 일련종의 일요스님이 되었다.
하동출신 여대남이 왜군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가 구마모또의 혼묘지 주지가 된 이야기
‘전년 6월 왜인에게 편지를 전한 바 있고 답장을 받지 못해 밤낮으로 목놓아 울었느니라.
이제 생이별 후 28년 만에 너의 편지를 받고 세 번, 네 번 읽다 보니 네 얼굴과 네 음성을 대하는 듯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걸 억제할 수가 없구나.
내 나이 쉰여섯이고 너의 어미 나이 예순이 되었느니라. 넌들 오고 싶은 마음이 없으랴 마는 네 몸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를 이 아비는 아노라.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와 고국에 돌아와 너를 만나게 된다면 30년 쌓인 한이 하루아침에 얼음처럼 녹아 없어지겠구나. 너는 이국땅에 있으니 부디 몸조심해 무사히 돌아오도록 하여라. 아들아, 이 애비는 꼭 한번 너를 만나보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노라.ᆢ’
1593년 7월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군은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닥치는 대로 조선 백성들을 죽였다. 그때 하동에서 포로로 잡힌 13세 소년 여대남은 붓을 들어 당나라 시인 두목의 시 한 편을 쓰고 부모님께 보내 달라고 하였다. 왜장 가또 기요마사는 영특한 아이라는 생각에 죽이지 않고 일본으로 데려갔다.
의지할 곳 없는 여대남은 가토의 권유로 일련종 사찰 혼묘지로 출가하여 일요라는 법명을 받는다. 그는 승려로서의 교육을 마치고 28세에 혼묘지의 주지로 임명된다. 외국인 포로에게 큰 사찰의 주지를 맡기는 것은 그만큼 그의 덕행과 학문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주지가 되고 10년이 지나서 조선통신사 일행과 만났다. 자기가 죽지 않고 일본에 살아 있다는 것을 하동땅 아버지에게 전하였다. 일본에 포로로 끌려온 지 27년 만이었다.
위의 서신은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소식을 듣고 그의 아버지가 보낸 글이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여대남 일요 스님은 인편에 애달픈 심정을 담아 답을 보낸다.
‘아버님의 편지를 열고 읽으려 하니 감격의 눈물이 앞섭니다. 이는 하늘의 돌보심이며 신명의 도움이 아닐런지요. 주군을 찾아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곡히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주군은 오히려 가신들에게 저를 견고히 감시할 것을 명령해 새장 속의 새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조만간 하늘이 무심치 않아 소자가 귀국할 수 있다면 부모님께서는 잃었던 자식을 얻고 저로서는 잃었던 어버이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보내주신 편지를 조석으로 모셔 받들겠사오니 두 분께서도 이 아들의 편지를 자식 보듯이 해 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부모님을 뵙고 그동안 쌓였던 회한을 풀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부디 천수를 누리시어 평화로운 시대에 다시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말년에 시마바라에 고코쿠지(호국사)를 짓고 초대 주지가 된다.
조선 포로로 일본의 스님이 된 그가 생각하는 호국은 어떤 의미였을까?
일본불교 일련종 신도인 가또는 조선 포로를 일련종으로 출가시켜 불교 승려가 되게 한다. 임해군 아들 일연 스님과 하동 출신 일요 스님이 그들이다.
열열한 가토릭 신자인 고니시는 조선 포로들을 교리 공부시키고 수천 명 조선인을 가톡릭신자로 만든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따주리아..그리고 권 빈첸시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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