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의 신노인 산책] 유머가 있는 노년
- 날씨가 찹니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체온을 높이기 위한 다음의 설문에 바른 답을 한 분들 중 5명에게 상품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1)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2)냉수에 얼음을 넣어 마신다. (3)목도리를 한다.” 시내버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흘려 들었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이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듣자마자 나는 금방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에게 라디오의 내용을 카톡으로 보냈더니, 1번과 2번이 모두 정답이라는 장난기 어린 답변이 왔다. 나는 그 친구에게 “자네는 머리가 매우 나쁜 것 같다”고 회신했다.
서양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유머에 인색하다. 노년층의 유머는 대체로 '와이당'으로 통용되는 『고금소총』류의 음담(淫談)이다. 미투(me-too) 풍조가 확산되기 이전의 지난 날에는 음담의 대가들이 사회지도층에 많이 포진해 있기도 했다. 그런 음담이 나이 든 남자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묵인된 셈이다.
어디서나 입조심까지 해야 하는 요즘의 노년들은 표정이 날로 굳어져 간다. 살벌한 정치 이야기나, 단골 메뉴인 질병과 약에 대한 넋두리 대신에 유머가 미덕이 되는 캠페인이 전개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상당히 많은 유머 책이 서점에 나와 있지만, 노년층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 된다. 노인단체가 노년층을 위한 유머 공모전을 지속적으로 열면 어떨까 싶다. 그런 기회가 제공된다면 당장 나도 유머 하나쯤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이렇다.
“대구 지하철 화장실에는 '소화용 물'이라고 쓰인 물병이 놓여 있다. 우리 말에 약간은 익숙한 외국인이 어느 날 속이 심하게 거북한 상태에서 그 화장실에 들렀다가 '소화용 물'을 발견하고 소화제인 줄 알고 마셨다. 갑자기 복통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 겨우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 끝에 지하철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유머에는 잘못 쓰이는 한국어에 대한 신랄한 비꼬임이 담겨 있다. 그냥 '불 끄는 물'이라고 하면 될 것을 '소화용 물'이라고 했으니 그 외국인이 잘못 마신 것 아닌가. 한자 표기조차 없어 우리 한국인도 어려운 판에, 외국인이 불을 끄는 ‘소화'(消火)’를 음식을 삭이는 ‘소화(消化)’로 인식할 소지는 충분하다.
미국 문명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영화에서 보는 미국인들의 유머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유머가 빠지지 않는다.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유머 감각은 전설이다. 그가 왼쪽 겨드랑이에 총격을 당한 직후 당황스러워 하는 부인 낸시에게 조크를 던졌다. “여보, 내가 수그리는 걸 깜빡했어(Honey, I forgot to duck).” 경황 중에도 낸시의 얼굴에 잠깐 웃음이 번졌을 법하지 않은가.
유머 감각은 노인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다. 노년의 무표정한 얼굴을 활짝 밝혀주면서 주변에도 웃음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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