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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엽서)(51) 베트남전의 :진짜 전장:

한문역사 2026. 1. 29. 21:19

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51] 베트남전의 '진짜 戰場'

입력 2026.01.28. 23:39
1968년 1월 29일 밤 나는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에 있다. ‘아직(?)’ 이곳은 평온하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남베트남의 도시와 주요시설 100개 이상을 동시 타격한 이른바
‘구정 공세(Tet Offensive)’는 일반적으로 1968년 1월 30일 새벽부터 31일 새벽에
개시됐다고 본다. 특히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 습격을 포함한 본대의 본격 공격은
31일 새벽이었고, 30일 밤(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조기 공격과 국지적인 전투가
일어나 공식 기간 표기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이처럼 ‘동시다발’이 대략 3일간
(29일까지 포함해 준다면)으로 나눠지게 된 것은 북베트남군들끼리, 베트콩들끼리,
그리고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끼리 통신 혼선과 판단 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 기습 작전의 결과는 이중적이었다. 군사적으로만 보면 잘 버텨서 반격에 성공한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승리였지만, 정치·심리적 측면에서는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승리였다.

미국 대사관에서의 교전 상황은 미국 안방 TV에서 생중계되었고 이는 엄청난 ‘여론’의

악화를 불러일으켰다. 진짜 전장은 베트남이 아니라 미국 사회였던 것이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던 존슨 행정부의 낙관론이 거짓으로 드러나 미국 전역에서

반전 운동이 폭발했다. 북베트남과 베트콩 측에서도 예상치 못한 역설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는 공산 독재 혹은 그와 유사한 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 간의

충돌에서의 기본값일 수밖에는 없다. 후자에게는 핸디캡이 있는데, 통제되지 않는 언론과

국민 여론,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등이 그러하다. 이게 발전되고 확장된 개념이 예컨대

중국이 대놓고 표방하는 ‘초한전(超限戰)’의 한 성격이기도 하다. 전장이 아니라

사회를 흔들고 물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당장의 전쟁에서는 거추장스러운

바로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체주의 독재 진영보다 자유주의 진영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소련이 초기에는 경제 발전이 빠른 것처럼 보였지만 망한 이유도 여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